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대유행이 좀 잠잠해지는가 싶더니 최근 다시 확진자가 많이 늘어났다. 그동안 포스트 코로나를 대비하자던 사람들도 이제는 위드 코로나 시대를 말하고 있다. 이번의 코로나 위기를 잘 넘어간다고 해도 또 어떤 다른 변이 바이러스가 인간을 공격할지 모른다는 어두운 전망을 하는 것이다.

코로나 대유행은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 걸쳐 기존의 질서에 심각한 변화를 요구했다. 거의 패러다임의 변화라고 말할 수 있다. 그 중심 요인은 '비대면(untact)과 사회적 거리 두기'라는 새로운 문화이다. 비대면이나 사회적 거리두기의 사회는 인류가 추구해왔던 모습이 아니다. 호모 사피엔스는 오랜 세월 동안 서로 간의 친밀한 접촉을 통하여 소통과 공감을 키우는 힘을 키워왔다. 오감을 통한 접촉은 인류의 감성적 결속을 만드는 열쇠였다.

그런데 지금 우리에게 닥친 코로나 사회는 어떠한가? 대면 접촉으로 얻는 인간의 감성은 원천 제지당하고 사이버상의 가상 현실이 지배하게 되었다. 학교 교육도 이러한 물결에 휩쓸렸다. 일찍이 경험한 바 없는 학교 교육의 위기다. 그동안 쌓아온 학교 교육의 철학, 방법론, 제도, 가치의 토대가 흔들렸다.

비대면 온라인 위주의 수업이 기본이 되었다. 머리만을 쓰는 지식이나 정보는 비대면 온라인 수업으로도 전달할 수 있다. 하지만 가슴으로, 오감으로 느끼는 정서는 어떻게 전할 것인가? 행동으로 배워야 하는 윤리와 도덕 교육은 또 어떻게 해야 가능할 것인가? 하물며 신체적 기능이 반드시 수반되는 예술과 체육 교육은 이제 거의 불가능하다고 할 것이다.

또 대면 교육이 이루어질 때도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켜야 한다. 학교생활에서의 사회적 거리두기는 학교 교육의 공동체 정신을 무너뜨릴 것이다. 교사와 학생이 친밀한 라포르(rapport)를 형성해야 한다는 오래된 교육학의 원리는 수정되거나 방법을 달리해야 한다. 그보다는 지극히 개인화된 존재로서 마치 거대한 매커니즘의 부품같이 자기 자리만 지키고 있어야 할 것이다.

학교 교육이 이런 어두운 전망에서 벗어날 길은 없는가? 우리가 추구하는 교육의 목적과 가치를 여전히 추구할 방법은 없는가? 우리는 그 길을 찾기 위해 이런 결과를 가져온 원인에 주목하여야 한다. 이 재앙의 출발은 인류의 자연 파괴에 있다. 인류가 점점 자연을 파괴하니 야생동물들에게만 붙어살던 코로나바이러스가 인수공통의 감염원이 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인류의 욕심에 의한 무분별한 생태계 파괴가 재앙을 불러온 것이다.

제레미 리프킨은 <엔트로피>에서 고립된 계의 총 엔트로피는 감소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지구의 자연은 우리 인간에게 영원한 에너지를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인류가 선택해야 할 길은 우리에게 주어진 자연의 에너지를 가능한 한 천천히 소모하는 길뿐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학교 교육도 과도한 욕심을 내지 말고, 지속 가능한 세계를 위한 생태주의적 기반 위에 서야 한다. 아이들에게 생태적 감수성을 키워주어야 한다. 한 장의 종이를 소비하면서도 지구의 숲이 파괴되는 데 대한 책임감을 느끼게 가르쳐야 한다.

또 경쟁을 부추기던 교육에서 벗어나 함께 연대하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코로나 앞에 인류가 얼마나 무력했는가? 전 인류가 힘을 모아 대처하기에도 부족한 마당에 인류끼리, 나라끼리, 집단끼리 경쟁만을 조장하는 교육이 되어서는 안된다. 아이들의 미래는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비인간적인 상황에 놓일지 모른다. 그렇더라도 인류를 향한 연대의식을 놓지 않도록 교육해야 한다. 그래야 인류의 미래가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 성과 중심주의에서 벗어나 과정의 정당함을 더 존중하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 서로의 다양함을 인정하고, 평화로운 삶을 위한 교육을 해야 한다. 코로나 대유행은 인류의 위기이면서 동시에 기회일 수도 있다. 한국의 학교 교육에서도 그동안의 교육이 가져온 잘못을 철저히 반성하고 이 위기의 시대를 재도약의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한승희 전 검단고 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