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자산 허물지 말고 창조 공간 재활용을

독일 에센 촐퍼라인 탄광 1986년 문 닫아
주정부, 1989년 주민 의견 따라 보존 결정
'재사용을 통한 보존' 원칙 아래 리노베이션
기존 건축물 활용…문화예술 단지 탈바꿈

역사·지역성 기반 정책, 의지 갖고 집행을
창조적 아이디어로 혁신적 결합 시도해야
공기업·민간 참여…다양한 개발 방식 도입
인천 글로벌 도시를 위한 문화비전
▲ 인천 동구 동일방직 공장 전경. /인천일보 DB
▲ 인천 동구 동일방직 공장 전경. /인천일보 DB

인천항 주변의 북성포구에서 만석부두 그리고 화수부두를 따라 근대화의 길을 열었던 아리마정미소, 조일양조장, 대한성냥공장, 동일방직 등의 산업 시설은 우리나라의 근대 산업 발달 과정을 한눈에 보여준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적 흔적들이 장기간 방치되다가 개발 논리로 2011년 인천세관, 2012년 남한 최초의 근대적 소주 공장인 조일양조장, 2013년 조선우선주식회사의 창고였던 옛 국일관, 2017년 애경사 비누 공장 창고와 선박용 못을 제조한 신일철공소 등 하나 둘 지속적으로 사라졌다. 현재에도 철거냐 존치냐를 두고 민-관의 갈등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유휴 산업 시설은 해당 입지의 장소성과 인천의 정체성을 회복할 수 있는 주요한 요소로서 과거와 현재를 잇는 상징적이고 역사적인 의미를 가진 소중한 산업유산이다. 따라서 인천의 가치를 극대화하고 민선8기의 정책 목표인 글로벌 초일류 도시, 인천을 위하여 산업유산을 인천의 자산으로 키울 수 있는 고민이 필요하다.

산업유산(Industrial Heritage)의 개념은 서구에서 비롯됐다. 1973년 산업유산보전국제회의가 설립되어 개념을 정립하면서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산업유산은 역사·기술·사회·건축적 가치를 지닌 현존하는 산업 문화의 유물이다. 그 범위는 산업 부지, 건축물, 공장, 기계 및 설비, 주택, 산업적 경관, 생산품 및 공정, 산업 사회에 관한 자료 등을 모두 포함한다.

우리나라는 2007년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역근대산업유산을 활용한 예술창작벨트 조성사업'을 통해 '근대산업유산'이라는 용어가 공식 문서에서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도시재생의 흐름 속에서 산업 시설의 재활용이 도시의 중요한 정책적 이슈로 떠오르면서 도시의 경관과 환경을 해치는 애물단지가 아니라 가치를 가진 새로운 도시 재창조의 자산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게 됐다. 해외에서 영국 런던의 테이트 모던(Tate Modern), 미국 뉴욕의 하이라인(The High Line), 독일 에센의 촐퍼라인(Zollverein) 등의 산업유산 재생 사례들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면서 전 세계적으로 산업유산에 대한 재활용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인천에서도 1950년대 세워진 조흥상회 건물은 배다리 안내소 및 게스트하우스로, 또 인천양조장은 스페이스빔으로, 그리고 일본계 용역회사 야마토쿠미 사무소였던 목조 건물은 카페 팟알 등으로 탈바꿈한 사례들이 있다. 그러나 산업유산의 재활용은 단순히 점적인 측면으로 단편적으로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이에 산업유산 재활용 성공 사례의 하나인 독일 에센의 촐퍼라인 사례를 살펴보고, 글로벌 초일류 도시 인천을 위한 산업유산의 재활용 방향을 제시한다.

▲ 독일 촐퍼라인 야간 행사 모습. /사진=촐퍼라인 홈페이지 갈무리
▲ 독일 촐퍼라인 야간 행사 모습. /사진=촐퍼라인 홈페이지 갈무리

독일 관광명소 '촐퍼라인', 혁신과 변화의 아이콘

독일의 뒤스부르크가 철광 도시라면 에센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 기적의 견인차 역할을 했던 탄광 도시로 경제 부흥을 일으켰던 곳이다. 촐퍼라인은 12개의 채굴광과 코크스 제조 공장 등 탄광 시설이 있는 독일 최대 규모의 탄광 단지였다. 그러나 1980년대부터 석탄과 철강 산업이 사양 산업이 되고 1986년 에센의 290여개의 탄광 중 촐퍼라인이 마지막으로 문을 닫으면서 일반인들에게 접근이 금지된 죽은 땅이 됐다. 이러한 촐퍼라인은 1989년 주정부의 10년 미래 프로그램인 '엠셔공원 건축박람회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재생 방안이 모색됐다. 루르공업지대 엠셔강 유역의 17개 공업도시 내에 폐허된 산업 시설과 도시 환경을 재생시키기 위해 총 85개의 프로젝트가 수행됐다.

촐퍼라인의 산업유산 재활용은 크게 2단계의 재생과정으로 이루어졌다. 1단계는 폐광된 이후부터 2001년까지로 폐광 이후 실업과 환경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면서 처음에는 민간의 부동산 개발 회사가 촐퍼라인을 매입해 기존 공장 시설을 전면 철거하고 새롭게 재개발을 하려했으나 1989년 주정부가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촐퍼라인의 탄광 시설을 보존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루르의 17개 공업 지역과 공동으로 출자해 '엠셔공원건축박람회'라는 조직을 설립하고 '재사용을 통한 보존'이라는 원칙하에 리노베이션을 했다. 2단계는 2002년부터 2020년까지로 촐퍼라인을 문화, 경제의 장으로 변화시키기 위하여 기존 시설의 재생 프로그램과 새로운 기능을 도입하고 구조적인 인프라까지 설치하는 종합적인 마스터플랜을 수립하여 추진됐다. 현재 촐퍼라인은 기존 압축실을 재활용하여 레스토랑과 다기능 이벤트홀 등으로 개조한 카지노 촐퍼라인, 보일러실을 개조한 레드닷 디자인 박물관, 코크스 제조 공장을 재활용한 촐퍼라인 아이스링크와 공장 수영장, 석탄 세척 공장을 개조한 방문자센터와 루르 박물관 그리고 광산 분위기의 디자인 호텔인 호텔프랜즈, 예술대학, 공원 등 다양한 시설이 있다. 폐탄광 단지였던 촐퍼라인은 문화, 경제, 교육, 여가, 관광의 명소로 1500여 개 이상의 일자리를 창출했으며, 연간 약 200만명의 방문객이 찾아오는 문화예술 단지로 탈바꿈됐다. 200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으며, '문화의 도시상', '녹색도시상'을 수상했다. 촐퍼라인은 발상의 전환으로 산업유산을 재활용하여 에센지역을 넘어 독일을 대표하는 창조 산업의 본거지로 거듭난 성공적인 재생 사례라 할 수 있다.

 

탄광 산업단지가 문화예술단지로 변모

촐퍼라인의 사례를 통해 인천을 산업유산의 재활용 방향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인천시의 정책 수립과 강력한 집행 의지가 필요하다. 촐퍼라인 주정부에서 10년 미래 프로그램을 수립한 것과 같이 인천 전 산업지역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를 통해 재활용 방안을 마련하고 종합적인 컨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할 전담 부서를 통해 정책을 집행하여야 한다. 민선 8기 시정부는 글로벌도시국을 신설하여 정책을 수행 중에 있다. 1단계로 중, 동구의 산업유산 재활용을 제물포 르네상스 프로젝트 일환으로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산업유산 재활용을 위한 정책 수립 시 역사성·지역성과 기능성을 고려하여야 한다. 촐퍼라인과 같이 기존 산업 시설을 헐지 않고 리노베이션 작업을 통해 기존 건물에 내재된 역사성과 지역성을 유지하도록 하면서 기존 산업 시설의 구조, 형태, 공간, 재료 등 기능적 측면에서 최소한으로 보완해 노후한 산업용 건물을 신축 건물 못지않게 합리적으로 재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창조적 아이디어 발굴로 기존 건물과 새롭게 추가되는 부분과의 혁신적 결합을 다양하게 시도하여야 한다. 촐퍼라인의 경우 산업 시설도 하나의 자산으로 보존하면서 폐탄광 단지를 문화예술 단지로 기능을 전환하고, 대학 및 교육 시설을 새롭게 추가하여 문화예술 생산 공장으로 탈바꿈시켜 디자인 문화 생산지라는 새로운 가치를 창조했다. 또 노동자들의 공간을 시민들의 열린 공간으로 전환시켜 공유 가치를 재창조했다.

넷째, 경제·사회·환경적 맥락에서 산업 시설을 재활용하여야 한다. 촐퍼라인의 경우 새로운 가치 창출로 교육의 장과 일자리를 창출하고, 기존 생태 환경을 적극 보존하면서도 근대 시설물과 조화되도록 공간을 녹지화하는 등 친환경적 문화예술 단지로 조성하여 지속 가능성을 확보했다.

마지막으로 성공적인 산업유산의 재활용을 위해서는 공기업의 참여 확대 및 민간 참여 유도로 다양한 방식의 사업 추진이 필요하다. 사업 추진을 위한 재원 확보는 사업 성패의 필수적 요소이다. 시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면단위의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국비나 인천시의 재정 투입에는 한계가 있다. 이러한 이유로 공기업 특히 iH(인천도시공사)의 역할 강화가 필요하다. iH가 참여하게 되면 사업의 실행력이 강화될 뿐 아니라 사업비의 자금 조달 방법 또한 다양한 사업 구조의 방식으로 사업이 가능할 수 있다. 민간도 건설 기업, 금융 기업, 사회적 기업, 마을 기업 등 기업의 규모나 담당 사업 영역에 따라 다양하게 참여가 가능할 것이다. 특히 리츠 등의 다양한 금융 기법을 활용한 사업 방식을 통해 주택도시보증공사(HUG)와 민간의 투자를 유도할 수 있으며, 사업 완료 후 관리·운영 주체로 참여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근대화와 산업 발전의 중심지였던 인천의 역사성과 정체성을 외면하지 말고 인천의 도시 가치 극대화를 통한 글로벌 도시 경쟁력 및 지속 가능성 확보를 위해 산업유산의 재활용을 적극 추진할 것을 제안한다. 인천에서도 공공의 주도하에 공공 공간으로 공유 가치를 재창조한 촐퍼라인과 같은 성공적인 산업유산 재활용 사례가 꼭 탄생하기를 기대한다.

▲ 조금숙 인천도시공사 기획조정실장

/조금숙 인천도시공사 기획조정실장

/공동기획=인천일보·인천학회·인천도시공사



관련기사
[인천 글로벌 도시를 위한 문화비전] 전통·현대 공존의 도시, 문화산업 청사진 그려야 문화유산 활용한 창의도시로 인천의 도약 시도 필요21세기는 창의의 시대로 문화적 창의성은 사회발전과 개인의 삶의 질을 고양시키는 원동력이며 도시발전의 핵심역량이 된다. 창의도시로서의 염원을 담아 인천의 핵심 콘텐츠인 전통예술, 문화재, 문화유산을 활용한 문화산업을 차세대 신 성장 산업으로 발전시킬 청사진을 그려야 한다. 신·구 시가지로 나누어진 인천은 해양관광도시로 국제도시로서의 면모와 전통적인 거리와 주변의 자연환경이 그대로 보존된 원형의 도시미(都市美)를 자랑하고 인천의 원도심은 훌륭한 창의자원으로 개발할 가치가 충분하다. 세계 [인천 글로벌 도시를 위한 문화비전] 문화·관광·산업 어우러진 세계적 하버시티로 인천시는 제물포르네상스 프로젝트를 통해 내항과 원도심 일대를 문화와 관광, 산업이 융합되는 새로운 도시로 재탄생시키는 미래 비전을 그리고 있다. 대한민국 근대사와 산업의 역사, 인천의 역사문화와 이야기 자원이 응집된 내항 일대를 세계적인 하버시티로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싱가포르, 요코하마, 시드니, 함부르크 등 세계의 많은 도시들은 항만과 수변 지역 재개발을 통해 매력적인 관광명소를 육성해왔다. 항만의 기능 변화로 새로운 발전 전략이 필요한 내항과 주변지역, 글로벌 관광명소로 도약하기 위해서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내항 주변 관광의 [인천 글로벌 도시를 위한 문화비전] 쇠퇴한 항구재생…스마트 녹색도시 조성하자 대학시절 감명 깊게 읽었던 마크 트웨인의 에세이에서 항구는 내게 감성적인 공간으로 기억된다. 멀리 통통배가 지나가고 사람들이 시끌벅적 일하는 모습, 뱃고동 소리를 내며 꿈을 갖고 출항하는 선박들이 아련하게 느껴진다.인천은 바다가 있는 항구도시다. 항구는 새로운 문물이 들어오는 관문으로서 도시성장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문명의 발상지에 항구가 존재했던 것을 보면 도시문명의 발달은 항구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한때 성장을 견인했던 항구가 시간이 지나면서 쇠락하게 된다. 세계의 항구도시는 쇠락한 항구에 어떠한 에너지 [인천 글로벌 도시를 위한 문화비전] 인천, 도시 이미지와 아우라 눈을 감고 세계 각지의 도시로 여행을 떠날 궁리를 한다. 이미 마음은 송도를 지나 인천대교에 오르고, 인천공항고속도로를 달린다. 세계 주요 도시들이 머릿속에 하나둘 떠오른다. 미국 뉴욕 타임스퀘어, 호주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프랑스 파리 에펠탑, 영국 런던 템스강의 타워브릿지, 포르투갈 리스본의 28번 트램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도시는 땅 위에 세워진 건물과 각종 시설에서 사람들이 생활하고 활동해 나가며 공간에 특성을 부여하고 흥망성쇠를 반복하는 인간의 터전이다. 하지만 우리는 인구(population), 활동 [인천 글로벌 도시를 위한 문화비전] 초일류 도시 인천, 글로벌 인재 육성이 핵심이다 인천이 초일류 도시를 향하여 발돋움하고 있다. 인천은 역사적으로도 지정학적인 장점을 바탕으로 글로벌 도시로 발전할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 개항 이후 새로운 문명의 교류 장소였으며, 산업화 시대에는 수출입의 전진 기지 역할을 해 온 인천은 이제 인천국제공항과 인천경제자유구역 출범 이후 본격적인 글로벌 도시로 성장하고 있다.민선 8기 인천시는 이러한 인천의 잠재력을 구체화하기 위해 초일류 도시 조성이라는 비전과 목표를 설정하여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초일류 도시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인천 글로벌 도시를 위한 문화비전] 인천의 미래를 문화로 꽃피우자 문화 도시·문화 시민은 도시가 지향해야 할 유토피아셰익스피어는 영국이 낳은 세계적 대문호다. 셰익스피어가 쓴 희곡 때문에 영어가 세계 공용어로 가는 시작이 되었고, 영국이 유럽의 변방에서 문화 대국 대영제국의 길로 들어서게 됐다. 명곡은 몇 백 년이 흘러도 영혼에 생명을 불어넣고, 명화는 몇 십 년이 흘러도 감흥이 남는다. 명품 도시는 세계인을 유혹하고 머무르게 한다. 그러나 우리의 도시는 언제라도 다시 부수고 새로 짓고 싶어하는 대상일 뿐이다. 도시에 철학과 영혼이 없고 문화가 없기 때문이다. 도시는 생명력이 있어야만 오래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