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 S는 H.O.T.의 대단한 팬이었다. 그중에서도 장우혁에 열광했는데, 책가방에 그의 얼굴로 된 열쇠고리를 하도 많이 달고 다녀 장우혁이 걸어가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실제 H.O.T. 멤버 DNA가 들어있다는 목걸이를 그때 S에게서 처음 보고 경악했던 기억도 난다.

'우혁 마누라'인 S이외에도 우리 반에는 '강타부인', '토니와이프', '희준러버', '재원마눌'들이 존재했다.

이들은 하나같이 '오빠'의 안락에 웃고 '오빠'의 성과에 뿌듯하고 '오빠'의 좌절에 초조해하며 완벽한 자기 이입을 이루고 있었다.

그 조건없는 숭앙과 투신은 한편 섬뜩하고도 보수적인 것이어서 누군가 오빠에 대해 안 좋은 소리를 하면 그땐 난리가 났다.

신화였는지 젝스키스였는지 아무튼 또 다른 그룹의 팬클럽이었던 친구들과 H.O.T. 팬 쪽이 자주 대립하며 문제를 일으키자 한 선생님이 각자의 우상들이 왜 1위여야 하는지에 대해 발표해 보라며 수업시간을 내어 주기도 했었다.

간접이지만 팬덤문화를 이렇게 경험한 나는 최근 방탄소년단 BTS 팬들의 '성명문'이라는 것을 보고 적지 않게 놀랐다.

BTS 멤버 중 슈가가 사회복무요원으로 배정되자 그에게 입장표명을 요구하는 내용이었다. 한마디로 슈가가 현역으로 입대하지 않는 것을 문제 삼고 있었다.

팬들은 슈가가 노래 가사를 통해 스스로 군대에 가지고 있었던 그간의 소신과 배치되는 결과라며 해명을 바라고 있었다. 사회복무요원 배정의 원인으로 알려진 어깨 수술도 석연치 않아 하며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청년으로서 병역의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라”고 촉구했다.

'사생' 혹은 '극성'으로 요약되며 맹목적 보호와 절대적 충성을 바친 과거의 팬클럽 문화는 지금 이렇게 바뀌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진정하게 성장하길 원하며 그 과정을 방해하는 그릇된 결정에 대해서는 비판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런 맥락에서 BTS 팬덤 '아미'는 소속사의 콘서트 운영 능력, 탄소배출, 멤버들 인성 등에도 두루 문제제기하는 목소리를 내왔다. 사회적으로 문제를 일으킨 구성원에게는 퇴출 요구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예 팬 집단 주체로 봉사활동과 기부활동을 하며 전면에 나서는 존재가 됐다.

과거 맹목적이던 팬덤 문화가 이제는 바뀌고 있다. 주종 관계가 아니라 팬과 스타가 동등한 관계에서 조언할 수 있고 함께 성장하는 수평적 관계로 발전한 것이다.

이런 문화는 소위 MZ세대로 통칭되는 세대들이 사회 곳곳에서 당당하게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는 시대 흐름과도 연관 있다.

내가 좋아하는 스타가 도덕적으로나 실력 등 여러 면에서 당당해야 나 자신도 그를 좋아한다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명분이 되는 것이다. 반대로 스타를 위해 팬클럽이 기부도 하고 봉사활동을 해가며 내가 좋아하는 그 오빠의 이미지를 좋게 포장하는 역할도 한다. 그때 그 시절 H.O.T나 젝스키스의 팬클럽 이름은 가물가물하지만 BTS를 얘기할 때 그들의 팬클럽 아미를 빼놓고는 말 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이제 스타와 팬들도 동등한 관계에서 소통하며 함께 성장하는 시대가 됐다.

 

/장지혜 문화체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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