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흑같은 밤, 벚꽃나무가 무성한 숲속에 젊은 남녀가 나즈막하게 속삭이고 있다. 그들의 뺨 한쪽에 하얀 달빛이 흐르고, `우 우"" 이따금 부엉이 소리만이 정적을 가르며 그들의 대화에 끼어든다.
 “벚나무 한그루 한그루에, 잎사귀와 줄기에 가련한 영혼들이 살아나 노려보고 있는 것 같지 않아?” 빼쨔가 아냐를 쳐다본다. “우리가 살고있는 이 집은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것이 아니예요. 전 여기서 나가겠어요.” 농노소유자 즉, 조상의 부조리를 비판하는 빼쨔를 마주한 아냐는 결심한듯 단호하게 말한다.(2막 중에서)
 안톤 체홉의 4대 희곡 가운데 하나인 `벚꽃동산""이 연극으로 인천시민들을 만난다. 인천시립극단은 32회 정기공연 `벚꽃동산""을 오는 6월1~7일까지 인천종합문예회관 소공연장 무대에 올린다.
 `벚꽃동산""은 혁명전야 과도기 러시아사회를 놀랄만큼 섬세하게 묘사한 작품으로, 1904년 모스크바에서 초연된 이래 지금은 20세기를 대표하는 고전희곡으로 자리잡았다.
 남편과 아들을 사별한 라네프스까야 부인은 파리에서 살다가 자신 소유의 벚꽃동산이 있는 러시아로 돌아온다. 세상물정은 모른 채 낭만을 좇으며 사치스런 생활을 하는 라네프스까야는 자신도 모른 채 서서히 몰락해간다. 벚꽃동산은 결국 경매로 넘어가고 농노의 아들 로빠한이 벚꽃동산을 사버린다. 사람들은 하나 둘 떠나고 벚꽃동산에는 벚나무 찍는 소리만이 처연하게 들려온다.
 100년이 지나, 당시 시대상황이 지금과는 크게 다름에도 이 작품이 사랑받는 것은 이야기의 줄기가 인간의 보편적인 정신세계를 관류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물정은 모른 채 사치만을 아는 여지주 라네스프까야, 영리한 상인 로빠한 등 12여명의 등장인물 하나하나는 전형적인 현대인물이 되어 관객에게 다가온다. 그들은 내가족 같기도 하고, 친구같기도 한 우리주변 사람들이다.
 안톤 체홉은 1875년 입센의 `인형의 집""에서 처음 시도한 대사위주의 리얼리즘 연극을 완성한 작가로, `벚꽃동산""은 작가 최후의 작품이기도 하다.
 박은희 감독은 “그동안 창작극, 재창작극을 주로 공연했으며 원작을 충실하게 살린 번역극을 올리는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438-7775
〈김진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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