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정 경기본사 문화기획부장

요즘 집의 가치는 집값으로 수렴된다. 집의 위치가 어디인지 어떤 브랜드 아파트에 사는지 몇 평에 사는지가 중요한 시대가 됐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당연한 현상이지만 미래 세대가 마주할 집의 가치에는 마을의 역사와 주민 간 소통, 주민들의 마을에 대한 애착 등의 요소가 더해졌으면 좋겠다.

도시는 언제나 새로움과 놀라움으로 확장과 발전을 거듭하면서 변화한다. 시대에 밀려 이전 것을 보존할 수 없다면 기록이라도 하면 좋으련만 새롭게 생겨난 도시는 이전 것을 지워버린다. 도시가 처음 생겨난 원형을 품고 있는 원도심에는 골목 골목마다 역사와 추억이 가득하다.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삶의 흔적은 훗날 마을의 역사가 될 수 있지만 기록되지 않으면 사라진다.

그동안 개발 논리에 밀려 수없이 많은 것들이 사라졌다. 싹 갈아엎는 식으로 진행되는 도시개발 때문에 소중한 역사와 가치를 담고 있는 마을의 옛날은 찾아보기 어렵다.

인천 주안공단은 1969년 기업의 상품 수출을 목적으로 주안염전을 메워 만든 산업단지다. 인간생활에 없어서는 안되는 필수 물질인 소금을 만들어낸 우리나라 최초의 염전이 폐염되면서 산업단지로 변했다. 이후 도시개발이 진행되면서 1980년대 남동염전이 사라졌고, 소래염전마저 1995년 수인선 폐선과 더불어 폐염됐다. 전국 대부분의 염전이 공단이나 아파트 단지에 묻히면서 소금의 역사도 소금에 대한 기억도 함께 묻혔다.

공공기관 이전으로 새로운 공간이 만들어진 마을도 기록이 부족하긴 매한가지다. 농촌진흥청의 잠종장(누에를 키우는 공장)이 있었던 경기도 수원 망포지구에는 도시개발사업이 진행되면서 도서관과 대규모 아파트가 들어섰다. 서울농대와 농진청이 있던 서둔동은 우리나라 농업기술의 산실이었지만 개발지로 주목될 뿐 그 사실이 잊혀지고 있다.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할 인력과 기술력이 있던 이들 마을에 대한 역사와 사람들의 이야기가 남아있지 않다.

손끝에서 사라져 버린 후에야 잊혀진 것들에 대한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생겨난다. 개발이 진행될 때에는 현장에 펜스가 쳐지기 전부터 마을 기록을 남겨야 한다. 뒤늦게 접근할수록 잃어버리고 잊어버리는 것들이 많아지기 마련이다.

고무적인 것은 민·관에서 마을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을 확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개발사업으로 사라지게 될 마을의 역사와 문화를 주민들과 지자체, 시민단체, 아카이브 전문가, LH(한국토지주택공사) 등이 협력해 마을 기록화 사업을 벌이고 있다.

군포 대야미와 의왕 월암 공공주택지구 등의 개발사업을 진행하는 LH는 올해 사업지 내 마을의 유산을 수집-보존-전승하기 위해 아카이브 사업을 추진했다. 주민 생애에 대한 구술채록작업과 마을 명소 등을 담은 영상물 제작, 주민참여 마을행사 사업 등이 진행되고 있다. 새로운 주거지가 조성되는 곳에 이전 삶의 기록과 시간을 남기는 마을 흔적에 대한 보존 기록은 없어서는 안될 과정이 되어야 한다.

마을 기록은 앞으로 더 활성화될 것으로 보인다. 소셜미디어와 각종 온라인 매체가 발달하고 기록기기가 다양화되면서 누구나 기록할 수 있는 세상이 됐다. 그만큼 지역의 모습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다. 마을의 문화재, 학교, 시장, 축제, 사건·사고 등 다양한 방면의 마을 기록이 총망라될 것이다.

마을 기록은 단순한 기록 차원을 넘어 지역 공동체 활성화로 이어진다. 각각의 기억이 하나의 기록으로 모아져 마을의 역사가 되고, 사람들 간 이야기를 공유하며 소통이 이루어진다. 아카이빙 활동을 하며 마을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자부심이 생겨나기도 한다. 그런 과정들을 통해 기억과 추억이 보존된 마을의 과거를 보관하게 된다. 마음과 정신이 담긴 과거에 대한 기록은 자본에 휩쓸리는 시대에 함께 살아가는 모양새를 발견하게 해주고 각박한 시대에 위로를 전하기도 한다.

이 같은 마을 자산의 가치가 집의 가치로서 미래 세대에 전해지길 바란다. 기억해야 할 필요를 갖고 있는 것들은 기록을 통해 미래 세대로 이어질 때 그 가치가 확장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