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대화땐 23명이 참석했었습니다. 지금까지 잘 올 수 있었던 것은 ‘인천시민의 힘’이었습니다.”
 201회 곱하기 30일, 나누기 365일 하면 16.5205…년. ‘새얼아침대화’가 16여년간 걸어온 길을 회상하는 지용택 이사장의 눈에 보일듯 말듯 물기가 살짝 비친다. ‘새얼문화재단’창립일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강산이 두번이나 변했다 할 수 있으리라.
 “‘인천의 정체성은 무엇이냐’, ‘인천엔 어른이 없지 않느냐’ 등등 20년전 인천엔 온갖 불명예스런 수식어가 우리 도시를 규정하고 있었지요.”
 수군수군,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출처 불명의 말은 지이사장의 귀에 거슬리는 것을 넘어, 고통스럽게 했다.
 인천에서 ‘애향심’ 하면, 둘째 가라면 서러워 할 그가 아닌가. 지이사장은 벌떡 일어섰고 지역사랑운동, 지역문화운동의 한 가운데 서서 구심점으로 역할해 왔다.
 “인천에 왜 정체성이 없습니까. 인천의 정체성은 바로 황해입니다. 그 드넓은 바다로 무한히 뻗어가는 인천시민들의 웅비와 기상입니다.”
 그는 “인천의 정체성은 너무나도 선명하다”면서도 “모든 사람들에게 문호를 열어 인천에서 생활하면 인천사람으로 인정하는 포용력까지 갖고 있다”고 덧붙인다. 타지역인들에게 배타적이지 않고 정착하는 모든 이들에게 그들의 꿈을 펼칠 수 있는 토양을 제공하는 ‘열린도시’라는 것이다.
  NGO란 말조차 생소하던 1983년, ‘새얼문화재단’은 그렇게 우리나라 최초의 시민문화재단으로 탄생했다.
 ‘새얼아침대화’를 비롯해 ‘국악의 밤’ ‘새얼백일장’ ‘열린음악회’ 등 ‘새얼문화재단’은 다채로운 문화행사를 통해 인천시민들의 손을 잡아줬다. 시민들은 ‘새얼문화재단’이 가는 길을 믿고 기꺼운 마음으로 재단과 함께 뛰어왔다.
 계간지 ‘황해문화’는 시민들의 눈은 물론 지성인들의 눈을 사로잡는 비판과 사유의 광장으로 자리잡았고 ‘새얼문예창작교실’은 지역문학계에 자양분을 뿌려줘 올해만해도 신춘문예 두곳에 당선되는 회원이 나오는 등 매년 역량있는 문학인들을 배출하고 있기도 했다.
 이와함께 ‘새얼문화재단’의 모태가 됐던 ‘새얼장학회’는 노동자 자녀를 중심으로 학자금을 지원하며 백년대계를 키워가고 있다.
 1구좌 5천원. 관이나 기업의 지원이 아닌 시민들의 순수한 후원으로 모은 기금이 45억원이고 보면, 인천시민들의 재단사랑은 결코 성냥불 같이 확 타올랐다 금방 꺼지는 순간적인 사랑이라 볼 수 없다. 장작불처럼 오래가는 그런 사랑인 것이다. 
 이쯤 돼다 보니 20여년이 지난 지금은, 전국 각지에서 ‘새얼아침대화’는 물론 재단의 문화사업을 벤치마킹 하려는 지자체 관계자들의 발걸음으로 문턱이 반질반질할 정도다.
 “우린 ‘전 지구적으로 사고하고 지역적으로 실천하는’길을 걸어갑니다. 지역을 지키고 사랑하되, 우물안 개구리처럼 그 테두리에 안주하지 말고 세계로 뻗어가자는 말입니다.” 
 명실공히 지역운동의 구심점으로, 호연지기가 넘치는 스무살의 청년으로 성장한 ‘새얼문화재단’.
 지용택 이사장의 형형한 안광은 일취월장하는 재단의 미래를 담고 있었다.<김진국기자> freebird@incheo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