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수 인천공항본부세관 과장
인천일보에 근거 담긴 사료 공개
▲ [성냥공장 특허장 사본] 1885년 9월3일,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은 라생보에게 일정한 조건을 달아 성냥공장 설립을 허가하는 특허장을 미공사 푸트를 통해 내줬다. /자료제공= 김성수 인천공항본부세관 여행자통관검사관 과장
▲ [성냥공장 특허장 사본] 1885년 9월3일,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은 라생보에게 일정한 조건을 달아 성냥공장 설립을 허가하는 특허장을 미공사 푸트를 통해 내줬다. /자료제공= 김성수 인천공항본부세관 여행자통관검사관 과장

1917년 설립해 우리나라 첫 성냥공장으로 알려진 인천 동구 조선인촌주식회사보다 30여년 먼저 서울 용산에서 문을 연 성냥공장이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조선 말 정부의 특허장 등이 이를 뒷받침한다는 설명인데, '우리나라 첫 성냥공장'에 대한 보다 면밀한 고증이 필요해 보인다.

▶관련기사 9면 : [김성수 인천공항본부세관 여행자통관검사관 과장] “최초 성냥공장 '인천' 설립, 고증 새로 해야”

김성수 인천공항본부세관 여행자통관검사관 과장은 “개항기 혹은 우리나라 최초의 성냥공장이 인천에 설립됐었다는 그동안의 설은 틀렸다”며 근거 사료들을 인천일보에 공개했다.

이 중 가장 눈에 띄는 자료는 조선 후기 외교·통상사무를 관장한 관청인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이 1885년 9월3일 성냥공장 설립을 허가하는 내용이 담긴 특허장이다.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은 상인 로젠바움(Joseph Rosenbaum)에게 소정의 세금납부와 1년 내 사업개시라는 조건을 달아 특허를 내줬다. 국내 첫 성냥공장으로 알려진 인천 동구 금곡동 조선인촌주식회사보다 32년 앞선 시기다.

로젠바움은 청나라 상하이에서 화순양행 간판을 걸고 문구와 흡연 제품을 취급하던 인물로 국내 입국 후 용산에 유리를 제조하는 기업을 추진했다가 어그러진 뒤, 그 자리에 성냥공장을 지었다는 게 김성수 과장 설명이다.

로젠바움이 미국공사 포크에게 보낸 서한문에도 '성냥공장은 이미 완공됐다'는 내용과 함께 투자자들로 받은 투자금 내역이 자세히 적혀 있다.

1827년 영국에서 처음으로 발명된 성냥은 국내에는 1880년 범어사 출신 승려 이동인이 일본에 갔다가 귀국할 때 처음 들여온 것으로 전해진다.

1886년 제물포에 들어선 세창양행 무역상사가 성냥을 수입해 팔았고, 1917년 10월에는 국내 최초의 성냥공장인 조선인촌주식회사가 금곡동에서 문을 열었다는 게 학계 정설이었다.

김성수 과장은 “당시 '런던 앤 차이나 텔리그라프'는 '조선성냥공장이 파산했으며 공장설비는 중국인에게 4000달러에 처분됐다'고 보도했다. 용산 성냥공장 성냥은 가격과 품질면에서 외국산보다 못해 고전했으나 제품이 판매됐고 실제 수출까지 했다”며 “청나라해관이 발행한 1886년도 해관연보에 실린 인천해관 서리세무사 쉐니케의 보고서에는 '우려스럽게도 성냥 수출은 수년 내에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60달러어치 60그로스가 선적됐다'고 쓰여 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지역 학계에서는 '첫 성냥공장은 서울'이라는 주장이 나온 단계로, 해당 연구가 진행된 뒤 결론을 내려도 늦지 않다는 반응이다.

인천에서 수십년 동안 역사학자로 활동한 한 인사는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 등 자료를 보면 김성수 과장 얘기에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다”면서도 “아직 이를 놓고 철저한 고증과 연구들이 수반되지 않았기 때문에 당장 결론을 내기는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김원진 기자 kwj7991@incheonilbo.com



관련기사
[김성수 인천공항본부세관 여행자통관검사관 과장] “최초 성냥공장 '인천' 설립, 고증 새로 해야” “우리나라에서 성냥공장이 만들어진 것은 1917년 10월4일로 이 자리에 조선인촌주식회사가 설립되면서 시작됐습니다.” 인천 동구 배다리성냥박물관에 적힌 이 문구는 유지될 수 있을까. 인천공항본부세관 여행자통관검사관 김성수 과장은 “개항기 혹은 우리나라 최초의 성냥공장이 인천에 설립됐었다는 그동안의 설은 틀렸다”며 여러 사료들을 인천일보에 공개했다. 1917년 10월 설립해 우리나라 첫 성냥공장으로 알려진 인천 동구 금곡동 조선인촌주식회사보다 32년 일찍 서울 용산에서 성냥을 생산 수출하던 공장이 있었다는 증거들이 넘친다는 게 김성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