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십 평생 가장 큰 그림 '뮤지엄파크' … 인천 경쟁력 키워주길"
[아름다운 직업, 행복했던 3년]

지역 문화계 상징 과분한 자리
잘 따라와 준 직원들에게 감사
아내와 전국투어 약속 지킬 것

[깨어있는 도시, 깨어있는 시민]

개항·이주·전쟁·경제사 역동적
도시역사관·뮤지엄파크 품격 높여
후손에 자부심과 긍지 심어줘야


"'정년 퇴직하면 전국 투어를 하자'고 아내와 약속했었는데, 그걸 여태 못 지켰습니다. 이제, 그 약속을 지키려고 합니다. 지역사회와 공직자 등 여러분께 정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공직자가 바로 서면 나라도 바로 섭니다. 행복했던 3년이었습니다."

조우성(70) 인천시립박물관장이 임기 3년을 마치고 오는 23일 퇴임한다. 그는 명색이 1975년 박목월 시인을 통해서 문단에 나온 '시인'이다. 인천에서 교사와 언론인으로 활동하다 뒤늦게 박물관장직을 맡았다. 지역사회에서는 그를 시인보다는 '향토사가'라고 부른다. 그만큼 그는 지역사회의 역사와 문화에 조예가 깊다는 뜻이다. 그에게 인천 이야기를 부탁했다.


"박물관장이라는 자리에서 일할 기회를 주셔서 과분했습니다. 보람도 있었습니다. 늘 감사한 마음으로 일했습니다."
조우성 관장은 재임 기간 중 "인천뮤지엄파크가 추진된 것이 기억에 남는다. 뮤지엄파크는 해방 이후 인천 문화사의 최대 프로젝트다. 앞으로 잘 되길 바란다"고 했다.

조 관장은 "땅을 팔아서 빚을 갚는 데 써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유정복 인천시장님이 큰 결단을 내려서 문화 컴플렉스를 짓게 됐다"며 향후 인천 문화의 기념비적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더불어 인천시의 국립문자박물관 유치 성공도 떠올렸다. 인천국제공항에서 30분 거리인 송도에 국립문자박물관과 용현동에 뮤지엄파크가 건립되면, 인천이 바야흐로 사상 초유의 문화적 르네상스를 맞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도시의 경쟁력은 문화'라고들 말하는데, 거기에 걸맞은 국제적인 경쟁력과 규모, 인프라를 갖추게 된다는 것이다.

인천뮤지엄파크는 인천시가 OCI주식회사 공장이 있는 용현·학익 상업용지 5만여㎡를 ㈜디씨알이에서 기부채납 받아 2022년까지 2665억 원을 투입해 시립미술관 신축, 시립박물관 이전, 문화산업관 등 문화시설을 집적화 하는 대규모 사업이다.

"칠십 평생을 살면서 한 우물을 제대로 파지 못했다. 그저 퐁당퐁당 이곳저곳을 뛰어다녔던 게 아닌가 하는 자괴감이 든다. 청년기에 시를 쓸 때도, 장년기에 언론에서 일을 할 때도 그런 큰 그림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보람을 느낀다. 나이 들어 '어공(어쩌다가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얻게 된 일생일대의 행운이었다."

▲재임 3년은 어떤 시간이었는지.

―박물관장이란 직책은 어느 도시나 그 지역사회의 문화계를 상징하는 중한 자리이다. 짐이 무거웠지만, 직원들이 헌신적으로 도와주고, 내 뜻을 잘 따라 줬다. "박물관은 공부하는 곳이다. 긍지와 자부심을 갖자. 시민들에게 정체성을 함양토록 하는 것이 직분이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직업이냐"고 직원들에게 늘 강조했다. 보람 있고 즐거웠다.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이었는지.

―러시아는 인천에서 자폭한 순양함 발략 호의 깃발(257×200㎝)을 2010년부터 2014년까지 4년 동안 우리 박물관에서 빌려가 순회 전시를 했다. 이후 박물관 수장고에 보관해 왔다. 발략 호 깃발은 '우리 근대사의 뼈아픈 상징물'이어서 이를 대대손손 물려줘야겠다는 생각으로 2015년 7월 인천시무형문화재로 지정했다. 두 번 다시 우리의 삶의 터전 인천을 다른 나라의 전쟁터로 내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또 하나는, 원, 송, 명 3대의 중국 철종을 국가문화재로 지정 신청한 일이다. 일제가 중국 윈난성에서 공출한 것을 초대 이경성 관장이 구사일생으로 살린 것인데, 일제의 잔혹한 공출 사실과 불행했던 동북아의 정세를 잘 말해 주고 있다. 중국 신화사통신도 작년에 대대적으로 이를 보도한 바 있다. 이와 함께 겸제 정선의 노송영지도, 평양성도가 지정 심사 중이다.

마을박물관을 처음 만든 것도 기억에 남는다. 용현동 용정공원에 전국 최초로 토지금고 '마을박물관'을 개관했다. 지역사람들이 정체성과 정주의식을 갖도록 했다는 점이 특기할 만했다.

▲강화 건평돈대에서 조선시대의 무기를 발굴했는데.

―2017년 3월 강화군에 있는 건평돈대를 발굴했다. 현장에서 조선 후기의 대표 화기인 불랑기(佛狼機) 모포(母砲)를 출토했다. 이는 전투 현장에 있는 무기를 그대로 발굴한 최초의 예가 된다. 이 같은 내용을 전국 신문·방송에서 크게 보도했다. 국내에 불랑기가 10여 점이 있지만, 출토지가 불분명한데, 이번 것은 돈대 안에 설치된 것을 그대로 발굴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

또 지난해 5월 외국인묘지 이전 과정에서 '랜디스의 무덤에서 십자가가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개항기 때 인물들의 유물이 없었기에 미국 대사관에 연락해서 박물관에서 소장하게 됐다. '인천 외국인 묘지'라는 책도 처음 발간해 호평을 받았다.

▲개관한 지 70년이 넘었다고 들었는데.

―인천시립박물관은 1946년 4월1일 개관한 우리나라 최초의 공립 박물관이다. 2016년에 개관 70주년 기념식을 가졌다. 이날 시장님을 비롯한 지역사회 각계인사 500여분이 찾아 주시고 축하해 주셨다. '기억의 문을 열다'라는 특별전을 열었다. 특히 새얼문화재단 지용택 회장님이 초대 인천시립박물관장을 지낸 석남 이경성 선생의 흉상을 제작해 증정해 주신 데 대해 다시금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이경성 선생에 영향을 준 우현 고유섭 선생의 좌상도 1992년 새얼문화재단에서 만들어 주신 바 있다.

▲인천도시역사관도 새롭게 개관했는데.

―여지껏 도시홍보관 역할을 하던 송도의 컴팩스마트시티를 인천의 도시 발전사를 담은 '인천도시역사관'으로 리모델링하고 명칭도 변경해 지난 2월 현판식을 가졌다. 특히 개항기부터 1945년까지를 담은 1층 전시관에서는 개항사를 조계지가 아니라 인천감리서가 있던 내리를 중심으로 기술했다는 점이 주목된다. 새로운 관점에서 개항사를 접근한 것이다. 올해는 2층에 1945년부터 인천국제공항 개항까지를 담아내고, 내년에는 3층에 인천의 도시생활사와 문화를 넣으려고 한다. 인천의 도시 발전사를 알리고 문화, 역사의 현주소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뮤지엄파크와 문자박물관을 서로 연결하는 뮤지엄 벨트를 형성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인천은 어떤 도시인가.

―인천은 해불양수(海不讓水)의 도시다. 전국 각지에서 온 사람들을 모두 받아들인다. 배타적이 아니라 포용성을 담지하고 있다. 인천 문학산 주변에 미추홀국을 세운 비류도 북쪽 사람이다. 비류를 인천 이주민 1호라고 할 수 있다. 300만 대도시 인천은 이주민들이 모여 사는 이주민의 도시다. 그래서 포용성이 있다. 전국 각지에서 왔기에 다양성도 있다. 그 다양성 밑에서 역동성이 나온다. 그러기에 인천은 전국에서 발전 가능성이 가장 높은 도시다. 망국적 지역색이 아니라, 아름다운 포용성을 지니고 살고 있다. 이것이 진정한 인천의 정체성이다. 우리는 지금 이를 잘 살려나가야 하는 가장 중요한 단계에 와 있다. 인천은 인천이지, 서울의 관문이 아니다. 정치적 선택도 유연하다. 대한민국의 평균율적 투표를 한다. 시민이 깨어 있다는 산 증거다.

▲뮤지엄파크의 박물관 운영 방향은.

―어떤 박물관을 만들 것인지, 머리를 맞대고 연구해 전시계획을 세워 놓았다. 유물 3만4000점을 가지고 있다. 올해 유물 구입비로 10억 원도 확보했다. 첫째는 인천의 확장성과 포용성을 보여주는 이주사와 매립의 역사를, 둘째는 대한민국의 운명을 결정짓는 인천에서 벌어진 전쟁사를 담으려고 한다. 세번째는 세계 10대 무역국이 되는 과정에서 인천이 기여한 바가 크기에 항만, 중공업, 자동차공업, 염업 등 경제사를 넣을 것이다.

몽골 침입부터 임진왜란 수난, 신미·병인양요, 운양호사건, 제물포해전, 6·25인천상륙작전까지 큰 전쟁을 치르고도 살아남은 인천은 나라를 구한 구국의 도시요, 평화 지향 도시다. 그래서 박물관에 오면, 인천이 자부심과 긍지를 가질 만한 도시라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앞으로 뮤지엄파크는 어떤 콘텐츠를 담아서,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다른 지방자치단체의 실패한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뮤지엄파크는 우리 당대 사람들이 무엇을 누릴 것인지가 아니라, 후손의 사회교육과 감성교육을 통해서 지역의 품격을 어떻게 높여 나갈지를 고민해야 한다.

▲바람이 있다면.

―어쨌든, 우리는 지금 인천 문화의 르네상스기를 맞았다. 도시의 경쟁력은 문화라고 말하지만, 여태껏 이만큼 나선 적은 없었다. 뮤지엄파크를 놓고 일각에서는 규모가 '작다', '크다'하는데, 문화 향수자의 편의를 위해서는 집적화해야 한다. 경쟁력 있는 뮤지엄파크를 만드는 데, 모두가 허심탄회하게 힘을 모아야 한다. 장르 이기주의적 도그마에 빠지면 안 된다. 인천 문화를 되돌아보고, 뮤지엄파크를 통해 도시 경쟁력을 살려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동화 기자 itimes21@incheonilbo.com



[조우성 관장은]

1948년 인천에서 태어났다. 1975년 월간 시지 '심상' 신인상 수상으로 문단에 등단, 현재 한국시인협회 심의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인천일보사 문화부장·편집부국장·주필을 역임했으며, 새얼문화재단 후원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인천시문화재위원·인천시의회정책자문위원을 거쳐 현재 인천시사편찬위원이다. 선광문화재단·가천문화재단 이사로 있으며, 2015년 인천시립박물관장으로 취임, 2018년 3월 박물관장직을 퇴임한다.

저서는 인천이야기 100장면(2004년), 20세기 인천문화생활연표(2004년), 영종·용유지(편저·2008년), 연표와 사진으로 보는 인천체육사(204년) 등이 있다. 시집으로는 소리를 테마로 한 세편의 시(심상시인선·심상사), 아프리카·기타(한국시인총서·민족문화사), 코뿔소(화신시선) 등이 있다. '인천환상곡'을 작사했으며, 인천시문화상(제17회)과 자랑스런 인고인(仁高人)상(제19대) 등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