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는 서유럽의 작은 나라다. 인구 1000만에 경상남북도 남짓한 면적이다. 6·25때는 육군 1개 보병대대를 보내 참전했다. 5년여 동안 연 병력 3500명이 파병돼 임진강_학당리_잣골전투 등에서 106명이 전사하기도 했다. 우리와는 이미 1901년에 수교했으며 1961년부터 대사급 외교사절이 주재해 왔다. 그런 벨기에가 지난 몇달간 한국에서 뉴스의 초점이 됐다. 벨기에 대사 부인의 잇단 폭행 사건이다. 급기야 지난주 벨기에 정부는 “(대사 부부는) 더 이상 지체하지 말고 돌아오라”는 훈령을 내렸다. 1차 폭행 사건으로 올여름까지로 유예됐던 임기가 2차 폭행 사건으로 바로 잘린 것이다.

▶이 대사 부인은 지난 4월 서울 용산의 한 옷가게에서 첫 사고를 쳤다. 가게 직원의 뒤통수를 때리고 이를 말리던 다른 직원의 뺨을 후려갈긴 것이다. 이 직원은 왼쪽 뺨이 벌겋게 부어오르고 눈의 실핏줄이 빨개질 정도로 부상을 당했다. 그러나 외교관 가족의 면책특권으로 경찰은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 그런데 대사 부인이 중국계 여성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최근의 반중(反中) 감정과 맞물려 더욱 여론의 공분을 샀다. 그 와중에 지난 5일 이번엔 환경미화원에게 손찌검을 한 것이다. 대사 부인이 공원 구석에 놓아둔 환경미화원의 도시락을 발로 차고 짓이기면서 몸싸움이 벌어졌다. 그 2주 전에는 공원 벤치에 두고 간 휴대전화를 건드렸다며 이 미화원 얼굴에 휴지를 집어던지기도 했다.

▶귀부인 이미지의 대사 부인이 왜 이렇게 험악한가 했더니 중국 태극권의 고수였다. 중국 무술은 손으로 때리는 기술이 주특기다. 2019년 한 여성지에 이 벨기에 대사 부인의 인터뷰 기사가 실렸다. 대사 부인은 심장병 가족력을 걱정한 부친이 일찍이 태극권 사부를 초빙해 줬다고 했다. 그래서 중국, 코소보, 헝가리, EU 4개국 등 주재국마다 현지인들에게 태극권을 가르쳤다는 것이다. 한국에 부임해서도 서울에서 태극권을 전수 중이나 문하생들이 늘어 더 넓은 공간을 물색 중이라고 했다. 태극권 기술은 고수급인 모양이다. 그런데 하필 옷가게 여직원이나 환경미화원 등 약자에게만 휘둘렀으니 무도(武道)는 하수인 셈이다. 그 인터뷰 기사의 서두는 이랬다. '기품있고 온화하며 내조에 충실하고 중국 전통 태극권을 널리 알려 지내온 나라들의 국민 건강을 위해 헌신했다.'

▶중국에 대한 좋지않은 감정은 네티즌들의 주력부대인 MZ세대가 더하다고 한다. 캠퍼스에서부터 무례한 중국유학생들을 많이 겪어서다. 그런데 2차 폭행사건이 불거지자 중국 온라인 커뮤니티들은 대사 부인이 한국인이라는 댓글로 도배됐다. '조선족이라서 그렇겠지' '한국인이 한국인을 때린 사건이다' 등이다. 적반하장이 중국인의 특질인가. 지난 9일 한국을 떠나던 대사 부인도 당당했다고 한다. 취재진을 향해 활짝 웃고 손까지 흔들었다나. 그냥 맞지만 않고 쌍방폭행에 나선 환경미화원이 이해가 된다.

 

/정기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