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인천에도 나루터가 있었다. 인천같은 대도시에 더구나 강이라곤 없으면서 무슨 소리냐고 하겠지만 분명히 나루터가 있었다. 이름하여 번지기(番作里)나루-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거의 같은 지점에 두곳이 있었다. 이를 윗나루 아랫나루라고 하여 지금의 동구와 서구를 연결하는 길목이었다. 지금 겨우 흔적뿐인 인천교의 하류이며 깊숙한 해협이어서 옛날의 인천은 하나의 작은 반도 형국이었다.

 그 시절 오늘의 서구가 형성되기 이전 그곳은 개건너라고 해서 나루가 아니면 마음놓고 건너 다닐 수가 없었다. 개건너라는 지명도 실은 바닷물이 드나드는 개를 건너서 있는 동네라는 뜻이었다. 그리로 해서 부평이나 김포 방면으로 오갈 수 있었고 농촌의 농산물과 배다리 시장의 생필품이 교류될 수 있었다.

 이곳 개펄에 100년전 돌로 징검다리를 놓고 돈벌이를 한 사람이 있었다. 이훈익옹의 『인천지지』에 의하면 1896년 장모씨가 일인에게서 돈을 빌려 시설했다고 한다. 그러자 이모씨도 이곳에 나룻배를 띄워 밀물이면 행인을 건네주고 통행세를 받았다. 그래서 이곳 나루터는 밀물때는 배를 타고 썰물에는 징검다리로 걸어 건너다니는 곳이 되었고 보도진(步道津)이라 했다.

 이곳에 인천교가 가설된 것은 1958년-그것으로 나루터는 종언이었다. 공사가 한창이던 때 노저으며 밥줄 끊기게 되었다고 푸념하던 늙은 사공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 다리가 놓임으로써 경인간에는 비로소 직행버스가 개통될 수 있었다. 그리고 그후로 이곳은 아예 해면을 매립 뭍이 되었다. 현재 이곳에는 인천의료원이 옮겨오고 대형유통센터가 조성되어 있다.

 그곳 송림동 산업용품유통센터가 벤처기업 육성지구로 지정되리라 한다. 80년대 인천시내에 산재한 영세상인들이 조합을 구성 기금을 조성한지 10여년 바다를 매립한 터전에 상가를 건설 97년 개장했다. 지금 그곳에는 4천여 업소가 입주해 있으며 지난해에는 인천 미디어밸리 소프트웨어 지원센터도 문을 열었다. 상전벽해(桑田碧海)가 아닌 벽해가 상전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