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도시 인천, 삶이 즐겁다] 6. 일본 나오시마는 어떻게 예술섬이 됐나
▲ 미야노우라항에 있는 쿠사마야요이의 빨간호박
▲ 오오타케 신로 '혀위의꿈'
▲ 집 프로젝트 '혼무라구역'
▲ 이우환미술관 야외조각 작품
▲ 지추미술관 계단
베네세그룹 '아트 프로젝트' 가동

섬 전체가 미술·박물관으로 변신

지추·이우환미술관·혼무라지구

새빨간·노란호박 등 볼거리 풍성

인천 섬마을·뮤지엄파크 본보기


일본에 있는 '예술의 섬, 나오시마'에 탐사 여행을 갔다. 현대미술의 세계적인 걸작을 상설전시하는 섬마을이다. 거장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섬 전체가 박물관이고 미술관이다. 예술이 삶과 공간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섬이다.

기업의 사회환원이 지역발전과 문화발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로 꼽히고 있다. 나오시마 탐사 여행길 내내 인천시와 인천문화재단이 추진하고 있는 인천의 섬예술프로젝트와 인천뮤지엄파크 조성 계획이 오버랩 돼 떠올랐다.


▲ 예술의 섬, 나오시마
나오시마에 도착하면 새빨간 호박이 첫눈에 들어온다. 미야노우라항에 있는 쿠사마 야요이의 <빨간호박>이다.

나오시마를 상징하는 랜드마크다. 여기서부터 섬의 오른쪽 바닷가를 배경으로 들어서 있는 집 프로젝트, 지추미술관, 이우환미술관, 야외작품, 베네세하우스 등에서 현대 예술이 빚어낸 명작을 감상할 수 있다.

클로드 모네의 <수련> 시리즈, 월터 드 마리아의 <시간/영원/시간없음>, 한국 작가 이우환의 <점에서>·<선으로부터> 연작물, 야니스 쿠넬리스의 <무제>, 안도 다다오의 건축물 등 발길 닿는 곳마다 예술작품의 향연이다.

나오시마는 일본의 지중해라고 부르는 세토내해라는 바다에 떠 있다. 오카야마 현과 카가와 현 사이에 있다. 둘레는 16㎞, 인구는 3600명이다. 여느 관광지에 있을 법한 유적도 없고 온천도 없다. 경관이 빼어난 것도 아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각 1곳씩 있고 고등학교는 없다. 병원도 1곳밖에 없다. 주민들은 대부분 어업에 종사한다.

나오시마는 카가와 현의 타카마츠 항에서 페리를 타고 짙푸른 바다에 물감을 흩뿌려놓은 듯 섬들이 점점이 떠 있는 세토내해를 50분쯤 향해하면 도착한다. 나오시마는 1980년대 구리제련소가 문을 닫은 뒤 버려진 섬이었다. 그 섬에 현대미술이라는 옷을 입혔더니, 사람이 찾아오는 공간으로 변신했다. 섬은 치유와 재생의 과정을 거쳐 예술의 섬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정준모 전 국립박물관장은 "인간의 욕망으로 추악해진 섬. 그러나 한 사람의 의지와 생각으로 다시 스스로의 모습을 되찾아가는 재생의 섬 나오시마는 기적이다. 아니 기적이 일상이 된 것이다"고 했다.

오늘날 나오시마는 섬 전체가 아름다운 미술관으로 변신했다. 그 시작은 일본의 교육·실버 기업인 베네세그룹의 후쿠다케 소이치로 회장이 나오시마를 현대미술로 되살리겠다며 1987년 '나오시마 아트 프로젝트'를 가동하면서부터다. 이른바, 인간이 훼손한 자연과 마을을 살리는 재생프로젝트다.

섬의 절반을 사들여서 1992년 베네세하우스 오픈을 시작으로, 이에 프로젝트 시작, 지추미술관 개관, 이우환 미술관 개관 순으로 진행했다. 섬 곳곳에는 현대미술의 거장들의 작품이 들어섰다.

30여년이 지났다. 지금은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매혹적인 마을로 재탄생했다. 문화예술로 쇠퇴한 마을을 되살린 대표적인 사례로 여겨지고 있다. 기업과 예술가, 현지 주민들이 서로 협업을 통해 다양한 재생 프로그램을 성공시켰다.


▲ 지추미술관

나오시마 프로젝트의 백미인 지추미술관은 건물 자체가 예술품이다. 일본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했다.

'땅 속(地中 Chichu)'의 의미 그대로 언덕을 파 그 안에 매설한 지추미술관. 산의 능선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눈에 거스리지 않도록 설계했다. 클로드 모네와 안도, 그리고 월터 드 마리아와 제임스 터렐이 시간을 초월해서 한 공간에 머무는 곳이다. 땅속에 가라앉은 미술관은 자연광만으로 작품과 건물 내를 보여주고 있다. 19세기 프랑스 인상파의 거장 클로드 모네가 그린 2×6m의 대작 <수련연못>은 압도적으로 다가온다.

빛, 그 자체를 예술로 제시하는 제임스 터렐의 <에프럼 페일 블루>와 미국의 대지미술 작가인 월터 드 마리아의 <시간/영원/시간없음> 등은 현대예술의 진수를 보여준다.

▲ 이우환미술관

나오시마는 2011년 이우환의 이름을 단 미술관을 개관했다. 바다와 산으로 둘러싸인 골짜기에 지어졌다.

이우환의 작품과 안도 다다오의 건축이 주위와 서로 어울려 조용한 사색의 시간을 준다. 안도 특유의 노출콘크리트로 지은 미술관은 한국과 일본이 낳은 두 거장의 '만남'이 이뤄지는 공간이다. 옥외작품으로 기둥의 광장에는 <관계항>의 작품이, 노출콘크리트 담을 굽어 돌면 직접 끌어들인 듯한 삼각형 하늘의 <조응의 광장>이 나타난다. 돌과 철판, 콘크리트벽이 묘한 긴장과 적막함을 자아낸다. 안으로 들어서면 마주치는 '만남의 방'에는 대표작 <점에서>, <선으로부터>, <조응> 등 평면작품 10점과 입체작품 1점은 그의 작가로서의 여정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 베네세하우스 뮤지엄
1992년 오픈한 베네세하우스 뮤지엄도 안도 다다오가 설계를 맡아 미술관과 호텔을 일체화한 시설이다. 자연의 지형을 살려, 산을 파고 들어가 있다. 베네세하우스 뮤지엄은 단지 작품을 구입해 전시하는 것뿐만 아니라, 작가를 초청해 전시 공간을 보여준 다음 현지에서 작품을 제작하도록 했다.

최초 작품이 야니스 쿠넬리스의 <무제>다. 바다 등에서 떠내려온 나무나 컵 등을 납으로 말아서 제작했다. 브루스 나우먼의 <100개의 삶과 죽음>, 리처드 롱의 <세토내해로 떠내려온 나무로 만든 원>, 야스다 칸의 <천비> 등이 제작, 전시돼 있다.

▲ 집 프로젝트, 이에 프로젝트
나오시마 이에 프로젝트는 1997년 혼무라 지구에 사는 한 주민이 가옥을 기증하면서 시작됐다. 혼무라 지역은 성터나 절, 신사 등이 모여 있는 곳이다. 인구가 줄고 고령화가 진행돼 빈집이 늘어나고 있었다. 오래된 가옥을 현대 예술의 설치 미술품으로 변신시키는 작업을 시작했다. 바둑을 두던 기원, 제사를 지내던 신사, 치과의원 등 7곳의 빈집을 예술가들의 상상력으로 되살려 낸 것이다.

최초의 작품 카도야는 미야지마 타츠오가 맡았다. 그의 작품 <시간의 바다>는 물속에 가라앉힌 LED 디지털 카운터가 1에서 9까지 숫자를 센다. 각 카운터가 변화하는 속도는 섬 주민들이 직접 정했다. 스키모토 하로시의 <적절한 비율>, 오오타케 신로의 <혀 위의 꿈> 등 빈집프로젝트 작품들은 겉에서 보기에는 분명 폐가인데, 안에 들어가면 오랜 마을의 역사와 기억을 저장하는 예술창고였다.

이밖에 야외전시 작품으로 쿠사마 야요이의 <빨간 호박>은 미야노우라항에, <노란 호박>은 베네세 하우스 해안가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다. 또 겉보기에는 폐건물처럼 보이지만 실제 목욕탕으로 운영되고 있는 <나오시마 목욕탕>은 예술과 생활의 경계를 무너트리는 작품이었다.

나오시마에 있는 예술작품은 주변 환경의 부족한 점을 채워줄 뿐, 자연을 거슬리는 작품은 없는 듯했다.

▲ 인천형 나오시마
다카마츠항으로 떠나는 마지막 배가 오후 5시 <빨간호박>을 뒤로하고 세토내해로 들어선다. 다시, 전쟁의 바다이며 평화의 바다 '경기만'이 떠올랐다. 굳이 나오시마같은 예술섬은 아닐지라도…. 그 곳 인천 앞바다를 수놓고 있는 섬, 시도·모도·백령도·자월도·장봉도·덕적도·무의도 등은 그 자리를 지켜준 그 자체만으로도 힐링을 준다. 자연을 거스리지 않고, 거센 비바람에도 견디며, 오랜 세월이 빚어낸 풍광 등 섬마다 제각기 다른 색깔과 가치를 지닌 거대한 작품이다.

'인천형 나오시마'는 어떤 모습일까. 어느날 누가 예술작품 몇 개 갖다 놓는다고 해서 도깨비 방망이처럼 죽은 섬마을이 살아나지는 않을 것이다. 섬 주민들이 직접 마을을 복원하는데 참여함으로써, 주민들이 예술의 소비자가 아니라 지속적인 생산 주체가 될 수 있어야 한다. 도시의 화려함과 세련됨은 없을지라도 역사와 전통을 지키며 마을을 가꾸는 주민들의 노력과 참여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섬은 단순한 관광의 대상이 아니라, 관광과 생활이 소통하는 곳이었으면 한다. 나오시마처럼 인천의 섬마을 사람들도 앞마당이나 뒤뜰에서 '없으면서도 있는 듯, 있으면서도 없는 듯' 문화와 예술의 향기를 누리는 그런 날을 기대해 본다.


/일본 나오시마=글·사진 이동화 기자 itimes21@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