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문화읽기] 최첨단 3D 기술로 되살아난 1600년 전 능허대
[인천문화읽기] 최첨단 3D 기술로 되살아난 1600년 전 능허대
  • 장지혜
  • 승인 2019.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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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사신이 돌아봤을 그 풍경 그대로
▲ 3D기법으로 제작한 능허대 추정도와 한성백제 당시 동진·남조와의 사신 왕래길. /이미지제공=연수구·그래픽=이연선 기자

 

▲ 1930년대 능허대 전경. /인천일보 DB

 

▲ 지난달 20일 연수구청에서 개최한 '연수 능허대 문화축제의 지속 성장을 위한 능허대 역사 학술회의' 모습. /사진제공=연수구


372년부터 475년 웅진 천도까지

백제-동진·남조 통교 창구 역할

간척사업으로 사라졌던 옛 지형
허의행 수원대박물관 교수 주도
1969년 찍은 항공사진으로 복원

서해안·내륙 '한눈에' 조망 가능
선착장보다 경관지로 이용 추측


백제 근초고왕은 372년 중국 동진(東晉)과 통교를 시작했다. 웅진으로 도읍을 옮긴 475년(개로왕)까지 수교는 계속됐다.

사신들은 중국까지 배를 타고 갔다. 이 사신들이 왕래하던 나루터가 있던 곳이 바로 지금의 인천 연수구 옥련동 '능허대'다.

백제와 동진이 통교하던 당시 한반도의 정세는 백제·고구려·신라의 삼국이 서로 적대관계에 있고, 중국 대륙에서도 남북조(南北朝)가 서로 대립하고 있었다. 이런 까닭에 백제는 육로를 이용할 수 없었다. 백제와 적대 관계에 있던 데다가 북조와 통교하고 있던 고구려를 거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백제 사람들은 이 능허대 밑에 있던 한나루를 출발해 산둥반도의 항구에 이르는 해로를 활용했다. 능허대가 있던 자리는 남조에서 온 사신들이 귀국할 때 배가 출항하기를 기다리기에도 알맞고, 그들을 배웅하는 백제의 관원들이 멀어져가는 배를 지켜보기에도 적당한 위치였다.

능허대는 사학적으로 보존 가치가 높지만 오랜 간척사업으로 육지가 조성되고 아파트와 유원지가 들어서면서 변형됐다.

인천시는 나루터가 있던 자리를 지키기 위해 1990년 인천시기념물 제9호로 지정하고 백제시대 능허대 자리에 있던 것으로 알려진 정자를 복원했다. 또 연못도 갖추어 놓았지만 원지형은 거의 알아보기 어렵다.

최근에 능허대와 그 일대를 3차원 입체화 과정을 통한 고지형 분석 방법으로 국내 최초 3D로 재현하는 작업이 이뤄졌다. 3D 지형분석으로 백제사신들의 뱃길 이동로와 배 정박 상황을 추정할 수 있다.

최첨단 기술로 되살아난 능허대
이번 작업은 허의행 수원대박물관 교수의 주도로 성사됐다. 허 교수팀은 능허대 과거의 모습을 파악해 당시 물길 교역을 연구하기 위해 사업에 착수했다.

그는 능허대를 중심으로 한 고지형 분석을 통해 인공구조물을 제거하고 지형 변화의 과정을 염두에 두면서 과거 산지 지형을 복원하고 매몰된 미지형의 형태를 복원하는데 집중했다.

여기에 1969년도 항공사진이 활용됐다. 해상도가 비교적 높은 편이었고 1947년도 지형과 큰 변화를 찾을 수 없었다.

지형 분석을 위해 '스테레오스코프' 안경을 이용한 3차원의 시각화 방식을 적용했고 다양한 컴퓨터 그래픽이 동원됐다. 이를 3D 디스플레이 장치와 가상현실기기에 적용해 최종 능허대 추정 지형을 복원하는데 성공했다.

이번 복원은 백제시대 교통로 경로의 추적이 가능해졌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능허대 동쪽으로 이어지는 평탄한 '미(未)고지'가 청량산 낮은 곡부지역과도 연결되고 일부 연구자에 의해 제기된 백제시대 교통로 루트와도 일치해 능허대가 선박 기능과 함께 사신행렬의 출발과 도착지로 존재했을 것이라는 유추를 할 수 있다.

또 이번 지형 분석으로 능허대가 서해안에 접해 있는 돌출된 구릉으로써 서해안과 내륙 모두를 조망하는데 탁월한 지형 조건을 갖췄을 것으로 추정됐다. 포구와 선착 장소로서의 기능보다는 경관지대로 이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이 나온다. 오히려 선착장으로서의 장소는 능허대에서 동쪽으로 약 300m정도 떨어진 구릉 지역 일대가 유력하다는 설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번 연구를 계기로 능허대에 대해 더욱 전문적인 조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허의행 교수는 "능허대 주변이 선박 장소로 기능함과 동시에 사행(使行)의 출발과 도착의 장소로서 존재했을 것"이라며 "추후 발굴조사와 연구 등을 통해 고지형과 매몰된 유적의 존재 여부, 그리고 제기된 여러 내용 등을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능허대 역사 학술회의
연수구는 새로운 기법으로 능허대가 재탄생 한 것을 기념하며 지난달 '백제의 대중 외교와 능허대'라는 주제로 '연수 능허대 문화축제의 지속 성장을 위한 능허대 역사 학술회의'를 개최했다.

학술회의는 백산학회 회장인 정운용 고려대 교수를 좌장으로 모두 6개 주제별 12명의 발표자와 토론자가 참석해 5시간 넘게 주제발표와 종합토론의 시간으로 진행됐다.

주제발표에 나선 윤용구 인천도시공사 문화재부장은 '능허대와 한나루의 역사지리'라는 제목으로 1947년 항공사진을 통해 인두자루와 같다는 능허대의 형상을 소개했다.

이어 능허대와 발선처인 한나루가 거리를 두고 있다는 자신의 종전 주장과 차이가 있는 자료들이 나타나고 있다며 백제사와 인천 지역사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에 비해 그동안 능허대 연구는 활발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희인 인천시립박물관 유물관리부장도 '인천 연안의 초기철기~원삼국시대 유적'이라는 제목의 주제발표를 통해 영종, 김포 등 인천지역의 외래계와 교류관련 유물을 소개하고 그 특징 등을 상세히 설명했다.

이 부장은 이 자리에서 고고학적으로 기원 후 3~4세기 대까지 인천 연안에서 마한의 영향이 강하게 존속되고 분구묘의 조성이 3세기 후반부터 감소되는 것은 한성백제의 직·간접적인 영향력이 미치기 시작한 것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고 밝혔다.

이날 좌장을 맡은 정운용 고려대 교수는 "그동안 사료적 학술적 검증이 부족했던 능허대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의미 있는 학술회의였다"며 "앞으로 고고학적 자료만 보완된다면 백제사신로에 대한 연계적인 접근도 가능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연수구 관계자도 "이번 학술회의 결과와 새롭게 재현해 낸 고지형 분석을 통해 능허대와 내륙 사신로 등에 대한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해 보인다"며 "능허대 문화축제와 능허대의 역사성을 확인해 내는 차원에서라도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지원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장지혜 기자 jjh@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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