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은 재외 동포들의 유입과 정착이 이어지고 있는 다문화 도시이다. 외지 출신도 많아 충청을 비롯한 영남, 호남, 이북5도 등 출신지역이 다양하게 분포돼 작은 한반도라는 특색을 나타내고 있다고도 한다. 한국전쟁을 거치며 북한으로부터 피난민들이 대거 유입됐고, 남한 각 지역에서 이주해 와 근대화를 이뤘다. 이제 국제도시 인천이 재외동포를 맞이해야 한다.
인천은 구한말 첫 이민의 출발지였으며, 근대문명의 초입지였다. 대한민국이 경제개발 단계에서 인력 송출 국가로서의 지위를 유지해 왔지만 이제는 이주자들을 포용하는 도시로 발전하고 있다. 한민족은 노동이민, 교육이민 등 다양한 형태로 해외로 나갔으나 역 이민 현상이 증가하는 추세다. 인천은 이들의 귀환과 정착의 교두보로서의 역할을 증진해야 할 때다. 연수구 선학동, 연수1동, 남동구 논현1동 등에는 키릴문자의 상호도 눈에 띈다. 한국계 중국인(조선족), 고려인 이주자, 귀환 이주자 등 외국국적 동포들도 늘고 있다. 송도국제도시에도 한국계 중국인들이 다수 수학 중이어서 국제적인 기능의 도시 인프라를 활용하게 됐다.
인천은 이민 다양성을 포용하는 도시로서 재외동포와 함께 미래를 준비해 나가야 할 품격을 갖추었다고 본다. 돌이켜보면 인천은 이미 재외동포의 꿈과 희망을 심어온 곳이다. 하와이이민 50주년을 기념해 1954년 개교한 인하대는 20만 동문을 배출했다. 주권 상실 후 하와이에서 조국 독립운동과 민족교육을 펼쳤던 한인기독학원의 매각 대금 20만달러가 대학 설립의 종잣돈이었다. 부산 피난정부 당시, '인하공과대학 설립에 관하여'라는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특별담화가 발표되기도 했다. 교명 '인하'도 인천과 하와이의 첫 음으로 지었다.
재외동포의 씨앗이 열매를 맺는 역사의 도시로서 인천은 민족 공동체를 형성해 나갈 수 있는 원동력을 품어왔다. 120년 전 하와이 사탕수수밭 노동이민을 떠났던 선조들의 대부분은 인천내리교회 교인들이었다. 그들의 후예를 지원할 재외동포청이 인천에 들어서야 할 이유 중 하나다. 또 충분한 행정공간을 즉시 제공할 수 있는 시설 인프라도 많다. 재외동포청은 인천의 자존감을 내건 문제이다. 다양성을 포용하는 300만 인천시민이 730만 재외동포의 마중물이 돼야 한다. 재외동포청 인천유치를 주장하는 당위성이다.
/신한용 인하대학교 총동창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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