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것을 없애고 새로운 것을 도모하며 교화(敎化)를 펼쳐 풍속을 아름답게 하려 하니…” 1897년 10월12일 조선 왕조는 황제가 다스리는 제국으로 대전환했다. 고종(1852~1919)은 황제가 됐고,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바꿨다. 자주독립국의 위상을 곧추세워 세계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하겠다는 선언이었다.

대한제국은 7년여에 걸쳐 제도개혁에 나섰다. 광무개혁(光武改革)이었다. 대한제국의 헌법인 대한국 국제(大韓國 國制) 선포로 시위를 당겼다. 모두 9조로 다듬은 국제는 온통 황제권 수호와 절대화로 덧칠해졌다. '만세토록 불변할 전제정치(專制政治)'와 '대한국 대황제의 무한한 군권(君權)'을 내세웠다. '황제의 권한과 권위를 침해하는 자는 행하든 행하지 않든 신민의 도리를 잃은 자'로 규정했다.

움켜쥔 지배 권력에 대한 집착은 가련하기까지 했다. 국가 안보가 0순위여야 할 군사개혁은 황제를 호위하는 근위부대 양성과 체제 유지에서 멈췄다. 근위병 철모를 독일서 수입했다. 국가 예산의 40%였던 국방비는 그렇게 물처럼 샜다. 양전(量田)과 지계(地契)로 국가재정을 늘려 상공업을 키우려 했던 경제개혁은 암흑 속으로 빨려들었다. 모자라는 재정을 전환국서 찍어낸 돈으로 메꾸면서도 불에 재가 된 황실의 궁궐(경운궁)을 짓는데 열을 올렸다. 궁궐 중건에 세출예산의 20%(159만원)를 쏟아부으며 흥청거렸다. 철도·전화·전기·광산채굴의 기술개혁과 성균관·육영공원의 교육개혁은 '창조적 파괴'를 명령하는 문명사적 흐름과 역주행했다. '자멸적 기교'만 부렸다. '좋은 것이라니 한번 해 볼까.' 세밀한 연구와 준비 없이 서양 것을 베끼는 얼치기 기술자들이 득세했다. 고종은 '공자의 도에 더욱 매진하라'며 성균관에 유학(儒學) 강화를 하명한 바로 그날 '(육영공원을 염두에 두고) 서양의 학문과 산업 전문기술을 갖춘 인재를 육성하라'는 조령을 내렸다.

광무개혁은 제국의 위상확립과 근대화 완수에 얼씬도 못 한 채 실패하고 말았다. 대한제국은 일본의 침탈에 무너졌고, 해방 뒤 피붙이는 서로 총부리를 겨눴다. 세계 최대빈국의 멍에는 숙명으로 다가왔다. 아등바등 눈물겹게 살아왔다. 열강이 치이면서도 선진국 따라잡기에 기를 썼다. 겨우겨우 버텨 가던 가냘픈 생애도 살수록 서서히 풀렸다. 대통령 12명이 거쳐 가는 동안 조금씩 형편도 펴졌다. 반일·반공·반독재·반군정·친미·친중의 이념 갈등, 보수/진보, 성장/분배의 진영 대립 속에서도 대한민국은 선진국 문턱을 넘었다.

또다시 우리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대전환기와 마주하고 있다. 인공지능(AI)·빅데이터 등 디지털 기술혁명이 일으킬 산업대전환, 미·중 패권경쟁이 가져올 경제대전환,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기후위기와 탄소 중립에 몰고올 에너지대전환, 인구감소·고령화·불평등 사회가 불러올 교육대전환이다. 하나같이 간단치 않은 혁명적 과제다. 불확실성과 복잡성, 혼돈이 뒤섞인 대전환의 파고를 넘느냐, 못 넘느냐, 여기에 대한민국의 운명이 걸려있다. 그동안 추격의 시대를 쫓았다면 앞으로는 추월의 시대로 나아가야 한다. 추월이 아니면 곧 추락이다. 한국이 아니면 안 되는 '게임 체인저'이어야 한다.

올해는 대통령을 뽑는 선택의 해이다. 시대는 글로벌 도전의 실체와 핵심을 먼저 읽고, 새로운 게임의 법칙을 세울 리더를 요구한다. 틀을 깨는 새 국가전략과 이를 뒷받침하는 법과 제도, 정책의 혁신을 일궈낼 창조적 설계자를 갈구한다. 새로운 100년, 대통령 선거에 달려있다.

/박정환 기자 hi21@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