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여성·성소수자 누려야 할 것 누리고 보장받아야

 

▲ 경기도 성평등 조례를 지지하는 도내 단체들이 조례 재개정을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인천일보DB


#지난 2017년 정부는 향후 5년간 성차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계획이 담긴 '제2차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여기엔 여성 고용 비율을 높이고 남성의 유급 출산휴가를 늘리는 방안 등이 담겼다.
별다른 문제가 없어 보이던 계획안은 특정 단어 때문에 논란을 빚었다. 계획안에 사용된 '성평등'이란 단어가 성소수자 등 포괄적 의미의 성평등을 의미한다며 일부 단체가 '양성평등'으로 고쳐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를 두고 정부가 성평등과 양성평등을 모두 사용하겠다고 밝히자, 이번엔 반대로 여성·인권단체들이 반발했다. 이들은 성평등 문제를 해결해야하는 정부가 되레 뒷걸음질 치고 있다며 거세게 비난했다.

이처럼 '성(性)'을 둘러싼 용어 전쟁이 끊이질 않고 있다. 성이란 단어에 담긴 뜻이 여러가지인 반면 우리나라에선 성이란 한 글자로만 표현되기 때문이다. 실제 성을 표현하는 영어 단어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생물학적 남성과 여성을 구분하는 섹스(Sex)와 성적 자기정체성을 뜻하는 젠더(Gender)다. 여기서 섹스는 생물학적 의미를, 젠더는 생물학적 성부터 사회적 의미의 성 정체성 등을 담고 있지만 단어 사용에 혼동이 생기면서 성평등 문제는 좀처럼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성 격차 지수 … 꾸준히 오르나 여전히 하위권

지난해 세계경제포럼이 발표한 '세계 성 격차 지수 보고서'를 살펴보면 우리나라의 성 격차 지수(Gender Gap Index)는 0.672점으로 153개국 중 108위를 기록했다.

이는 2017년(118위)과 2018년(115위)과 비교해 소폭 상승했으나 여전히 하위권인 건 부정할 수 없다.

성 격차 지수는 남성과 여성 간 격차에 초점을 맞춘 자료다. 즉, 남성과 여성의 삶이 얼마나 다른가에 주목하는 것이다.

#반대와 지지세력 사이에 놓인 '경기도 성평등 조례'

지난해 7월 경기도의회는 '경기도 성평등 기본조례'를 일부 개정했다. 이는 양성평등 참여를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도 산하 공공기관과 사용자의 성평등위원회 설치·운영에 따른 비용을 지원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도의회는 이를 바탕으로 성평등의 실현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조례는 통과 후 걷잡을 수 없는 후폭풍을 낳았다. 경기도기독교총연합회 등 일부 단체들이 '성평등은 동성애를 인정하는 조례'라며 거세게 반발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성평등이 아닌 양성평등을 주장하며 조례를 전면 수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에 맞서는 여성 단체 등은 개정된 성평등 조례를 지켜야 한다며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양 측의 의견 대립이 거세자 도의회는 한 발 물러서 조례를 일부 수정하기로 했다. 개정안은 기독계 등의 주장을 일부 수용해 성평등위원회 설치 대상에서 '사용자'를 제외했다. 다만 성평등에 대한 정의 등 내용은 현행규정을 유지하기로 했다.

그러나 최근 성평등 조례를 양성평등 조례로 개정하라는 서명에 17만7000여명의 도민이 참여하면서 갈등의 불씨는 여전한 실정이다.

#21대 국회가 생각하는 성평등은 어떨까

그렇다면 향후 구성될 21대 국회는 성평등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이를 확인하고자 한국여성단체연합외 35개 단체는 각 정당에 '젠더 정책 과제'에 대한 공개질의를 했다. 여기엔 ▲성별·종교·인종·성적지향·성별정체성 등을 차별금지 사유로 예시한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강간죄' 동의 기준으로 개정 ▲성별임금격차해소를 위한 기본법제 마련 등 핵심과제 5개와 ▲성차별 금지와 구제에 관한 독립적인 법률 제정 ▲성인지예산 성과증진법 제정 등 우선 과제 11개가 담겼다.

이에 대해 정의당과 민중당, 녹색당은 16개 과제 모두 찬성한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확인됐다. 민주당은 찬성 10개, 나머지 6개는 반대 혹은 기타 의견을 보였고 미래통합당은 '의견에 대체로 찬성하지만, 예와 아니오로 결정하기엔 신중해야 한다. 사회적 합의와 토론을 거쳐야 하는 부분에 대해 정확한 답변을 드리기 어렵다'고 답했다. 이 밖에 민생당과 우리공화당은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았다.

경기여성단체연합 역시 경기지역 총선 후보에게 직접 이 같은 젠더 정책 과제를 물어봤다.

그 결과 질의서에 응답한 후보 19명 중 6명(정의당 양범진(시흥갑)·추혜선(안양동안을)·이종태(안양만안)·심상정(고양갑)·박원석(고양을), 민중당 김도현(군포))은 경기여성단체연합이 제시한 젠더 과제 20개에 모두 찬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외 민주당(윤후덕(파주갑)·조정식(시흥을)·민병덕(안양동안갑)·한준호(고양을)·이학영(군포)·김주영(김포갑)·박상혁(김포을))과 통합당(함진규 시흥갑), 민생당(양순필 광명갑)과 기본소득당(신지혜 고양정), 국가혁명배상금당(박수연 파주갑)과 무소속(김기윤(광명을)·김경표(광명갑)) 후보 등은 일부 반대 혹은 답변을 하지 않았다. 가장 의견이 분분했던 젠더 과제는 '지역구 후보 동수 공천 및 여성대표성 확대'로 19명 중 9명이 반대·무응답으로 답변했다고 경기여성단체연합은 설명했다.

#투표에 달린 성평등의 미래

코 앞으로 다가온 총선 결과에 따라 성평등 문제 역시 큰 변화를 맞이할 것이란 목소리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사실상 제자리걸음을 보이는 성평등 논란에 대해 각 정당과 국회의원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사월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는 "사실 우리나라에서 성평등에 대한 열망의 목소리는 꾸준했다. 문제는 그동안 달라지는 건 크게 없었다는 데 있다. 이는 정부와 국회 등이 침묵하는 동시에 일부 동성애 등을 혐오하는 세력이 주장하는 의견이 마치 사실처럼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라며 "21대 국회는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사회적 장을 마련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제언했다.

조영숙 수원여성회 대표 역시 "남성과 여성 그리고 성소수자 모두 사회 속에서 개인이 누려야 하는 것들을 누리고 동시에 이를 보장받아야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며 "유권자의 투표가 이 같은 문제를 개선하는데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임태환 기자 imsens@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