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혁신 자치행정부장.
▲ 조혁신 자치행정부장.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장편소설 〈노르웨이 숲〉에는 주인공 와타나베가 연인 미도리와 그리스비극 강의를 듣다가 강의실에서 헬멧을 뒤집어쓴 동맹휴학파 학생들의 선동을 듣는 장면이 나온다.

와타나베는 이른바 운동권 학생 그룹의 정치 선동을 들으며 “(그들이) 내세우는 바는 제법 훌륭했고, 내용에도 특별한 이의는 없었으나, 문장에 설득력이 없었다. 또한 신뢰성도 없거니와 마음을 사로잡는 힘도 없었다. 그 타령이 그 타령이었다. 이 녀석들의 진짜 적은 국가 권력이 아니라 상상력의 결핍이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소설 속 주인공 와타나베가 현재 인천의 모습을 지켜본다면 또다시 '상상력 결핍'이라는 신랄한 반응을 보일 듯싶다. 바로 민선8기 인천시 1호 공약 '제물포 르네상스'의 내항 1·8부두 재개발 마중물 사업 격인 '상상플랫폼'에 관한 일이다.

상상플랫폼은 인천 중구 내항 8부두에 있는 연면적 2만2576㎡ 규모의 폐 곡물 창고를 리모델링해 복합문화공간으로 만드는 사업이다. 앞서 2019년 운영사업자였던 CJ CGV가 경영환경 악화를 이유로 참여를 포기한 후 시민참여단 논의를 거쳐 공적 공간 30%를 제외한 나머지 공사는 민간사업자가 맡기로 했다. 2020년 8월 공모로 선정된 무영씨엠은 4층 규모 1만6979㎡ 면적에 미술관·공연장 등 문화시설을 조성한다는 목표를 내세우며 지난해 6월 공사를 시작했다. 그러다 자금 문제로 공사대금을 내지 못하면서 시공사 반도건설이 4월부터 유치권을 행사하며 지금까지 중단한 상태다.

상상플랫폼 사업 중단의 첫 번째 책임자는 사업자인 무영씨엠 측에 있다는 데는 재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공사가 중단된 지 반년이 넘도록 어떠한 해법도 찾지 못하고 있는 인천시 당국의 책임 소재가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다. 마땅히 상상플랫폼 사업의 수혜자는 시민이어야 하는데, 친수공간을 누리고 다양한 문화콘텐츠를 접할 수 있는 기대감에 부풀었던 시민은 오히려 공사 중단으로 유치권 행사 현수막이 붙은 흉물스러운 모습만을 목도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민선 8기 인천시가 출범한 이후, 유정복 시장과 시 당국은 상상플랫폼의 조속한 정상화를 여러 번에 걸쳐 약속했다. 물론 그 약속은 아직 이행되지 않았다. 사업자 측이 요구해온 시공비 지급보증이나 자금보충확약(CDS) 등에 관해 불가 입장만을 되풀이할 뿐이었다.

이처럼 사업 표류가 장기화하는 가운데 인천시의회까지 나서서 내항 재개발 조속 추진과 상상플랫폼 해법 마련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내는 지경에 이르렀다.

현재 인천시는 최후의 수단이랄 수 있는 계약 해지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그런데 이마저도 선뜻 패를 꺼내놓지 못한 채 머뭇거리고 있다. 사업 계약 해지에 따른 법률적인 다툼도 문제지만 계약 해지 이후 새로운 사업자를 구하기도 난망하기 때문이다. 시 일각에서는 인천도시공사에 이 사업을 떠맡기자는 의견도 제시되고 있는데, 주택과 택지 개발에 특화된 인천도시공사가 이를 제대로 수행할 능력은 있는 것인지, 이런 생각은 도대체 누구의 머리에서 떠올랐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이 경우 상상플랫폼 운영의 핵심인 콘텐츠 확보가 가능할지 의문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시 당국의 행정 행위를 보면 상상플랫폼이 그 이름이 뜻하는 바와 달리 '상상력 결핍'의 산물이 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기만 하다. 누군가 미쳐 보일 정도로 새로운 것을 시도하다 실패했다면 오히려 상을 줘야 하겠지만, 상상력이 결핍된 면피성 행정은 결코 환영받지 못할 듯싶다. 하루키 소설의 주인공 말마따나 상상플랫폼의 진짜 적은 상상력 결핍이다.

/조혁신 자치행정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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