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우석 인천대 무역학부 교수

최근 기술 변화는 제4차 산업혁명이라는 표현으로 대변된다. 정보기술 및 바이오 분야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급격한 기술 변화는 해당 산업뿐만 아니라 그간 형성되어 왔던 인간과 사회의 존재 방식 자체에 근본적인 변화를 발생시키고 있다.
이에 따라 산업과 혁신의 생태계에서도 커다란 변화가 발생하고 있다. 제4차 산업혁명의 가장 큰 특징은 소위 '초연결성'에 있다. 과거의 기술 변화가 연구개발에서 최종 제품 생산 및 서비스까지 선형적인 과정으로 진행되었다고 한다면,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다양한 생산 공정을 담당하고 있는 여러 기업들이 서로가 서로의 혁신에 영향을 미친다.

또 데이터 플랫폼에 기초하여 수많은 기업들이 생산자원을 공유하고 융합하면서 혁신을 이끌어가게 됐다. 그 결과 혁신의 속도는 과거에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빨라지게 됐다. 기업과 산업의 경쟁우위는 핵심 정보나 기술을 독점할 수 있는 능력보다는 현존하는 수많은 정보와 기술들을 얼마나 빨리 결합하여 새로운 것을 창조해낼 수 있는지에 의해 결정된다.

이러한 변화는 대학에 과거와는 다른 역할을 수행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가장 큰 도전은 융합이다. 오래 전부터 학문 융합의 중요성은 충분히 강조되어 왔다. 하지만 학과 간 장벽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는 우리나라 대학 체계 속에서 이를 효과적으로 실현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많은 의문이 제기되는 것도 사실이다.
스티브 잡스가 설파했던 바와 같이 창조성은 기존에 존재하는 것들을 연결하는 데에서 발현된다. 연결을 위해서는 소통하는 공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러한 의미에서 융합은 어울림이라고 할 수 있다. 학문 융합의 궁극적 목표는 이를 통해 첨단의 지식을 창출하는 것이지만, 그 출발은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대화를 하는 공간을 만드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따라서 대학의 연구체계는 학과가 세포 단위가 되는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넓은 범위의 주제를 중심으로 대학 내부와 외부의 연구자들이 모여 토론할 수 있는 공간을 창출해야 한다.

대학은 또한 지역과 산업에 대한 역할과 관련해서도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이제까지 대학은 사회의 선형적인 지식 전달 체계 속에서 일방적인 지식 전달자의 역할을 수행하여 왔다. 문제는 지금과 같은 가파른 기술 변화 속에서 대학이 지역에, 특히 기업에 지식을 전달하는 기존 모델이 여전히 적합한지에 대한 것이다. 제4차 산업혁명은 대학으로 하여금 거대한 지식과 과학의 학습생태계를 구성하는 일원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대학은 이제 단순한 지식 전달자가 아니라 지역의 커다란 학습생태계를 구성하는 구성원으로서, 서로가 서로를 통해서 배우는 지식 창출과 전달의 촉진자 역할을 수행하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역 의사결정의 체계, 산업 생태계, 인력 양성 체계, 지역 개발 정책 등 지역의 중요한 분야 분야에서 대학은 조언자가 아닌 참여자로서의 역할을 정립해야 한다. 또한 뛰어난 교수 및 연구자들의 개인적 역량에 의존한 연구체계에서 벗어나 사회 변화에 대하여 미래 비전과 담론을 제시할 수 있는 연구지원 체계를 수립하여야 할 것이다.
이러한 변화를 위해서 무엇보다도 지역 대학들 스스로의 변화를 위한 노력이 가장 중요하겠다. 지역 대학이 지역 산업생태계 속에 안착할 수 있도록 지역의 의사 결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실무적 차원에서 때로는 불가피한 점을 이해할 수는 있지만, 그동안 지역의 정책 결정이 종종 단기적 시각에서 외부의 자원을 활용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왔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단적인 예로, 얼마 전 인천지역 전략 산업 중 최근 가장 주목을 받고 있는 바이오산업과 관련하여 'Big C 2019'라는 큰 행사가 진행됐다. 그런데 해당 행사 조직위원의 면면을 보면 대부분 외부 지역 대학 인사들로 채워져 있었다.

당장 필요한 정책 시행을 위한 자원을 내부에서 발견하기 어려울 때, 정책 시행자로서는 당연히 외부에서 자원을 찾으려 하는 것은 십분 이해한다. 하지만 이러한 관행이 반복되면 지역 대학과 지역 정책, 그리고 지역 산업 간에 유기적 생태계를 구성하는 것은 점점 더 요원한 일이 되어갈 것이다. 부디 향후에는 지역 내부의 자원과 외부 자원을 적절히 배치하여 지역 대학들이 지역 산업 생태계 속에 안착하고 주도할 수 있는 적절한 동기를 제공받을 수 있기를 기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