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교표' 개정
일본 연상 항공자위대 모양 등 넣어
경기 일부 학교에선 아직도 사용돼

익숙해진 일제 잔재…교정 곳곳 '친일 그림자'

역사 인식 없이 교표 무분별 사용
대다수 해방 후 만들어져
21개 학교, 잔재 남아있어

친일 행적자 기념비도 '버젓'
제국주의 상징물 뿌리 박혀

일제 강점기 시행된 조선총독부의 교표 개정령은 해방이후 현대 사회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아직도 경기지역 일부 학교에서는 일장기와 욱일기, 전범기업 로고 등을 연상하는 교표를 사용하고 있다. 해방 이후 설립된 학교들도 교표를 지정하면서 아무런 문제 제기 없이 일제 잔재 상징을 넣고 있다.

 

일장기, 욱일기, 일본 항공자위대 깃발 등…일본 문양 닮은 꼴 교표

▲ 일본제국 주의 군기였던 욱일기와 유사한 경기도내 학교 교표.(사진 1, 2, 3)
▲ 일본국기인 일장기와 유사한 경기 도내학교교표.(사진4, 5)
▲ 일본항공 자위대의 상징(사진 6)과 유사한경기도내학교교표.(사진7, 8)
▲전범기업인 미쓰이 그룹 상징(사진9) 과 유사한 경기도내 학교 교표.(사진 10, 11). /사진출처=경기도학교일제잔재전수조사보고서

안성지역 한 초등학교의 교표는 부채꼴 모양을 원형으로 한다. 그런데 부채 손잡이 부분에는 빨간 반원이, 위쪽에는 반원에서 퍼져나가는 적색 방사형 문양이 있다. 마치 일제 침략 시 군기였던 욱일기를 잘라놓은 모양이다. 고양지역 한 초등학교의 교표에서도 욱일기 모양은 확연히 드러난다. 가운데 학교 이름을 쓰고 위쪽으로 퍼져나가는 빨간색 방사형 무늬가 욱일기를 연상케한다. 용인 한 초등학교 교표도 위편에 조그맣게 반원과 뻗어 나가는 방사형 무늬가 있다. 욱일기는 일장기와 일본 왕실을 상징하는 국화무늬가 결합된 모양으로, 일본제국주의 군대의 상징이었다. 일제가 패망한 후에도 일본은 해상자위대와 육상자위대의 군기로 욱일 문양을 활용하고 있다.

일장기를 빼닳은 교표도 있다. 이천 한 고등학교와 오산 한 초등학교의 교표 백색 바탕 정 중앙에 동그란 적색 문양이 있다. 각각 주황색 띠와 녹색 받침 모양을 추가했지만, 일장기를 떠올릴 수밖에 없는 교표다. 평택에 있는 두 학교의 교표는 항공자위대의 상징과 닮았다. 매의 날개에 일장기를 얹은 모양이다. 전범기업인 미쓰이 그룹과 똑 닮은 교표도 두 개교에서 발견된다. 특히 부천 한 초등학교의 교표는 미쓰이 그룹 로고에서 색깔만 다르다.

이들 일제 잔재 문양이 남은 교표들이 사용되게 된 원인은 정확하지 않다. 허은철 총신대 역사학과 교수는 “일부 학교들이 일제 잔재가 남아있는 교표를 사용하는 이유는 확실치 않다”면서도 “아무래도 우리 안에 상징이 뿌리 박혀 있는데, 이를 일제 잔재라고 인지 하지 못하고 사용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재생산되는 일제 잔재 교표

학교 현장에 남은 일제 잔재 교표의 더 큰 문제는 문제의식 없이 재생산되는 있다는 것이다.

인천일보가 경기도교육청의 교표 현황 전수조사 결과를 재분석한 결과 대다수의 교표는 해방 후 만들어졌다.

경기도교육청이 2019년 도내 2419개 학교를 대상으로 교표를 전수조사한 결과 일장기와 욱일기, 전범 기업 로고 등의 잔재가 남아있다고 판단되는 학교는 21개교다.

이 중 일제강점기에 개교한 학교는 4개교뿐이다. 나머지 17개교는 해방 후 개교했다.

연대별로는 1950년대 개교한 학교가 2개교, 60년대 5개교, 70년대 2개교, 80년대 3개교, 90년대 2개교, 2000년대 3개교가 일제 잔재 문양이 포함된 교표를 사용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특별한 역사인식 없이 과거 교표를 보고 영향을 받아 일제 잔재 문양이 무분별하게 사용됐을 것으로 추정한다.

과거 학교에서 교표 디자인을 선정하며 일제 잔재 여부 검증 등의 근거가 없었다. 지난해 12월에야 경기도의회가 '경기도교육청 일본 제국주의 상징물 사용 제한 조례'를 제정하며 근거가 마련됐다.

조례는 학교가 일본 제국주의를 상징하는 군사기와 조형물 또는 이를 연상시키는 상징물을 사용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교육감이 일본 제국주의 상징물 사용 제한 자문위원회를 설치해 학교들이 일제 잔재 교표 등을 자문받도록 했다.

학교는 자문위원회의 결과를 통해 일제 잔재 청산 등을 진행한다.

 

친일 행적자 기리는 기념비

교표와 교가 외에도 학교 내에는 여러 일제 잔재가 남아있다.

친일 행적을 보인 이상옥, 이병직, 민관식·민병선, 이규현 등 13명의 비석은 총 12개교에서 발견된다.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따르면 경기도 일대 대지주였던 이상옥(李相玉)은 1937년 일제 조선군사령부에 비행기 구입비 1만원을 헌납하고 공로로 포장을 받았다.

1941년엔 조선 최대 민간 전쟁협력단체인 조선임전보국 경성 발기인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학교에서는 이들은 기념비와 송덕비, 공덕비, 장학기념비 등으로 기리고 있으며, 친일행적 등은 설명되지 않고 있다. 학생들이 기념비 등의 내용을 보고 친일 행적자를 긍정적으로 볼 우려가 있다.

 

월계수 문양도 일제 잔재인가요?

경기도 학교 일제 잔재 전수 조사 보고서는 월계수 도안도 일제 잔재의 영향으로 보고 있다.

월계수 문양은 영광과 승리의 상징으로, 서양 문화에서는 월계관이 승리와 평화의 상징이자 전투·경기의 승리자에게 수여하는 영예다.

그러나 동아시아 전통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도안이다.

한국 사회에 월계관이 들어온 것은 일제 시대로 추정된다. 일본은 1900년대에 이미 월계관 문양을 사용하고 있었다. 1905년 러일전쟁의 승전을 기념하는 개선문도 월계관으로 장식했다.

일제강점기 시절에는 군 관련 배지에서 월계수가 욱일문, 삼각형, 해 등 군국주의의 상징과 함께 조합돼 사용된 점이 확인된다.

전수조사에 따르면 도내 학교 중 총 112개교가 월계수 무늬를 활용한 교표를 쓰고 있다.

교표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학교들도 월계수 문양을 승리와 영광, 명예 등의 의미로 본다.

월계수 문양은 무궁화 등 전통 문양과 결합하기도 한다. 도내 13개교의 교표가 무궁화를 가운데 두고 주변을 월계수가 감사고 있는 교표를 가지고 있다.

보고서는 “무조건 월계수 잎을 일제 잔재로 보는 것이 무리가 있는 지적도 있을 수 있다”며 “하지만 월계수 도상은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을 통해 들어왔다”고 밝혔다.

이어 “특히 일본이 러일전쟁의 승전을 축하하는 개선문을 장식하기 위해 사용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월계수의 상징적인 의미는 문예에서의 권위와 전쟁 승리의 명예, 국력의 우월한 힘이라고 볼 수 있다”며 “이것이 배움의 터인 학교 현장에서 어떠한 교육적 의미와 가치를 지니는지는 고민해 봐야 할 문제”라고 덧붙였다.

 

/김중래 기자·김보연 수습기자 jlcomet@incheonilbo.com

 


 

[인터뷰] 김영찬 시각멀티디자인 박사
 

“제국주의 상징 보고 자라면 욱일기마저 친숙하게 여겨”

김영찬 시각멀티디자인 박사
▲ 김영찬 시각멀티디자인 박사

“일제 잔재가 남은 문양을 자주 보고 친숙하게 받아들이면 일본 제국주의에 대해서도 친숙하게 여길 수 있다.”

김영찬(사진) 시각멀티디자인 박사는 일제 잔재가 남은 교표의 영향을 이같이 지적했다.

김 박사는 “학교의 아이덴티티를 상징하는 교표는 학생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며 “일제 잔재인지도 모르고 일상 속을 살아가다 보면 욱일기마저 친숙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는 나의 정체성은 물론 대한민국의 정체성도 흔들리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 박사는 경기도가 실시한 ‘경기도 친일문화잔재 조사·연구용역’에서 교표가 일제 잔재의 영향을 받은 것인지 분석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는 문양 자체의 중요성 보다는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이 모토로 활용됐는지 여부를 유심히 살폈다고 밝혔다.

김 박사는 “기본적으로 일장기와 욱일기 등과 형태적으로 유사한 경우 일제 잔재의 영향을 받았다고 판단했다”면서도 “이번 교표를 분석하며 전범 기업의 로고가 거의 똑같이 교표로 사용되고 있는 점 등을 확인하며 연구자로서도 안타깝게 생각됐다”고 말했다.

그는 일제 잔재를 일부 남겨 일제의 만행을 알려야 한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어불성설”이라 밝혔다.

김 박사는 “일제의 만행을 알리겠다는 기록으로써 사용하겠다면 학교에 남겨둘 게 아니라 박물관으로 보내 반성의 기회로 써야 한다”며 “학교 현장에 고스란히 남겨둔다는 것은 만행을 기억하겠다며 교복 이름표에 일본 이름을 써서 다니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모두가 비웃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김중래 기자·김보연 수습기자 jlcomet@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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