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삼일공고 학생회

친일행적 이흥렬이 작곡한 교가
반대 목소리 높여 교체 이끌어내
학교 설립한 임면수 독립운동가
흉상 제작해 민족정신 계승 약속


-김포 대명초 역사동아리

교표 속 욱일기 문양에 문제 제기
학생들 디자인 공모전 열어 변경
▲ 광복절을 앞둔 12일 수원시 팔달구 삼일공고 교정에 건립된 초대 설립자 임면수•이하영 독립운동가 흉상 앞에서 이 학교 레저스포츠과 학생들이 참배 하고 있다. 학교는 오는 18일 흉상 제막식과 학교 독립운동사를 전시할 역사관을 개관한다. /김철빈 기자 narodo@incheonilbo.com
▲ 광복절을 앞둔 12일 수원시 팔달구 삼일공고 교정에 건립된 초대 설립자 임면수•이하영 독립운동가 흉상 앞에서 이 학교 레저스포츠과 학생들이 참배 하고 있다. 학교는 오는 18일 흉상 제막식과 학교 독립운동사를 전시할 역사관을 개관한다. /김철빈 기자 narodo@incheonilbo.com

“몰랐다. 미안하다.”

김동수 수원 삼일공업고등학교 교장은 지난해 졸업식을 앞두고 학생들 앞에 고개 숙여 사과했다. 수 십년 간 불러온 교가가 친일행적 작곡가 이흥렬이 만든 교가였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졸업식에 앞서 독립운동가가 세운 '민족학교'에서 친일 행적자가 만든 교가를 부를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삼일공고 학생들이 문제의식을 갖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19년 이다. 당시 이주엽 제30대 학생회장은 SNS를 통해 메시지를 받았다. “우리 교가 작곡가가 이흥렬 아니야? 그 사람 친일파라던데?”란 친구의 메시지는 이 회장이 움직이게 된 이유였다. 이 회장은 김 교장에게 메신저를 보냈다. 교가를 바꿔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교가 교체는 학생자치회 대의원회의에 안건으로 올라갔다. 학생들은 “민족학교에 다닌다는 자부심이 있는데 친일파가 작곡한 교가를 부를 수 없다”며 찬성하고 나섰다.

이 후 학교는 학생과 학부모, 동문회를 통해 교가 교체에 대한 찬반 설문조사를 했다. 결과는 압도적인 찬성이었다. 학생은 83.7%, 학부모 89.8%, 동문회 98.7%가 교가 교체에 찬성했고, 1947년부터 쓰던 교가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삼일공고를 운영하는 학교법인 삼일학원은 이하영, 임면수, 나중석, 차유순, 최익환, 홍건표, 이성의, 김제구 등 수원의 독립운동가와 젊은 유지들이 힘을 모아 설립됐다. 이들은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길러주고 애국심을 불붙게 하려는 사명감에 삼일학당을 설립했다. 초대 설립자인 임면수 선생은 1910년대 서간도 지역에 설립된 독립군 양성 학교인 신흥무관학교의 분교 양성중학교 교장을 했으며 수원지역 국채보상운동을 이끄는 등 독립에 평생을 바친 독립운동가다.

삼일공고 학생회를 중심으로 나온 교가 교체 목소리에 같은 법인에 속한 삼일상고, 삼일중도 TF팀을 꾸려 호응했다.

송인아 학생회장은“독립운동가가 세운 민족학교에서 친일파 이흥렬이 작곡한 교가를 부를 수 없었다”며 “우리의 목소리를 내 교가를 바꾸는 등 민족정신을 120년째 이어온만큼 저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후배들도 자부심을 느끼면서 학교를 다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학생들의 설득에 학교는 작사를 그대로 두고 작곡변경을 의뢰해 놓은 상황이다.

삼일공고 학생회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독립운동가를 기리는 기림문화로 연결하고 있다. 학생회는 삼일학원 설립자인 임면수 선생과 이하영 목사 흉상 제작을 위한 모금캠페인을 벌였다. 지난 3월부터 오전 8시부터 8시30분까지 학생회는 매일 흉상모금프로젝트 피켓 캠페인을 했고, 거의 100% 학생이 모금에 참여했다. 한 학생은 임면수 선생과 이하영 목사의 그림을 그리고 3D펜으로 미니 흉상을 만들어 기증하기도 했다.

학교는 오는 18일 학교역사관을 개관하고 흉상과 학교의 독립운동사 등을 전시할 계획이다.

▲ 김포 대명초의 새로운 교표.
▲ 김포 대명초의 새로운 교표.

김포대명초등학교도 군국주의를 상징하던 교표를 교체했다. 당초 무궁화 안에 떠오르는 해와 햇살이 퍼져나가는 욱일기의 문양이 들어있는 교표를 사용해왔다. 교표는 1980년 이전부터 사용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교표에 대한 문제제기는 학생들로부터 시작됐다. 지난 2019년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대명초 학생들은 김포 청소년 역사문화 탐구단으로 중국 상해와 항주, 남경 등으로 역사탐방을 다녀왔다. 이후 '임하오(임시정부, 안녕하십니까?)'란 역사 공부 동아리를 만들던 중 학교 시계탑과 교실 앞쪽에 붙은 교표가 눈에 보였다. 학생들은 “전범기네, 욱일기 아니냐?”란 문제 제기를 시작했다.

동아리는 학교 재학생들에게 '중국 역사탐방 사례 나눔 꼬마 역사 해설가 활동'을 통해 역사 교육과 교표의 불편한 진실을 알렸다. 교표 변경에 대한 설문조사에서는 전교생 40명과 교직원 전원이 찬성했다. 학부모도 90%가 찬성했으며, 총동문회도 긍정적 회신을 남겼다.

학교는 새 교표 디자인 공모를 했다. 지난 2019년 11월 11일부터 2주간 실시한 공모전에는 18편이 참여했다. 대상으로 선정된 김준서 학생의 교표는 학생들이 웃으며 꿈을 키울 수 있는 장소라는 의미로 학교 이름 주변에 '꿈'이라는 글자를 웃는 모습으로 형상화했다. 또 교화인 개나리로 학교의 울타리를 표현했다. 전체적인 도상을 표현하는 노란색은 밝게 빛나는 학교라는 의미다.

허은철 총신대학교 역사학과 교수는 “일제 잔재 청산의 첫 번째 단계인 나의 생각과 행동, 말이 일제 잔재임을 인식하는 것”이라며 “일선 교육현장에서부터 일제 잔재를 청산하고 일제 잔재의 영향에 대한 교육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터뷰] 허은철 총신대학교 역사교육학과 교수

“교육현장부터 친일청산 나서야”

“교표 다는 것 자체 군국주의 발상
손 체벌·여성폄하도 일제잔재
아이들 배움터 바로 세워야”

“학교뿐만 아니라 한국 내 가정, 직장, 사회 곳곳에서 일제 잔재는 남아있습니다.”

허은철(사진) 총신대학교 역사교육학과 교수는 12일 인터뷰에서 과거로부터 이어져온 일제 잔재의 부정적 영향을 지적했다.

허 교수는 “일제는 학교의 정신적, 정서적 환경을 구성해 공동체를 유지한다는 목적으로 일제 상징이 들어간 교표, 교화, 교목을 만들었다”며 “교표를 교복에 다는 것부터가 군국주의가 낳은 전체주의적 발상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일제는 1937년 교표개정령을 통해 우리 민족정신의 말살을 추진했다”며 “일제가 원하는 쪽으로 교표를 변경해 제국주의 문화에 익숙하도록 한 것”이라고 했다.

허 교수는 해방 후에도 이런 일제 잔재와 군국주의식 방식은 재탄생해 왔다고 강조했다. 1960~70년대 군사정권의 독재, 지역과 성별, 장애인, 여성 등 다른 집단에 대한 혐오 등도 일제 잔재의 영향으로 분석했다.

허 교수는 “영화 '친구'에서 보면 선생이 학생을 때리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나 우리나라 예산 서당에서는 직접 손으로 상대방을 때리는 일이 없었다. 체벌이유를 설명하고 회초리라는 도구를 사용해서 체벌했었다”며 “여성폄하도 일제 시절 생겼다. 물론 남존여비라는 조선시대 발상이 있었으나, 부부가 서로 경어를 사용하는 문화가 있었다"며 "반면, 일제의 가족법에는 '여성이 직업을 가지려면 남편이나 부모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등 여성폄하적 사고방식이 들어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학생을 손으로 체벌하는 것, 여성을 폄하하는 것 등도 우리 사회 내 암약하고 있는 일제 잔재의 영향으로 볼 수 있다”며 “이를 인식해야 한다”고 했다.

허 교수는 특히 교육현장에서 일제 잔재 청산이 가장 시급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허 교수는 “학교라는 곳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질 아이들을 키우는 곳이다”며 “교육목표는 민주시민, 세계시민을 양성하는 것이다”고 설명했다.

이어 “일본 제국주의와 전체주의, 군국주의 방식은 우리의 교육목표와 가장 반대에 있는 것이다”며 “일제 잔재 청산의 첫 번째 단계인 나의 생각과 행동, 말이 일제 잔재임을 인식하기 위해 교육현장에서부터 일제 잔재를 청산하고 일제 잔재의 영향에 대한 교육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중래 기자·김보연 수습기자 ilcomet@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