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회 월드컵 축구 결승 진출 결정을 위한 시합을 7시간 여 앞둔 종로1가, 붉은 티셔츠에 태극기를 걸친 젊은이들은 벌써부터 모여들고, 언론사 헬기가 하늘을 선회하는 가운데 멀리 광화문과 시청 방향에서 연실 터지는 확성기 소리는 빠른 발걸음을 더욱 채근한다. 따가운 햇살도 아랑곳하지 않는 시민들로 일찍부터 북적이는 초여름의 도심복판, 보행자 도로는 물론 차도까지 밀려드는 인파 속에 설렘은 넘치고, 마주치는 시선마다 기대감을 교차하는 그야말로 축제의 한마당이다.
 오후 한시에 예정된 시민강좌에 40여명이 참석한다지만 이런 날 누가 오랴 싶은데, 일정상 강행한다는 주최측 방침에 따라 반신반의하며 도착했건만 역시나, 한 시간이 넘도록 단 한 명의 청중도 강연장에 나와주지 않는다. 미안해하는 실무자를 뒤로하고 강연장을 빠져나오자마자 연실 마주치는 활짝 웃는 젊은이들, 걸음을 재촉하는 젊은이들을 따라 마음은 서울시청 앞 광장으로 빨려가지만 모처럼 맞는 축제의 시간을 가족과 보내고 싶은 마음에 텅 빈 지하철 1호선에 몸을 실었다.
 붉은 셔츠 입고 기뻐할 준비가 다 되었을 아이들 손잡고 우리 식구는 어디로 갈까. 문 열리자마자 뛰어 들어가야 자리 잡을 수 있다는 문학경기장은 이미 종쳤다. 승용차말고 접근이 어려운 대학교 마당은 좀 그렇고, 지하철로 갈 수 있는 종합문화회관 광장은 좋은데 전광판이 설치되었는지 확실치 않다. 시청 앞 광장은 어떨까.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서울시청 앞 광장 못지 않게 넓은 인천시청 앞 광장도 지하철로 가능한데, 전광판이야 당연하겠지. 전화했더니 그렇지 않단다. 그러고 보니, 거긴 현재 공사중이다.
 아쉬움과 성원 속에 구들장 무너져라 집에서 텔레비전을 시청하고, 며칠 지나 시청 앞 광장을 지났다. 근사한 고급 정원수와 큰 돈 들었을 분수대, 여기저기 온갖 시설물들. 아스팔트 걷어낸 자리에 조성될 녹색광장을 떠올린 기대감은 여지없이 무너지고, 가슴이 이내 답답해 진다. 4년 뒤 제18회 월드컵에 우리가 결승에 오른들 어떤 시민이 여기에서 축제 한마당에 참여할 수 있을까. 참여는커녕, 머리띠 동여맨 초라한 시위대도 제대로 도열하지 못할, 구경만 강조된 시설물 전시장으로 그만 구조화되고 말았다.
 문화와 역사가 살아있는 도시에서 광장은 당연하다. 규모와 관계없이 당국은 시민들이 즐겨 찾는 시청 앞 광장이나 중앙로 좌우에 넓은 녹지를 조성해 놓았다. 나무 그늘진 잔디에는 책을 읽거나 낮잠 즐기는 이가 한가롭고, 긴 의자에는 이야기 나누는 젊은이와 노부부의 모습이 정겹다. 잔디 광장에는 가볍게 달리는 시민과 원반 던지고 받는 가족들로 항상 넘실대고, 음료수 놓고 둘러앉은 시민들로 북적인다. 집에서 직장에서 학교에서 누구나 쉽게 찾아갈 수 있는 시민들의 참여광장인 것이다.
 런던의 하이드파크나 뉴욕의 센트럴파크 만큼 못될지라도 아스팔트가 벗겨진 광장에 녹색 잔디가 넓다면 삭막한 인천에 사는 시민들은 얼마나 즐겨 찾을 수 있었을까. 고급 조경수를 그저 구경만 해야 하는 시민들은 이제 어디에서 참여하는 축제를 구상할 수 있을까. 푸념만 할 수 없는 일. 시대착오적 시청 앞 광장은 거의 틀렸지만 다른 곳에서 희망을 찾았으면 한다. 서울은 세종로도 바꾼다는데 거기가 어디일까. 귀기울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