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청(盜聽) 운운, ‘멜레토스급’의 궤변

 

‘궤변어록(詭辯語錄)’이라도 만들려나 보다. “미국이 악의 갖고 도청한 정황 없어.…더 이상 묻지 마.” ‘MBC뉴스’ 자막에 보이는 대한민국 국가안보실 1차장이라는 자의 말이란다. ‘도청(盜聽)’은 남의 이야기, 회의 내용, 전화 통화 따위를 몰래 엿듣거나 녹음하는 일이다. 도청의 ‘도(盜)’는 훔치다, 도둑질하다는 의미이다. ‘훔쳐 들었건, 도둑질해 들었건, 악의가 있어 한 행동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도청한 정황은 있지만 악의는 없단다. 역설도 이쯤이면 수준급이다. 마치 2400년 전, 「소크라테스의 변명」에서 ‘말과 피리 부는 사람’ 이야기를 떠올리게 만든다. ‘말[馬]을 믿지 않으면서 말에 관계되는 일을 믿고 피리 부는 사람을 믿지 않으면서 피리 부는 사람에게 관계되는 일은 믿는다’는 소크라테스의 비감어린 말과 똑 같다.

그의 상전쯤 되는 이는 번연히 눈을 뜨고도 ‘바이든’이 ‘날리면’이라더니 ‘이 XX’도 기억에 없다하여 온 국민을 난청환자로 만들어 버렸다. 한 입으로 온 까마귀질 하는 격이요, 입 가리고 고양이 흉내를 내는 꼴이다. 선조들은 이렇게 자기 입으로 한 말을 바꾸고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행위를 ‘고수관(高壽寬)의 변조’라 일갈하였다. 북에서 온갖 부귀를 누리다 내려온 한 여당의원은 ‘김구, 김일성 전략에 이용당해’ 운운이라 떠든다. 차마 목불인견인 이런 상황을 보고 듣는 국민은 정말 속이 터진다. 이 정부는 궤변에 관해서 거의 ‘멜레토스급’이다. 그는 ‘소크라테스는 신들을 믿지 않으면서 신들을 믿기 때문에 죄인이다’라는 궤변으로 소크라테스를 고소하였고 죽였다.

저 위 도청 운운은 4월 8일(현지시각) <뉴욕타임스>의 보도로 촉발된 의혹으로 현재까지 뉴스거리다. 미국 언론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미국 정보당국이 동맹국을 도·감청한 정황이 담긴 기밀 문건이 유출됐다고 보도했다. 정보 출처는 ‘시긴트(SIGINT,신호정보)’란다. 한국 정부의 전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과 전 외교비서관이 우크라이나에 포탄을 지원하는 방안에 대해 논의한 내용도 담겼다. 결국 어제는 “김태효, 미 문건 ‘위조’라더니 내용 그대로 포탄 수출된 정황 나와, 국방부, MBC 보도에 ‘확인해드릴 수 없다’면서도 ‘우크라이나에 군수물자 지원 적극 추진’”이란 기사가 보인다.

어떻게 이런 엄중한 도청 상황을 두고 ‘악의가 없고 기자에게 더 이상 묻지마’라 고압 태도를 보일까? 야만의 언술이다. 대통령은 엊그제 “4·19혁명 열사가 피로써 지켜낸 자유와 민주주의가 ‘사기꾼’에 농락당해서는 절대 안 된다”고 말했다. 수준은 저열하고 말은 모순이며 국민이 속은 ‘사기꾼’이 정녕 누구임을 본인만 모른단 말이다. 국민들은 몹시 성이 났다. 요즈음 시국선언이 여기저기서 열린다. 사회단체, 정의사제구현단, 대학교수들까지 현 대통령과 이 정부를 성토하는 성명을 내놓는다. 촛불함성은 점점 커진다. 이제라도 못난 정치 행태를 석고대죄해야한다. 아직 국민들은 「훈자오설」 의 아버지처럼 자식으로 여겨 이런 꾸지람을 하는 것이다.

강희맹(姜希孟, 1424~1483)의 「훈자오설(訓子五說,자식을 가르치는 다섯 가지 이야기)」 중, <요통설(溺桶說, 오줌통 이야기)>이 있다. 관아에서 큰 시장의 으슥한 곳에 오줌통을 만들어 놓았다. 용무가 급한 시장 사람들을 위해서다. 하지만 일상의 선비가 오줌통에 오줌을 누면 벌을 주었다. 그런데 한 양반집 변변치 못한 아들이 몰래 거기에다 오줌을 누곤 하였다. 오줌통 관리하는 이가 말리고 싶었으나, 그 아버지 위세가 두려워 말을 못했다. 시장 사람들도 모두 그르게 여겼지만 웃고 지나갈 뿐이었다. 아들은 더욱 기고만장하였다. 사람들을 꺼려 혹 오줌을 못 누는 자가 있으면 아들은 “겁쟁이!”라고 비웃으며 “나는 날마다 오줌을 누지만 아직까지 탈이 없다”고 떠들어 댔다.

이를 알고 아버지가 꾸짖었다. ‘시장에는 많은 사람이 모여드는 곳이요, 여러 눈이 보고 있는 데 너는 양반의 자식으로 공공연히 대낮에 거기에 가서 오줌을 누니 부끄럽지도 않느냐. 남에게 천대와 증오를 받을 뿐 아니라 화도 따른다’고 호되게 야단쳤다. 그러자 아들은 ‘처음에는 사람들이 내가 오줌 누는 것을 보고 비웃더니, 얼마쯤 지나자 비웃는 자가 차츰 줄었습니다. 이제는 여러 사람이 보고도 그냥 지나갑니다’라며 대들었다.

이러자 아버지는 ‘네가 이미 남에게 버림을 받은 놈이 되었구나. 처음에 사람들이 모두 웃은 것은 너를 양반집 자식으로 여기고 비웃음을 당하면 네 행동이 그치리라 생각했던 것이요, 시간이 흐르며 차츰 드물어진 것은 그래도 너를 양반집 자식으로 여겼기 때문’이라며 이렇게 꾸짖었다. “지금 곁에서 보고도 아무런 나무람이 없는 것은 너를 사람으로 대하지 않기 때문이다(今也傍視而無人詆者 人不以人類待汝也)”라며, “개·돼지가 길바닥에 오줌을 싸도 사람들이 늘 비웃더냐?(犬彘之溲于塗中 人尙齒笑歟)”고 묻는다. 이런데도 아들은 사람들이 그르게 여기지 않는데, 아버지만 잘못이라 하시냐고 오히려 따지고 든다. 아버지는 결국 “세상에 부모 없는 놈에게는 훈계하는 자도 없는 법이다(世無親者 無規者)”하고 만다.

얼마 후에 그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고 아들은 그날도 오줌통에 오줌을 누고 있었다. 갑자기 아들 머리 뒤에서 바람이 일며 독한 매질이 가해졌다. 아들은 매 때린 자를 붙들고 내가 여기 오줌 눈 것이 거의 10년이 가까운데도 매질한 자가 없었다고 대들자, 시장 사람들이 ‘이놈아! 참고 있다가 이제야 분풀이하는 거’라며 돌팔매질을 해댔다. 모진 매를 맞고 몸져누운 아들은 한 달이 넘어서야 겨우 일어나 아버지의 진정어린 훈계를 생각하고 슬피 울며 자신을 책망한다. “웃음 속에 칼날이 숨어 있고(鏌鎁藏於戲笑) 성냄 속에 진정이 들었구나(卵翼隱於震怒).”

온 나라 사람들이 성나 한 마디씩 한다. 전 대통령을 지낸 분은 “5년 성취 순식간에 무너졌다”고 통한의 한숨을 내쉰다. 이쯤이면 이 정부 사람들은 저 아버지의 훈계를 새겨보아야 한다. 한유(韓愈) 시에 “어찌 기름으로 옷을 빨까, 빨면 빨수록 때가 더 번지는걸(如以膏濯衣 每漬垢逾染)”이라는 구절이 있다. 가슴속 시름을 씻어 보려 시를 지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오히려 더 시름만 깊어졌다는 말이다. 나 역시 성냄이 삭여질까 글을 쓰지만 저이들 행태가 바뀔 것 같지 않아 한숨만 짓는다.

 

 

▲ 휴헌(休軒) 간호윤(簡鎬允·문학박사):인하대학교 초빙교수·고전독작가(古典讀作家)
▲ 휴헌(休軒) 간호윤 (簡鎬允·문학박사):인하대학교 초빙교수·고전독작가(古典讀作家)

/휴헌(休軒) 간호윤 (簡鎬允·문학박사):인하대학교 초빙교수·고전독작가(古典讀作家)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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