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세기 후반기, 한국은 도시화의 거센 물결에 휩쓸렸다. 경제개발과 근대화라는 과제 자체가 도시화와 통했다. 수백년 터를 잡고 살던 향리를 떠나 서울로, 서울로 가는 이촌향도(離村向都)가 곧 처세 능력으로 비치기도 했다. 그래서 1970년대 대중가요는 고향의 '물레방아'나 '순이'를 그리는 향수 정서가 풍미했다. 1960년대만 해도 7대 3 정도이던 도시와 농촌 인구비율은 불과 한 세대만에 역전됐다. 그 시절 '서울의 달'이라는 TV드라마가 있었다. 고향에서 농고를 졸업하고 상경한 춘섭이가 서울 달동네에서 부대끼는 얘기다. 그 주제곡의 가사가 이랬다. '아무래도 난 돌아가야겠어/이 곳은 나에게 어울리지 않아/화려한 유혹 속에서 웃고 있지만/모든 것이 낯설기만 해…'

▶그러기를 반 세기, 이제는 거꾸로 이도향촌(離都向村)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젊어서 모두 도시로 나갔던 베이비 부머 세대들이 그 선두에 있다. 통계청 추계에 따르면 2047년까지 서울에서만 106만명이 시골로 빠져나갈 것이란다. 요즘은 방송에서도, SNS에서도, 모두가 “나 지금 시골에 있어”라고 외치는 듯 하다. 그 많은 TV 채널을 돌려도 돌려도 시골 얘기들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숱한 방송 카메라들이 농촌과 어촌, 산촌을 헤매고 있을 것이다. 한 종편채널의 '나는 자연인이다'는 10년이 지나도록 인기를 누린다. 별 제작비용도 들지 않을 터인데도 수많은 케이블 채널에서 마르고 닳도록 재방송되고 있다. 초기에는 사업이 망해서, 몸이 아파서, 산에 들어온 얘기들이 많았다. 그러나 이제는 해외동포 자연인, 탈북 자연인, 공무원 자연인, 여성 자연인 등 가지가지다. 이러니 방송마다 '나도 자연인'식 아류 프로들이 넘쳐난다. 한국인의 밥상을 찾아간다는 프로도 꼭 농촌과 산촌, 바닷가 갯마을들만 누빈다.

▶도시에 지친 이들의 로망인 시골행에도 걸림돌이 하나 있는 모양이다. 이른바 마을발전기금이다. 요즘 포털 검색에서 이 단어를 넣으면 “얼마를 내면 좋을까요”라는 글이 쭉 올라온다. 알게 모르게 여기 저기서 시끄러운 모양이다. 지난 봄 경기 화성시에서는 마을에 새로 들어온 사람들에게 지나친 금품을 요구하는 데 대한 민원이 제기돼 시끄러웠다. 이천시에서는 고향 발전을 위해 부당한 금전 요구를 자제하자는 시민운동도 일어났다. 마을발전기금 문제로 시작된 주민들과의 갈등으로 다시 돌아왔다는 사연도 보인다. 온라인 커뮤니티의 댓글은 의견이 엇갈린다. 텃세 또는 근거도 없는 준조세 아니냐는 항변이 있다. 그러나 마을을 지나는 길부터가 주민들이 수백년간 가꿔낸 생활 인프라인만큼 값을 치러야 마땅하다는 의견도 보인다. 그래서 TV 속 자연인들은 나홀로 저 외딴 산골짜기로만 들어가 있는 것인가.

 

/정기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