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의 집 역사관서 노제 '추모 발길' … 나눔의 집 법당에 영면
▲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故) 김군자 할머니의 노제가 진행된 25일 오전 광주시 퇴촌면 나눔의집에서 유가족들이 김 할머니의 영정을 들고 먼저 돌아가신 할머니들 흉상 앞을 지나가고 있다. /이성철 기자 slee0210@incheonilbo.com
"할머니 이제 행복한 곳에서 편히 쉬세요."

지난 23일 별세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군자(91) 할머니가 25일 영면에 들어갔다.

김 할머니의 노제가 25일 광주시 퇴촌면 나눔의 집 역사관에서 거행됐다.

노제에는 이용수(90), 박옥선(94), 할머니와 나눔의 집 원장 원행 스님, 박종문 아름다운재단 이사장, 유족과 지인, 학생 등 각계 인사 100여명이 참석해 할머니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노제는 김군자 할머니 약력 소개, 나눔의 집 원장 원행 스님과 내빈 추모사, 할머니가 머물던 방 영정 안치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원행 스님은 추모사에서 "일본 정부가 공식 사죄하고 법적 배상해야 한다는 평소의 그 말씀을 가슴에 새기며 반드시 당신의 명예를 회복하겠다"며 "올바른 역사와 인권을 알리기 위해 당당하고 용감하게 증언을 한 당신을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여성인권 활동가로 기억하겠다"고 다짐했다.

이용수 할머니는 "군자 씨, 우리가 왜 이렇게 당하고 울어야 합니까. 너무 억울하고 분하지만 이제 편안하게 웃으면서 잘 가세요"라고 마지막 인사를 했다.

추모사가 끝나고 유가족을 시작으로 원행 스님, 위안부 피해 할머니 등의 헌화와 분향이 이어졌으며, 추모객 중 일부는 흐느끼기도 했다.

분향 및 헌화에 이어 고인의 영정과 위패를 앞세운 노제 행렬이 나눔의 집 생활관 등 고인의 숨결이 어린 곳곳에 들렀다.

고인의 유해는 퇴촌성당에서의 마지막 미사 후 서울 양재동 서울추모공원에서 화장된 뒤 나눔의 집 법당에 안치됐다.

앞서 이날 오전 7시30분 성남시 분당차병원 장례식장에서 거행된 김군자 할머니의 발인제에는 나눔의 집 관계자, 시민 등 추모객 50여명이 이른 아침부터 빈소를 찾아 고인을 애도했다.

고인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발인제가 진행되면서 일부 추모객은 고개를 숙여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김강자(52)씨는 "나눔의 집을 종종 방문해 김군자 할머니를 봤었다. 이제 보지 못한다 생각하니 슬프다"며 "할머니가 편한 곳에서 영면하길 기원한다"고 애도했다.

박지원(32)씨는 "제대로 사과 받지 못하고 돌아가셔서 억울하고 원통하실 것 같다"며 "위안부 피해 할머니가 서른일곱 분 남았는데 더 늦기 전에 일본에게 사과 받아야한다"고 원통해했다.

김 할머니는 1998년부터 20년 가까이 나눔의 집에서 생활했다.

고인은 한국 정부로부터 받은 배상금 등을 모은 1억원을 아름다운재단에, 퇴촌성당에 1억5000만원, 나눔의 집에 1000만원 등 생전에 모은 돈 2억6000여만원을 모두를 아동 보육시설 등에 기부했다.

강원도 평창에서 태어난 김 할머니는 10대에 부모를 여의고 친척 집에서 생활하다가 17살의 나이로 중국 지린 성 훈춘 위안소로 끌려가 일본군의 '성노예' 생활을 했다. 3년간의 위안부 생활 동안 7차례나 자살을 기도하는 등 한 많은 삶을 살았다.

/장은기·이경훈 기자 50eunki@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