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18년만에 만들어진 '평화공원'
추모비·촛불시위 담긴 벽화 등 공개

시민단체 등 150여명 모여 추모제
효순양 아버지 “모든 분들께 감사”
▲ 2002년 6월 미군 장갑차에 깔려 목숨을 잃은 고 신효순·심미선 양 추모공원이 18년 만에 완공됐다. 지난 13일 양주 광적면 평화공원에서 열린 추모제에서 한 시민이 영정 앞에 국화꽃을 놓고 있다.

 

 

월드컵 열기가 한국을 사로잡은 지난 2002년 6월 미군 장갑차에 깔려 목숨을 잃은 효순이와 미선이를 추모하는 공원이 지난 13일 완공됐다. 18년 만이다.

양주시 광적면 효촌리 사고가 발생한 56번 국도변 언덕에 마련된 평화공원은 당시와 크게 달라지지 않은 모습이었다.

뜨거운 햇살에 달궈진 아스팔트 도로는 열기를 뿜어냈고, 언덕으로 나뉜 두 마을을 잇는 길은 여느 시골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2차선 도로였다.

지난 2002년 이곳에서는 건넛마을 친구를 만나러 가던 조양중학교 신효순, 심미선 양이 인도도 없던 갓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완만한 오르막의 커브 길을 따라 올라가던 두 소녀의 맞은편에서는 미군 브래들리 장갑차가 오고 있었고, 뒤에서는 M60 패튼 전차를 개조한 지뢰 제거 장갑차량이 따라왔다. 미군 장갑차가 서로를 비켜 지나간 후 끔찍한 참상이 나타났다. 두 여중생의 시신은 말 그대로 으깨져 버렸다.

이제 사고지점 갓길에는 폭 1m 남짓한 인도가 생겼다. 튼튼한 안전펜스도 설치됐고, 횡단보도와 신호등도 생겼다.

두 소녀가 걷던 오른편 언덕에는 추모공원이 생겼다. 추모공원은 현장에서 발견된 운동화 모양이었고, 시민추모비와 사고 이후 벌어진 많은 촛불시위의 장면이 벽화로 그려졌다.

이날 18주기 추모제와 함께 열린 추모공원 완공식에는 150여명의 추모객이 찾았다.

사건 초기 진상규명을 위해 현장조사를 하기도 했던 시민단체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이하 평통사) 소속 학생은 두 소녀의 영정사진을 들고 사고가 발생한 1차선 갓길에 섰다. 앞에는 공직자 최초로 추모제에 참석한 이재강 경기도 평화부지사를 비롯해 정성호 국회의원 등이 영정사진을 둘러싸고 묵념을 했다. 이후 영정사진은 추모공원 안쪽 시민추모비 앞에 모셔졌고, 추모객들은 손에 든 국화꽃을 영정 앞에 놓았다.

시민추모비에는 '푸르러 서글픈 유월의 언덕 애처로이 쓰러진 미선아, 효순아 / 손에 손 촛불 횃불로 타오를 때 / 너희 꿈 바람 실려 피어나리니'란 추모시가 쓰였고, 공원 벽에는 '자주평화 통일의 꿈으로 다시 피어나라! 미선아 효순아!'란 바람이 적혔다.

효순 양의 아버지 신현수씨는 “공원을 만들어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린다”면서 “그런데 이런 공원이 다시는 만들어져서는 안 된다.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된다”며 눈물 섞인 울분을 토했다.

김종일 당시 여중생범대위 집행위원장은 “10여년 만에 시민들의 성원에 힘입어 완공된 효순미선평화공원에서 18주기 추모제를 갖게 돼 만감이 교차한다”며 “평화공원은 효순미선을 기억하고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안정적인 추모공간을 제공하고 바로 옆 사고현장을 보존시켜 진상규명을, 나아가 한국민의 자주와 평화통일에 대한 염원을 세상에 알리는 역사의 현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석분 평화공원조성위원회 집행위원장] “가해군인 처벌 등 요구 중 지금까지 이뤄진 것 없어”

 

 

“굴욕적이고, 속상하고, 미안하고, 화가 난다.”

13일 故 신효순 심미선 18주기 추모제 및 평화공원 완공식 현장에서 만난 박석분(사진) 평화공원조성위원회 집행위원장은 그간 활동하며 느낀 부채의식을 언급했다.

박 위원장은 “억울한 사고가 났는데, 미군은 책임도 안지도 본국으로 돌아가 버렸고, 너무나도 굴욕적이고 속상하고, 미안하고, 화가 나는 마음에 부채의식을 느껴왔다”며 “그렇기 때문에 추모공원을 설립하기 위한 활동을 이어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박 위원장은 사고가 난 지난 2002년 6월 13일 지방선거로 인해 휴일이 생기자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평통사) 회원들과 함께 오랜만에 수련회 길에 나섰다. 짧은 보도로 접한 사고 소식에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박 위원장은 “당시 미군에 의한 교통사고 등 범죄는 제대로 알려지지도 않고 대책도 없이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며 “그 와중에 아이들(효순이, 미선이)가 죽었고, 대응을 안 하면 자칫 이것도 그렇게(대책 없이) 될 수 있겠다는 무서움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이후 평통사를 중심으로 한 활동에 참여하며 가해 군인 처벌, SOFA(주한미군지위협정) 개정, 미국 대통령의 공식 공개사과, 진상규명 등을 요구해 왔다. 지난 2008년부터는 훼손된 시민추모비 건립과 추모공원 설립을 주도해 왔다. 그러다 159개 단체와 3000여명의 개인에게 받은 기부금 3억여원을 들여 추모공원을 설립하게 됐다.

박 위원장은 “18년 만에 추모공원을 마련하게 됐지만, 지금까지 요구해온 과제 중 아직 이뤄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며 “이는 공소시효가 지났다고, 사건자료가 없다고 하지 않을 일이 아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글·사진 김중래 기자 jlcomet@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