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봉희 송도소식지 주민기자

 

요즘 나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자꾸 혼란스러워진다. 꽤 괜찮다고 자처했는데 다시 자문해 보니 그다지 탐탁지 않다. 또 몹시 나를 책망했던 일들이 썩 그렇게 잘못한 일이 아닌 것도 같다. 양심을 재는 기준 잣대도 생활의 형편이나 사정 따라 변하는 것일까.
내가 어른이 돼서 잃어버린 것들 중 하나가 존경하는 인물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가슴 벅찬 꿈을 꾸며 열정적으로 삶에 부딪치던 청소년 시절에는 그 많던 표상들이 한 겹 한 겹 벗겨지며 허상임을 알게 되었을 때, 그 허망함이란 이루 표현할 수 없었다.

요즘 그때의 허망함이 다시 솟구치는 것은 왜일까.
지난 일요일 옆자리에 앉으신 여든 가까운 어르신이 "세상이 너무 시끄러워" 하며 손사래를 치셨다. "왜요?" "거ㅇㅇ때문이지." 나는 능청스레 "아, ㅇㅇ. 우리나라 말씀이시지요?"
10년 넘게 함께 했지만 정치 이야기는 처음 했던 터라 마음속으로는 무척 놀라면서도 요즈음 정세가 얼마나 시끄러운 지 감지할 수 있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온통 감추어 드러나지 않았던 또 다른 이야기가 무성하게 보도된다. 사실도 있고, 사실무근한 이야기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 라는 우리 속담에 비추어볼 때 이름 모를 무궁한 '요지경단지'라도 있는가 보다.

많은 청소년들이, 많은 대학생들이, 많은 학부모들이 조국 법무부 장관의 공정하고 청렴한 말들에 희망을 가지며 환호하고 박수를 보내고 존경을 표시했었다. 그러나 이제 그가 했던 희망의 메시지는 대학생들의 손에 들려진 촛불과 절망의 절규가 되어 캠퍼스에 울려 퍼지고 있다.
그래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코뿔소처럼 힘차게 나아가고 있다. 국민들 앞에서는 정중히 사죄하지만 돌아선 엘리베이터 안에서는 회심의 미소를 짓는 모습으로 비춰진다. 그저 법을 어기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배신감에 분노하는 다수 국민의 모습은 안중에도 없는 듯하다. 그래서 새로운 닉네임이 붙었다. '내로남불'.
한편 여권의 도를 넘는 엄호에는 권력의 무서움을 느낄 정도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 부정부패 척결을 외치며 사회 전반을 구석구석 들쑤셔 하루도 명사들의 구금 소식이 끊이지 않더니, 금수저가 통하지 않는 교육풍토 운운하며 교육혁신을 부르짖던 여권이, 민의의 촛불로 세운 정당이라며 그토록 치켜세우던 여권이, 왜 지금 대학생들의 촛불집회는 무시하는 지 알쏭달쏭하다. 왜 그토록 관대한 지 가슴이 먹먹하다.
국민은 앞으로 검찰조사에 따라 어떤 결과가 나올 지가 관심이 아니다. 오직 공정한 사회를 부르짖던 그가 신념에 따라 양심에 따라 겸허히 국민 앞에 나서주길 바란다. 돌아섰던 국민의 마음을 다시 돌려 과거보다 한 꿈치 키를 높여 바라보게 할 기회이다. 이 시대의 청소년과 청년들에게 꿈을 꾸게 하는 지도자는 꼭 필요하다. 책상 앞에 붙여놓고 시련과 맞서가도록 희망을 안겨줄 누구가 있어 다시 꿈꾸어보게 해야 한다. 국민들의 힘든 삶을 격려해주고 답답한 마음을 뻥 뚫어줄 참된 지도자 한 명쯤은 우리나라에 있어야 하지 않을까? 꼭 권력자로 군림해야만 국민을 위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야인인들 어떠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