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정규 커리큘럼 외에 비공식적으로 행해지는 수업을 과외라 한다. 이미 1950년대부터 시작돼 60∼70년대에 들어서는 큰 사회문제가 됐다. 중학교 입시 폐지, 고교 평준화 등 교육정책 대부분도 '과외병 해소'에서 출발했다. 세계에서도 유례없는 극성 교육열이 그 뿌리였다. 저마다 자식에게만은 못 배운 한을 대물림하지 않겠다는 결기가 충만하던 시대였다. 그래서 '입시 전쟁'이라 불렸고 과외는 비밀병기쯤으로 여겨졌다. 해마다 예비고사_학력고사에서 수석을 한 학생들이 “학교수업에만 충실했어요”라 해도 소용이 없었다.

▶1980년 7월30일 이른바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가 과외 전면 금지 조치를 발표했다. 당시 신군부의 '정의사회구현' 중 하나였다. 당시 신문에는 '문답으로 알아보는 과외금지' 등의 해설기사도 실렸다. 숙식만 제공받고 과외지도는 안하면? 이론상 무방한 듯하나 처벌 안받으려면 그 집에서 빨리 나오는 게 좋다. 집에 학생을 불러 피아노 레슨을 하면? 교장의 허가를 받은 학생만 가능하다. 사회지도급이 아닌 샐러리맨인데도 과외단속 지침을 어기면 처벌되나? 직장의 고용주에게 통보돼 면직된다. 미국평화봉사단이 무료로 영어회화를 가르치면? 물론 안된다.

▶전격적인 과외금지는 애꿎은 대학생들에게 불똥이 튀었다. 시골에서 올라온 가난뱅이 대학생들에게 '입주(入住) 가정교사' 는 로또급이었다. 비싼 서울 하숙비를 아끼고 용돈까지 벌어서다. 시골 부모들에게는 그만한 '효자'가 없었다. 역시 규제는 피해나가기 마련이다. '별장 과외' '승용차 과외' '심야 과외' 등이 알게 모르게 성행했다. 기자도 하필 그 무렵 군에서 나와 복학했다. 친구 자취방을 전전하다 한남동의 한 입주 가정교사 자리와 연결됐다. 처음부터 비밀 점조직 방식으로 접선이 이루어졌다. 누군가가 신고하거나 단속을 나올 때를 대비한 말 맞추기도 정교하게 준비했다. '고향마을 출신 고학생에게 남는 방 하나 거저 빌려준 사이' 그래서 졸지에 충남 서산이 내 고향이 됐다. 또 하나, 당시 대학생들이 주로 들고 다니던 '가방'도 회사원용으로 바꿨었다.

▶지난달 24일 중국 당국이 과외 금지 조치를 발표했다. 국_영_수 등 학과 과목을 가르치는 사교육기관의 영리 추구를 금지한 것이다. 과다한 교육비 부담으로 저출산이 심화된다는 명분이다. 역시 중국답게 매달 두차례 과외 단속 실적을 중앙에 보고토록 하자 전국에서 난리가 났다. 베이징에서는 월 수당 4800위안(85만원)의 암행요원들이 채용돼 사교육 현장에 출동했다. 안후이(安徽)성에서는 단속 관리가 과외 현장을 발로 차고 들어가 교사 목덜미를 잡고 끌고 나왔다고 한다. 이래저래 중국이 우리보다는 한 40년 뒤따라오는 듯해 어깨가 으쓱한 감도 든다. 그나저나 시골 출신 중국 대학생들이 걱정이다.

 

/정기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