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때의 일이다.
동네에서 매일같이 얼굴을 보며 초·중등학교를 같이 다니던 친구가 자전거를 타고 하교하다 트럭과 부딪히는 사고를 당했다. 친구는 큰 사고에도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졌지만, 1년 동안 수차례의 수술과 치료를 받은 후에야 학교에 나올 수 있었다.
그러나 1년도 채 안 돼 친구는 가족들과 함께 다시 미국으로 떠났다. 학교에는 사고 후유증으로 경미한 뇌장애를 얻게 된 친구를 가르쳐줄 전문교사도, 특수반도 없었기 때문이다. 일반 학급에서 일반 수업을 들으며 진땀을 빼던 친구는 결국 “더 편안 환경에서 제대로 공부하고 싶다”며 이민을 택했다.
장애학생 교육권 보장에 이민 말고는 답이 없던 그 시절로부터 15년도 더 지난 오늘의 현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여전히 특수학교는 교외 지역에나 있고, 특수학급은 지자체와 학교에 청원을 해도 '효율성'이 떨어지면 개설되지 않는다.
다음 학년에도 장애학생이 없으면, 유휴 부지가 부족하면 소수의 장애학생은 집 앞에 학교를 두고도 다른 도시까지 통학하거나 전문 교육을 받지 못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경제성을 앞세우며 쉽게 앞마당을 내주지 않겠다는 님비를 정당화하는 셈이다.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왜 이런 불편을 겪어야 하죠?” 장애학생의 부모는 물었다. 마치 장애가 죄인 양, 청원해 읍소하고 심사를 받으며 교육권을 보장받기 위해 분투해야 하는 현실이 답답하다고도 했다. 교육 받을 권리는 헌법에서 보장하는 기본 권리 중 하나인데도 말이다.
임태희 교육감은 2025년 안성을 시작으로 시흥, 광명, 남양주 등에 특수학교를 설립하고 특수학급 수를 늘리겠다고 밝혔다. 조카가 장애가 있어 장애학생과 가족들의 어려움에 깊이 공감한다는 새 교육감의 의지는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 귀추가 주목된다.
/박지혜 경기본사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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