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리타 쿰'의 희망을 쏘자
고재경(배화여대 교수/영문학)
 “그 것은 최고의 시대이자 또한 최악의 시대였다. 지혜와 우둔의 시대요 신념과 불신의 시대였다. 빛과 어둠의 계절이었고, 희망의 봄인 동시에 절망의 겨울이기도 하였다. 우리 앞에는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었지만 동시에 아무것도 갖추어져 있지 않았다. 우리 모두는 똑바로 천국을 향해 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또 반대쪽인 지옥을 향해 열심히 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였다.”
 19세기 영국 작가 찰스 디킨즈의 ‘두 도시 이야기’는 프랑스 혁명을 배경으로 당시의 시대상과 사랑을 그린 역사소설로서 시대의 이중 가능성을 위와 같이 묘사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극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 3.1절 대중집회는 이념으로 갈라진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3.1절 행사가 갈라져 치러진 것은 해방이후 미 군정 치하 1946년에 좌우익 진영이 각각 집회를 개최한 이후 처음이었다. 또한 국군의 이라크전 파병 문제로 찬반 양론이 첨예하게 맞서고 있어 국론 분열 양상을 띠고 있다.
 이러한 이중 가능성의 시대에 최근엔 국내 3위의 대기업인 SK 그룹의 1조5천여 억원 규모의 분식회계가 들통나 주가가 폭락하고 환율이 급등하면서 우리 경제를 강타하고 있다. 일부 기업과 개인들은 ‘달러 사재기’에 나서고 있다. 게다가 지난 달 27일 한국은행이 내놓은 ‘2003년 2월 중 국제 수지 동향’에 따르면 우리 나라의 경상수지가 97년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3개월 연속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한국 경제는 총체적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다. 제2의 경제위기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들려온다. 국내에선 유가와 채소류 가격을 중심으로 생활물가가 가파르게 오르면서 서민가계를 압박하고 있다. 여기다 북한 핵 위기는 고조되고 미국과 이라크 전쟁으로 인해 무고한 인명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세계의 미래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이번 전쟁은 지구촌을 인류의 치열한 전장으로 몰아가고 있다.
 이러한 모든 것이 절망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럴수록 불만을 만족으로, 불행을 행복으로,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켜야만 하지 않을까. 이른바 ‘탈리타 쿰’의 희망의 공을 하늘을 향해 쏘아보자.
성서는 예수가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병들어 죽었다고 사람들이 와서 말했을 때 슬픔에 잠겨있는 가족과 사람들을 보며 죽은 아이의 손을 잡고 ‘탈리타 쿰’(‘소녀야 일어나라’는 뜻의 아람어)의 기적을 행하면서 야이로의 12살 배기 딸을 살렸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렇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져도 다시 일어나는 ‘탈리타 쿰’의 희망을 가지자. 움추렸던 죽움의 겨울을 이제 희망과 소생의 봄으로 바꾸어보자. 우리 민족의 유구한 5천년의 역사를 보면 지금보다 더 어려운 수난의 시대도 있었다. 우리 선조들은 절망에 굴하지 않았고 꿋꿋한 정신으로 끈질긴 삶의 자세를 견지하여 온갖 난관을 극복해오지 않았던가.
 출범한 지 겨우 한 달이 지난 새 정부의 앞날의 성패는 국민에게 희망을 주느냐 여부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벌써부터 대통령 측근비리설 의혹이 일고 있다. 개혁을 통해 ‘깨끗한 정부’를 지향하는 참여정부가 아닌가. 5년 후 퇴임하는 노무현 대통령과 그 권력상층부가 역사 흐름에서 진정으로 ‘크고’ ‘으뜸’이 되려 한다면 국민을 섬기고 국민에게 봉사하려는 공복의 정신을 항시 잃지 말아야 한다.
 성군이라고 일컬어지는 세종대왕 치하에서도 어두운 절망의 시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 않은가. 역대 왕조와 비교하여 상대평가를 해보니 성군이 되지 않았겠는가. 세종대왕 같은 성군이라는 평가는 아니더라도 역사에 길이 남을 대통령이라는 평가를 받은 역대 대통령이 유감스럽게도 우리 나라엔 없었다.
 그래서 지금 홍역을 치르고 있는 이념적 갈등과 국가적 위기도 5년 뒤에는 “그 시대는 가장 훌륭한 시대였고 믿음의 시대였으며 광명의 계절이었고 희망의 봄이었으며 우리 앞에는 모든 것이 열려 있었고 우리 모두는 천국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라는 평가를 받는 국운 융성의 희망의 시대로 바뀌기를 바란다. 대통령 본인은 훗날 위대한 지도자였다는 소리를 듣고 싶어하겠지만 국민들은 그러한 소리를 간절히 더 듣고 싶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