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성진 농협이념중앙교육원교수

 

예전에는 소중히 보관한 씨앗을 뿌려 키우고 이 중 제일 좋은 종자는 남겨서 다음 해 농사에 대비했다. 지금은 대부분 종자회사에서 나오는 종자를 구매하여 파종한다. 하지만 시판되는 종자는 그냥 얻어지는 게 아니다.
과학 기술로 일부 특성을 개량하여 만든 인위적인 종자이다. 그러다 보니 종자는 상품이 되었고 사업이 됐다. 특히 종자의 상품성을 확보하기 위해 많은 작물들은 씨앗이 안 생기게 하거나, 간신히 맺은 씨앗을 뿌려도 원래보다 못한 작물이 나오게 개발됐다.
종자 개발에 많은 돈이 들어가게 되면서 종자 산업은 개인 차원을 벗어나 기업들의 놀이터가 되었고 몬산토(미국), 듀폰(미국), 신젠타(스위스), 바이엘(독일) 등과 같은 다국적 기업들이 탄생했다. 우리나라의 다수 종자 기업들도 다국적 기업에 합병됐다.

그 결과 양파는 국산 종자 자급률이 30% 내외로 추정되고 청양고추의 소유권도 우리 것이 아니다. 감귤은 더욱 심각해진다. 약 95%가 일본 품종이다. 2018년 12월 일본이 우리나라에 감귤 신품종인 '미하야', '아수미' 등 5개 품종에 대한 품종 보호를 출원하면서 이들 품종을 재배하던 농민들은 된서리를 맞는 사태까지 일어났다.
이런 상황에 대해서 정부도 골든 시드(Golden Seed) 프로젝트 등을 통해 새로운 우수 종자를 육성·보급하여 해외로 유출되는 로얄티는 줄이고수출을 늘리는 노력을 하고 있다. 또한 산지 농업기술센터에서도 새로운 품종을 개발하고 있는데 그 중 잘 알려진 것이 딸기 품종 '설향'이다. 논산에서 개발된 설향은 기존 일본 품종인 육보, 장희를 누르고 현재 딸기 시장의 약 80%를 차지해 일본으로의 로얄티 유출을 막고 있는 일등공신이다.

하지만 종자 주권을 수호하는 것은 정부와 기업만의 몫은 아니다. 일반인들도 충분히 할 수 있다. 근래 도시농업이 많이 활성화되었는데, 아파트 내에서도 좁은 텃밭을 만들어 재배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텃밭에 시판하는 종자가 아니라 우리가 먹어왔던 종자들을 내 텃밭에서 가꾼다면 다양한 종자들과 종자 주권을 지켜나가는 방법일 것이다. 10월에는 24절기 중 한로(寒露)와 상강(霜降)이 있다.
이 시기는 추수도 거의 끝나 내년에 뿌릴 씨앗을 소중히 갈무리하는 때이기도 하다. 우리도 내년에 뿌릴 씨앗을 시판하는 공장제 상품이 아닌 예전 농부들이 죽기까지 보관한 토종 종자들로 준비하여 내년 텃밭 농사를 기약하면 어떨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