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가 시작되었다. 경기장에는 붉은 옷을 입고 얼굴에 태극기가 그려진 밝고 맑은 얼굴의 한국인들이 섰다.
 그들이 외치는 함성에는 희망이 있고, 당당함이 있다. 이름 모를 옆 사람과 어깨동무를 하며 이야기를 건넨다. 웃는다. 드디어 축제가 시작된 것이다.
 월드컵 개막식 행사는 그야말로 감동이었다. 한국의 소리에는 혼이 있었다. 그 소리에서 우리의 한(恨)이 들렸다. 배고픔의 한, 탐관오리들로부터의 압제의 한, 외침으로부터의 한이 한데 어우러져 이제 세계를 상대로 큰 축제를 벌일 만큼 커진 아름다운 한의 소리를 들었다.
 오천 년 한의 역사가 이제 세계를 품어주는 포용력으로 승화한 것이다. 장엄한 북소리는 마치 고구려 군사들의 함성으로 들렸다. 그 시절, 중국대륙을 휘젓고 다녔던 우리 조상들의 숭무정신은 이제 우리 선수들의 16강 진출, 아니 그 이상의 선전으로 나타날 것이다. 이 감동의 축제의 한 가운데에서 우리는 서로를 사랑하며 손을 잡으면 된다. 그리고 서로가 있음에 기뻐하고 고마워하면 된다.
 우리 한국 축구팀에 거는 기대가 하늘을 찌를 듯하다. 왜일까? 16강에 진출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서 그렇다.
 이러한 신뢰는 그들이 그동안 최선을 다해서 땀 흘려왔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또한 히딩크 감독의 천재적인 리더십을 믿기 때문이다. 축구에 대한 국민들의 엄청난 사랑은 바로 그들의 정직한 노력의 대가인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불편함을 마다 않고 시민들의 94%가 차량이부제에 동참했던 것이다. 결국 사랑은 받는 사람들의 자기 노력에 대한 보상인 것이다.
 또 하나의 축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6·13 선거가 그것이다. 민주국가에서 선거란 축제가 되어야 한다. 즐거워야 하고 감동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네 정치는 그 어디에도 감동과 즐거움이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기기 위한 전술만 있지 국민을 사랑하는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들을 놓고, 자기들끼리 `양아치""라고 하고, 또 다른 쪽에선 `미친년""이라고 한다.
 미안한 얘기지만 우리는 우리의 대통령으로 `양아치""나 `미친년""을 뽑을 의사가 전혀 없다. 정치인들이 자신들을 사랑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국민을 사랑한다고 감히 말할 수 있는가. 자신의 아내를 진정 사랑하지 못하는 자가 어떻게 다른 사람들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 모두가 거짓인 것이다. 이기기 위한 선거를 위해 국회의원들이 길거리에 대거 모였다. 그 시간, 국회는 원구성도 못하고 산적한 법안처리는 다음으로 미뤄지고 있다.
 훗날 초나라의 명재상으로 유명한 손숙오(孫叔敖)가 어릴 때의 일이었다. 한번은 밖에서 놀다가 머리가 둘 달린 뱀을 보고 돌로 때려잡아 땅에 묻고 집에 들어와 울기 시작한다.
 어머니가 그에게 물었다. “왜 그러니? 사내녀석이 그렇게 눈물이 많아서야 어찌 큰 일을 하겠니?”
 “어머니, 어른들의 말에 의하면 머리 둘 달린 뱀을 본 사람은 죽는다면서요? 오늘 밖에서 놀다가 그 뱀을 보았어요. 이제 어머니를 홀로 두고 죽게 될까봐 두려워서 우는 겁니다.”
 “지금 그 뱀이 어디 있느냐?”
 “다른 사람이 볼까봐 죽여서 땅 속에 묻어버렸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렇게 말한다. “아들아, 너는 죽지 않을 것이다. 듣자하니 남몰래 덕을 베푼 자에게 하늘이 복을 내린다고 하더구나.”
 머리 둘 달린 뱀을 보았으니 그는 죽는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죽을까봐 그것을 잡아죽이는 어린 소년의 아름다운 사랑은 재상이 되어 백성을 사랑하는 정사를 폄으로써 승화되었다. 정치는 바로 사랑인 것이다.
 그 사랑은 말에 의해서가 아니라 뱀을 죽이는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러한 곳에서 선거가 축제로 승화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