러일전쟁 당시 자폭했던 `한국인'을 상징하는 러시아 해군함정이 100년만에 부활하게 된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이 함정은 전투를 벌이다 수장됐던 날을 추모하기 위해 내년 2월9일 인천 앞바다에 그 모습을 드러낸다.
 이같은 사실은 합동참모본부 합참전략본부장을 끝으로 지난 4월 전역한 송근호(57·해사22기·예비역 중장) 제독에 의해 2일 확인됐다.
 `코리츠'의 역사는 1세기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러일전쟁 개전초인 1904년 2월9일 인천 앞바다인 서해상에서 1천t급 러시아 포함 `코리츠'(Koreets)와 6천t급 순양함 `바리약'(Varyag) 각 1척은 9천t급 장갑순양함 2척 등 일본 해군 함정 10여척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전력상으로 중과부적(衆寡不敵)이었던 러시아의 이 두 함정은 `전멸'이냐 `항복'이냐라는 선택의 기로에서 끝내 자폭을 택했다. 나포되거나 침몰당하는 불명예를 뒤집어 쓰느니 군인답게 차라리 스스로 목숨을
 끊기로 한 것.
 이로 인해 러시아어로 `한국인' 또는 `고려인'을 뜻하는 `코리츠'함은 세상에서 자취를 감추게 된다. 러시아군은 이를 `제물포 해전'이라고 불렀고, 비록 전쟁에는 졌지만 자랑스러운 군인의 길을 택했다며 러시아 해전사(史)에서는 이를 높게 평가하고 있다.
 송 제독은 2일 “100여년전 러시아 함정에 왜 `코리츠'라는 함명이 붙었는지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19세기에 연해주로 이주한 많은 고려인들의 성실성과 근면성, 명석함 등을 그들이 존경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함께 자폭했던 `바리약' 역시 러시아어로 `노르웨이'라는 뜻으로, 9세기경 북유럽 해상에서 선박운영 기술이 뛰어났던 노르웨이 사람들을 존경하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일 것으로 송 제독은 추정했다.
 그러나 `바리약'은 지난 89년 12월 9천t급 미사일 순양함에 그 이름을 승계해 자폭 85년만에 부활했지만 코리츠는 역사속에 사라지는 듯 했다. 이같은 사실을 안타까워 하던 송 제독은 작년 9월 블라디보스토크의 러시아 태평양함대 사령부를 방문한 자리에서 표트로프 사령관에게 "한러 우호관계 등을 고려해 `코리츠'의 함명을 승계할 시기가 되지 않았느냐"며 조심스레 요청했다.
 이에 표트로프 사령관은 연해주 거주 고려인 대표에게 러시아 해군본부에 청원할 것을 권유했고 이 청원을 해군본부가 받아들여 지난 8월 승조원들에 대한 기량평가를 통해 가장 우수한 성적을 기록한 1천t급 대잠초계함을 `코리츠'로 명명했다.
 이같은 사실은 지난달 14∼18일 해군초청으로 방한한 표트로프 사령관이 17일 저녁 이미 전역한 송 제독과의 면담을 요청, 서울타워 한 식당에서 직접 전하면서 알려지게 됐다.
 송 제독은 또 한러간 관계개선으로 지난 97년부터 매년 인천 앞바다에서 실시해 오던 이들 함정에 대한 추모행사를 내년 2월9일에는 부활한 `코리츠'가 직접 출동해 추모의 시간을 가지는 방안도 검토중인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송 제독은 "100년간 사장됐던 `코리츠'가 한세기가 지난 이제야 부활했다"며 "이는 한국과 러시아간의 우호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