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들 독립운동 거점, 방치된 채 수풀만 우거져
▲ 인천 이민자들이 제물포항에서 출발해 하와이에 도착해 처음으로 일을 시작하게 된 호놀룰루 와이알루아(Honolulu Waialua) 지역에 위치한 농장. 현재 일부만 남아 있다. 예전 이 일대가 전부 사탕수수 농장이었다.
▲ 인천 이민자들이 제물포항에서 출발해 하와이에 도착해 처음으로 일을 시작하게 된 호놀룰루 와이알루아(Honolulu Waialua) 지역에 위치한 농장. 현재 일부만 남아 있다. 예전 이 일대가 전부 사탕수수 농장이었다.
▲ 와이알루아(Waialua) 지역에 위치한 농장에 위치한 비누 판매점 안에는 당시 수탕수수밭 노동자들이 사용한 물건들과 사탕수수를 보낸 전표 등이 보존돼 있다. /양진수 기자 photosmith@incheonilbo.com
▲ 와이알루아(Waialua) 지역에 위치한 농장에 위치한 비누 판매점 안에는 당시 수탕수수밭 노동자들이 사용한 물건들과 사탕수수를 보낸 전표 등이 보존돼 있다. /양진수 기자 photosmith@incheonilbo.com

와이키키 해변, 여행, 휴양지로 알려져 있는 미국 하와이 섬은 이민자들의 땀과 눈물로 만들어진 '대한민국의 독립운동'의 출발지다. 121년 전 인천 제물포항을 출발해 1903년 1월13일 하와이에 도착한 이민자들은 사탕수수밭과 파인애플 농장에서 고된 노동을 하면서 독립운동에 발 벗고 나섰다.

인천국제공항을 출발한 지 8시간, 호놀룰루 국제공항(대니얼 K. 이노우에 국제공항)에 내렸다. 향긋한 꽃향기의 레이를 건 관광객들의 웃음꽃이 피어올랐다. 하와이가 조선의 주권 상실 후 독립운동의 전초기지였고, 민족 교육운동의 활발한 거점이었다는 것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 121년 전 제물포항을 출발한 이민자들은 1903년 1월13일 호놀룰루항 7번 선석에 도착했다. 이들은 사탕수수밭, 파인애플 농장에서 고된 노동을 하면서 독립운동에도 발 벗고 나섰다. /양진수 기자 photosmith@incheonilbo.com
▲ 121년 전 제물포항을 출발한 이민자들은 1903년 1월13일 호놀룰루항 7번 선석에 도착했다. 이들은 사탕수수밭, 파인애플 농장에서 고된 노동을 하면서 독립운동에도 발 벗고 나섰다. /양진수 기자 photosmith@incheonilbo.com
▲ 호놀룰루 하와이극장에서 인천시 주최로 열린 '이민 120주년 기념식·축하공연'에 참석한 유정복 인천시장이 하와이 동포들에게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인천시립무용단의 화려한 공연은 교민들에게 극찬을 받았다. /양진수 기자 photosmith@incheonilbo.com
▲ 호놀룰루 하와이극장에서 인천시 주최로 열린 '이민 120주년 기념식·축하공연'에 참석한 유정복 인천시장이 하와이 동포들에게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인천시립무용단의 화려한 공연은 교민들에게 극찬을 받았다. /양진수 기자 photosmith@incheonilbo.com

121년 전 제물포항을 떠나 첫 이민에 나선 사탕수수밭 노동 선조들의 첫 걸음은 어떠했을까? 이민선 갤릭호에 맡긴 20여일의 항해는 거칠고 두려운 긴 여정이었을 것이다. 현지 김영태 전 한인회장의 도움으로 이민 1세대들이 처음으로 정착한 와이알루아 사탕수수 농장 지대와 그들이 삶의 마지막을 새긴 푸우이키 공동묘지(Puuiki cemetery)를 찾아 나섰다.

안내 간판이나 도로가 정비되지 않아 현지인도 길을 놓치는 난감함이 반복됐다. 지난달 22일(현지시간) 인하대총동창회 탐방단 일행과 빅아일랜드 힐로 지역의 동지촌 숯가마 터를 방문했다. 동지촌은 우남 이승만 박사가 이민 1세대들의 노후를 영위하고 숯을 팔아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하기 위해 조성한 한인 자립마을이었다.

▲ 독립운동 자금을 고국에 보내기 위해 조성한 하와이 빅아일랜드 동지촌의 숯가마 터. 숯가마는 숯을 만들어 미군에 판매하려 만든 시설이다. 현재는 수풀에 가려져 찾기 어렵다. 인하대학교 총동문회 회원들과 현지인들이 유적을 찾고 있다. /양진수 기자 photosmith@incheonilbo.com
▲ 독립운동 자금을 고국에 보내기 위해 조성한 하와이 빅아일랜드 동지촌의 숯가마 터. 숯가마는 숯을 만들어 미군에 판매하려 만든 시설이다. 현재는 수풀에 가려져 찾기 어렵다. 인하대학교 총동문회 회원들과 현지인들이 유적을 찾고 있다. /양진수 기자 photosmith@incheonilbo.com
▲ 하와이 빅아일랜드 동지촌 숯가마 터의 일부.  /양진수 기자 photosmith@incheonilbo.com
▲ 하와이 빅아일랜드 동지촌 숯가마 터의 일부. /양진수 기자 photosmith@incheonilbo.com
▲ 하와이에 있는 묘지 비석에는 고국을 그리워하며 자신들의 출생지를 새겨 넣었다. 제물포항에서 출발한 첫 이민자의 86%는 인천(강화·부평 포함) 사람들이다. 미국 하와이 빅아일랜드 알라에 공동묘지. /양진수 기자 photosmith@incheonilbo.com
▲ 하와이에 있는 묘지 비석에는 고국을 그리워하며 자신들의 출생지를 새겨 넣었다. 제물포항에서 출발한 첫 이민자의 86%는 인천(강화·부평 포함) 사람들이다. 미국 하와이 빅아일랜드 알라에 공동묘지. /양진수 기자 photosmith@incheonilbo.com

1926년 우남이 설립한 동지식산주식회사가 운영한 숯가마 터는 날로 훼손돼 가고 있는 실정이다. 그들이 묻힌 알라에 공동묘지에는 인천, 강화 출신 등 150여기의 한인 묘지가 역경의 역사를 반증하고 있었다. 하와이는 대한민국 진출이민의 첫 교두보였다.

이민자들이 하와이에 도착한지 120년이 된 오늘, 방치되거나 흔적만 남은 하와이 이민과 독립운동의 현장을 기록한다.

▲ 인천제물포항에서 출발해 하와이에 도착해 처음으로 일을 시작하게 된 호놀룰루 와이알루아 (Hawai Waialua)지역에 위치한 농장. 지금은 커피판매점과 비누 판매점으로 사용되고 있다. 과거 사탕수수밭의 모습이 비누 판매점( North Shore Soap Factory)곳곳에 사진이 있다./양진수 기자 photosmith@incheonilbo.com
▲ 인천제물포항에서 출발해 하와이에 도착해 처음으로 일을 시작하게 된 호놀룰루 와이알루아 (Hawai Waialua)지역에 위치한 농장. 지금은 커피판매점과 비누 판매점으로 사용되고 있다. 과거 사탕수수밭의 모습이 비누 판매점( North Shore Soap Factory)곳곳에 사진이 있다./양진수 기자 photosmith@incheonilbo.com

/양진수 기자 photosmith@incheonilbo.com



관련기사
[포토] 가려진 이민 역사, 다시 세상 밖으로 [사설] 하와이 이민유적 체계적 보존 강구해야 오늘(13일)은 120년 전, 하와이 이민 선조를 태운 미국 상선 갤릭호가 16일간의 항해 끝에 호놀룰루 항에 입항한 날이다. 하와이 사탕수수농장을 향한 한인 121명은 1902년 12월22일 월미도 8부두 앞 해상에 정박 중인 겐카이마루에 올라 일본 나가사키로 출발했다. 대한민국 최초 공식 이민의 서막이다. 나가사키 신체검사에서 탈락한 19명을 제외한 102명이 갤릭호에 승선했지만, 선상 신체검사에서 다시 16명이 탈락돼 미국 하와이 입국은 최종 86명이었다.그들이 도착한 호놀룰루항 7번 선창은 현재, 선셋크루즈 선박들이 출발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