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의 시목(市木)은 튤립나무로 알려진 백합나무이다. 기품이 아름답고 내한성과 병충해에 강하고 성장이 빨라 남동구와 중구를 중심으로 6500여그루가 가로수로 심어졌다. 백합나무를 도시 가로수로 들여온 지 40년이 지났다. 백합나무는 묵묵히 대기오염물질을 정화하고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여름엔 그늘을 만들어 더위를 식혀주었다.
그런데 아낌없이 주는 나무, 인천의 상징인 백합나무가 애물단지로 취급되고 있다. 성장이 빠른 게 역설이 돼 좁은 보도를 차지하고 고압선과 엉키게 되어 가지와 뿌리가 반복적으로 잘렸다. 백합나무의 행색이 초라해질 뿐만 아니라 줄기와 뿌리가 썩어 나무가 쓰러지는 재해 발생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시민을 위해 열심히 보답해 온 백합나무 가로수를 어떻게 할 것인가? 계양구는 지난 2월 소나무로 바꿔 심겠다고 멀쩡한 아름드리 백합나무를 베어내다가 시민의 항의를 받아 중단되기도 하였다. 최근 서울 광진구는 구의로 구간에 산딸나무 특화거리를 만든다며 백합나무 가로수를 모조리 베었다.
가로수 수종갱신은 전국적으로 벌어지는 현상이기도 하다. 도시의 경관과 안전을 위해 가로수를 교체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선택은 신중해야 하고 기존 가로수의 생명과 이를 아끼는 시민의 마음을 최대한 존중해야 한다.
남동구 문일여고에서 호구포로로 이어지는 구월남로에서 모범사례를 찾았다. 구월남로는 2차선의 좁은 도로인데 백합나무 가로수가 전봇대 고압선 아래 40년 넘게 힘겹게 살아왔다. 최근 2년간 14그루의 나무가 죽거나 위험한 지경에 이르러 제거되었다.
가로수 안전진단 결과, 주민의 안전 및 재산 피해 예방을 위해 가로수종 변경이 제안되었다. 지금까지 가로수 수종갱신 사업의 관행은 동일노선 동일수종의 원칙에 입각하여 모든 나무를 베고 일관되게 한 수종을 다시 심는 것이다.
그러나 남동구청의 선택은 달랐다. 주민설명회에서 오래된 나무에 애착심을 느끼는 주민의 바람을 받아들여 박종효 구청장이 “오랜 시간 정성을 들여 키운 나무를 전체적으로 제거하는 것보다 안전진단 결과 위험한 수목에 대해서만 제거하고, 노령 가로수와 어린 가로수가 조화를 이루어 원도심 지역 가로수의 역사와 가치를 보존하고, 특색있는 가로경관이 될 수 있도록 추진하자.”라는 의견이 백합나무의 운명을 갈랐다.
사업 구간 백합나무 86그루 중 수목 생육상태가 불량하고 보도폭과 횡단보도 주변 등 도로 환경을 고려하여 32그루만 제거하고 54그루는 그대로 남기기로 했다. 제거된 곳에는 꽃과 단풍이 화려한 미국산딸나무를 식재하고, 제거된 수목의 뿌리분을 이용한 포켓정원도 조성하기로 했다. 원도심 지역의 오래된 나무와 어린나무가 조화를 이루어 특색있는 명품가로수길이 기대된다.
/최진우 인천녹색연합 정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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