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준호 인하대 의대내과 교수

 

 

2007년 인류에 소개된 스마트폰은 불, 석기, 철기를 잇는 인류의 기념비적 도구가 됐다. '호모 모빌리언스'라 불리는 신 인류는 SNS로 관계를 맺고 걸어가면서 구매한다. 실시간으로 뉴스와 정보를 받고 그 자리에서 댓글을 달고, '좋아요', '싫어요'를 눌러 의견을 표현한다. 이를 고대 아테네 아고라광장의 구현이라 하고, 정보화 혁명으로 인류가 바라마지 않던 궁극적인 민주사회가 도래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럴까?

아고라광장 사람들은 얼굴을 맞대고 설득하고 나간 말을 책임져야 했다. 예의를 벗어나거나 나쁜 말을 쓰면 대화에서 축출됐다. 사이버 공간에서는 비대면성과 익명성이 그러한 제약을 풀어준다. SNS같은 사이버 활동은 뇌 속 도파민 회로의 보상 반응을 자극한다. 의학자들은 이곳을 중독 중추라 부른다. 익명성이 공개된 공간을 은밀한 공간으로 만들고, 언어를 대화에서 감정의 배설로 변질시킨다. 자기표현을 할 기회가 적고 억눌린 사람일수록 댓글에 매달리게 되고, 참여와 중독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인간의 뇌는 생존을 위해 긍정적 신호보다 부정적 신호에 민감하도록 진화해 왔다. 그래서 부정적 신호에 본능적으로 집중하는 '부정편향'을 가지고 있다. 악성 댓글에 더 몰리고 부정적 트위터들에게 더 열광하는 이유는 그것이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위스콘신-매디슨 대학의 한 연구팀은 긍정성과 부정성이 대립되는 샘플 뉴스를 사람들에게 접하게 했다. 반은 예의를 지킨 댓글을, 반은 바보·멍청이 같은 단어를 사용한 저열한 댓글을 달았는데, 전자는 사람들의 관점에 영향을 미치지 않은 반면, 후자는 사람들을 양극화시키고 부정적인 방향으로 몰아간다는 것을 확인했다.

비난은 전염되고, 나쁜 글이 헤게모니를 잡는 이 현상을 '내스티 효과(Nasty effect)'라 부른다. 내스티 댓글 저널리스트들은 이 현상을 이용하여 혐오를 발굴해서 대세를 만든다. 필요하면 작위적인 군중의 형성이나 의도적인 알고리즘 증폭도 쉽게 하는 듯하다.
인터넷과 SNS의 '좋아요', '싫어요'는 감정의 결정을 강요하고 고착시켜 세상을 분극화로 동기화시킨다. 지난 두 달, 사람들은 전 법무장관 건으로 두 편으로 쪼개져 사이버 공간과 길거리에서 오로지 '싫어요', '좋아요'의 'O, X 룰'만이 전부인 세겨루기 게임을 하고 있다. 누가 이기는지 결정하자는 것이다. 조정자도 없고 그 끝이 안 보인다.

민주주의에서 개인의 의견은 사회가 나갈 길을 찾고 결정하는 근본이다. 그것이 100% 이성적일 수는 없더라도 최소한 '개별적'인 판단이어야 한다. 개별 판단을 버리고 무리가 기준이 되어 세겨루기로 나갈 바를 결정하는 세상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혐오를 팔고 부정적 피드백으로 힘을 얻으려 하는 시도는 어느 편이든 우리는 허락해서는 안된다. 민주주의는 참가자들이 철저히 '개인'으로 행동할 때 가장 타당한 결과를 낸다.
2010년 '아랍의 봄', 온라인 집단 이성이 북아프리카의 독재 세력들을 축출하고 전 세계의 갈채를 받았다. 하지만 지금도 시위는 끝나지 않고 튀니지를 제외하고는 아직 무정부 상태다. 그곳은 이제 '아랍의 겨울'이라 불리고 있고, 혁명의 영광은 트위터와 페이스북이 누리고 있다. 오프라인 혁명은 목표가 있고 오프라인 정치에는 결과에 순응하고 앞으로 나가는 장치가 있지만, 온라인에는 그런 장치가 없다.

고대 아고라광장에서 시작된 정치 구조가 20세기까지는 작동하였다 하더라도 금세기에도 계속 잘 맞아들지는 의문이다. 인터넷은 아고라광장보다 더 거대하고 강력하다. 지금의 세상은 인류가 처음 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송준호 의학박사는 내과전문의로 미국 미시간대 펠로우 교수, 인하대병원 공공의료사업단장을 지냈다. 인하대병원 대외홍보정책실장이며, 인천시의사협회 학술이사다. 전문 분야는 신장학, 혈액투석, 당뇨병성신증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