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초 화성시 한 중학교 취재를 마치고 학교를 나서던 중 학부모로 보이는 사람을 만났다. 문득 학교에 대한 평판이 궁금해 길을 가던 학부모를 잡고 “자녀가 어디에 다니냐”는 질문을 던졌다. 알고 보니 그는 중학교 바로 옆에 붙은 초등학교에 자녀를 보내는 학부모였다.

그런데 그는 대화하며 중학교에 대해 혹독한 평을 했다. '학업에 집중할 수 없는 환경'이라든가 '아이가 나쁜 길로 빠질까 우려된다'는 등의 이유로 “그 중학교에는 아이를 보내지 않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학교의 교육과정 등을 인상 깊게 취재하고 나온 터라 혹평의 원인이 궁금했다.

학부모가 제기한 원인은 “러시아인이 많이 다닌다”였다. 실제 이 학교에는 한국인 국적이 아닌 학생 15~20명이 다니고 있다. 대다수는 중앙아시아에 살다가 고국을 찾아온 고려인 후손들이다. 학생들은 러시아어를 사용해 학부모가 러시아인으로 착각할 만도 하다.

학부모의 말은 그간 기자가 취재해온 고려인들의 삶과 '고려인동포법 개정' 문제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졌다. 150여년 전 구한말에서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중앙아시아로 넘어가 한인 거주촌을 만든 조선인들은 지금 와서는 한국 사회의 이방인으로 취급되고 있다. 짧게는 80여년, 길게는 150여년의 세월은 높은 차별의 벽을 만들었고, 그들은 '한국인'이 아닌 '고려인'으로 불리게 했다.

올해 초 안산에서 만난 시민단체활동가는 “반만년 한민족 역사 속에 고작 100여년을 떨어져 있었을 뿐인데, 한국 사회에서는 완벽한 '외국인'이 돼버렸다”고 말하기도 했다. '고려인동포 합법적 체류자격 취득 및 정착 지원을 위한 특별법' 개정 문제도 학부모의 시각과 연장선에 있다.

지난 2010년 제정된 고려인동포법은 고려인이 한국인과 같은 민족이라는 관점에서 이들이 다시 한국사회에 정착하는 것을 돕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러나 고려인 3세까지만 특별귀화를 허용하고 고려인 4세는 성인이 되는 순간 한국을 떠나야 한다. 짧은 기간 높게 쳐진 한국사회의 벽은 여전히 고려인과 한국인을 분리하고 있는 셈이다.

지난 18일 78년의 세월을 지나 애국지사 한 명의 유해가 한국으로 돌아와 국립대전현충원에 묻혔다. 일제에 맞서 한평생을 무장투쟁에 바치다 소련의 한인 이주 정책에 따라 중앙아시아로 넘어간 홍범도 장군이다.

지금도 많은 국민이 현충원을 찾아 홍 장군의 희생과 위대함에 경애를 표하고 있다. 한국사회의 시선으로 본다면 홍 장군도 고려인이다. 홍 장군에게 보여주는 경애를 바로 옆에 사는 고려인에게도 보여주는 사회가 되길 바라본다.

 

/김중래 경기본사 사회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