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년간 실시된 지방자치제로 풀뿌리 지역사회에서 많은 긍정적인 변화가 있었다. 경남 남해군의 국제적인 축구장을 중심으로 하는 리조트타운사업과 같이 지역의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는 특화산업이나, 전남 함평군의 나비축제처럼 고유한 전통문화유산과 자연환경을 종합적으로 활용하는 관광산업이 가능하게 됨으로써 지역경제가 활성화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또한 행정서비스의 질을 개선하고, 주민을 대상으로 하는 각종 문화 프로그램 등을 개발하여 삶의 질을 높이는 데도 적지 않은 공헌을 하였으며, 지역공동체의 의사결정과정에 참여할 엘리트를 대거 양성하고 일반주민들의 참여기회를 확대함으로써 민주주의를 생활화하는데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지방자치 실시 이전과 비교해서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중앙정부가 일방적으로 결정하거나 단순한 행정의 문제로 간주했던, 그래서 지역적 특성과 주민의 요구가 배제되었던 정책의 결정과 집행 과정에서 이제는 주민의 요구나 의사가 반영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점일 것이다.
 물론, 지방자치제가 혜택만 가져다 준 것은 아니다. 지난 10년간 지방자치가 실시되는 동안 지방자치단체나 지방정치인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여전한 중앙정부의 지방정부에 대한 지나친 간섭, 자치단체들의 갖가지 사업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미해결된 지방정부의 재원부족과 방만하고 미숙한 사업운영, 님비(NIMBY) 또는 핌피(PIMFY)현상으로 불리는 지방정부간 소지역주의적 갈등, 그리고 끊일 줄 모르는 지방정치인의 부정부패행위와 자질이 부족한 지방정치인 등과 같은 문제점이 드러났다. 이러한 문제점들은 다시 천문학적인 금전상 낭비, 선심성 행정남발, 환경파괴, 기초질서문란, 주민들의 풀뿌리 민주주의에 대한 불신이라는 피해를 초래하기도 했다.
 현행 지방자치제가 이러한 문제점을 드러내자, 일각에서는 특히 중앙정부와 정치인들은 지방정부나 정치인의 자율성과 권한을 제한하는 대신 중앙정부나 중앙당의 권한을 강화하려 했다. 즉, 국회에서는 기초단체장을 임명제로 전환하거나 3기 연임을 금지하는 방안, 행정직 부단체장의 권한을 강화하는 방안, 국가사무라는 명분을 내세워 지방사무에 대한 국정감사를 유지하는 방안 등을 도입하려고 했으며, 중앙당에서는 기초의원후보를 제외한 선출직 지방공직자 후보에 대한 정당공천제도를 계속 유지하면서 동시에 지난 제3기 지방선거에서 대대적으로 도입했던 선출직 지방공직자에 대한 `상향식 공천제""를 다시 `하향식 공천제""로 전환할 것을 선언했다.
 
 중앙정부와 중앙당의 이러한 처방 뒤에는 지역정치인과 주민들은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능력이 없다는 `오만한"" 생각이 깔려 있는 듯하다. 그러나, 중앙정부와 정치인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지방정부와 정치인과 비슷한 문제점들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현행 지방자치제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중앙정부나 중앙당의 권한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주민의 감시와 참여를 확대·강화하는 방안을 모색해야할 것이다. 그것은 가능한 많은 주민의 참여가 보장될 때만이 다양한 이해관계와 요구가 정책에 반영될 수 있기 때문이고, 또한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가 지키려고 하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에도 부합하기 때문이다.
 일제가 조선의 독립을 반대했던 중요한 논리 중의 하나가 `조선사람은 독립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민주주의는 단기적으로는 대단히 비효율적일 수 있다. 하지만, 중장기적으로는 민주주의가 가장 효율적인 제도라는 것은 국가가 지시만 하던 사회주의는 실패했지만, 다중의 의사를 중시하는 민주주의는 여전히 건재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지금의 지방자치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주민과 주민대표가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지는 기회를 확대해야 한다. 우선, 주민참여 경선제, 주민발안제, 주민투표제, 주민소환제 등 지방행정이나 정당정치에서 주민의 참여를 확대하는 제도를 도입·시행해야 할 것이며, 지방자치단체간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중앙정부가 무리하게 개입하기 보다는 해당 자치단체간 또는 지역주민간 협의와 조정으로 해결하도록 유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