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시굴 1년 지나도록 결정 안돼
추모시설 아닌 선사문화연구원에
금속류 유물들과 함께 놓인 상태
지난해 발굴한 선감학원 피해자 유해들은 보관 장소가 정해지지 않아 1년이 넘도록 금속류 유물들과 함께 놓여 있는 상태다. 정부가 수십년전 구타, 강제 노역 등 국가로부터 심각한 인권침해로 숨진 선감학원 피해자들의 영혼을 달래주지 못한 채 갈 곳도 잃게 만든 셈이다.
30일 오전 충북 청주시 한국선사문화연구원 4층 보존처리실. 전면 유리로 된 항온항습장에 보관된 한 종이상자에는 안산시 단원구 선감동에서 발굴한 선감학원 사건 피해자들의 치아 278점과 단추 등 유품 34점이 들어 있었다. 긴 종이상자들과 아직 보존처리가 되지 않은 금속 고리단추, 탄창, 철촉 등 금속류들이 함께 보관되고 있었다. 선감학원 유해발굴은 지난해 9~10월과 올해 9~10월 두 차례 실시됐다.
12~15세로 추정된다고 알려진 이 피해자들은 사건 진실규명을 위해 지난해 처음 세상 밖으로 나왔지만, 별도의 추모시설도 없이 현재 발굴을 진행한 연구원에 꼼짝없이 갇혀 있다. 진실규명을 실시한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유해 안치에 대해 검토하지 않은 채 급하게 발굴했기 때문이다. 전면 유해발굴을 해야 하는 행정안전부와 경기도 모두 유해 안치에 대해 손 놓고 있다.
같은 공권력에 의해 피해를 입은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유해의 경우 신원이나 유가족이 확인되지 않은 유해들은 세종시 추모의집에 임시로 안치돼 있다.
이날 오후 방문한 세종시 추모의집 2층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추모관'과 확연히 비교됐다.
2층 추모관 문을 열고 들어서면 발굴장소 등이 적힌 안치유해 안내도가 보였고, 양쪽으로 안치실이 한 개씩 있었다. 안치실 내에는 2m가 넘는 대형 항온항습기와 36개의 안치장이 있었다.
각 안치장에는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의 유해 3900여구가 순저지(가장 얇은 한지)에 고이 싸여 불투명한 플라스틱 상자에 분류돼 보관되고 있었다. 연구소에 방치되고 있는 선감학원 피해자 유해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유해 수습에 책임이 있는 행정안전부나 경기도가 유해 안치에 대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어, 선감학원 피해자 유해들은 언제까지 연구소에 임시 보관될지 미지수다.
연구원 관계자는 “보통 유해 발굴은 연구원에서 보관하다가 보고서 작성이 끝나면 빨리 인계한다”며 “선감학원 발굴 관련 2차 보고서는 내년 1월까지 작성할 계획인데, 1차 유해들을 포함해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이관 장소를 정하지 않아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했다.
이와 관련 경기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선감학원 피해자 소송 대리인단(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등 시민단체 관계자 10여명은 이날 경기도의회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선감학원 피해자 유해·유품 보관 방법을 전면 개선하라고 정부에 요구했다.
이들 단체는 “작년과 올해 발굴된 유해와 유품은 발굴을 진행한 위탁업체에 임시 보관된 상황이다. 유해는 진실규명의 단서가 되는 소중한 자료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대책이 없다”며 “정부, 경기도가 추모시설 마련 등의 대책을 세울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선감학원은 1942년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군인 양성을 위해 안산시 선감도에 설립해 운영한 시설이다. 해방 이후인 1946년부턴 경기도가 시설을 인수해 1982년 9월까지 부랑아 수용시설로 사용했다. 이곳에 수용된 5000명 이상 아동은 구타와 강제 노역 등 심각한 인권 침해를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공식적인 선감학원 원생 사망자는 24명이지만, 진실화해위원회는 유해 발굴을 통해 더 많은 사망자가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관련 기사 : 선감학원 유해·유품 '추모시설' 마련 촉구
/정해림 기자 sun@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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