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환 논설실장

국내 유일의 협궤열차 수인선의 운행 중단이 예고됐던 1990년대 초 어느 가을. 당시 철도청은 출입기자단에 수인선 열차 단체 시승 기회를 마련했다. 그 때 이미 소래포구 나들이용으로나 이용되던 이 열차가 아주 사라지기 전에 한번 타 봐야 한다는 의미였다. 철도청은 참여를 독려하느라 이벤트도 하나 추가했다. 이미 사용이 끝난 대통령 전용 기동차로 수원역으로 이동한다는 것이었다. 수원역에서 처음 타 본 수인선 열차는 과연 느낌이 많이 달랐다. '꼬마열차'라는 애칭이 잘 어울렸고 곧 긴칼 찬 일본순사가 나타날 것 같은 시간여행감이 느껴졌다.

▶수인선은 1972년 수려선(수원∼여주) 폐선 이후 유일한 협궤열차로 1995년까지 운행됐다. 궤도폭이 1435㎜인 표준궤를 기준으로 이보다 좁으면 협궤, 넓으면 광궤라 한다. 대표적인 협궤로는 케이프 궤간(1067㎜), 스코틀랜드 궤간(1372㎜), 보스니아 궤간(762㎜) 등이 있다. 이 중 수인선과 수려선, 부산진∼동래온천 구간 등 한국의 협궤철도들은 보스니아 궤간을 채택했다. 협궤는 부설 공사가 쉽고 비용이 적게 드는 장점이 있다. 그래서 식민지 지역 또는 교통량이 한산하거나 산악 등 지형이 험악한 구간의 철도 부설에 많이 이용됐다. 1937년 8월5일 개통된 수인선도 52㎞ 전 구간을 부설하는데 채 1년도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사설 철도 회사인 조선경동철도에 의해 주로 소래 지역의 소금을 수송하려는 목적으로 부설됐다가 나중 국철에 편입됐다.

▶반면 광궤 철도는 초기에 정치•군사적 이유로 채택되곤 했다. 스페인은 프랑스와의 단절을 위해, 러시아는 잠재적인 적국 독일과의 단절을 위해 의도적으로 광궤를 깔았다. 이때문에 1차 세계대전때는 러시아가, 2차 세계대전때는 독일이 각각 적지에서의 군수물자 보급에 애를 먹었다. 이 외에 더 크고 출력이 높은 열차를 태우기 위해서, 또는 지반이 너무 약한 지형에 열차 하중을 분산시키기 위해 광궤가 채택됐다. 엄청난 스케일의 시베리아 횡단 철도도 광궤로 부설된 이유다.

▶그 수인선이 내달 12일부터 전구간 개통으로 우리에게 다시 돌아온다고 한다. 그 옛날 증기나 디젤기관차가 아닌 최첨단 복선전기철도로 거듭 태어난 것이다. 표준궤로 분당선과 직결돼 총 60개 역에 100㎞가 넘는 초장거리 도시철도의 축이 될 것이라고도 한다. 과거처럼 인천과 경기를 동일 생활권으로 묶는 역할도 할 것이다. 전구간 개통 수인선은 나아가 인천발 KTX의 지렛대이기도 하다. 인천발 KTX는 수인선 송도역을 기점으로, 초지역(안산시)을 거쳐 어천역(화성시)에서 경부고속철도를 탈 계획이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