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는 좁다…동네로 나온 기발한 상상력

 

▲ 연극 '보고 싶어'의 한 장면. /장지혜 기자 jjh@incheonilbo.com


공원·거리·벤치 등 일상공간서
23~25일 8가지 이야기 풀어내

인간의 소통 막는 문명 꼬집고
세상이 망한 후의 상황 드러내


러닝타임 15분. 무대는 인천 동구 배다리마을 일대다.

인천의 길거리를 무대로 15분간 펼쳐지는 연극, '15분 연극제'가 올해 6회째를 맞아 돌아왔다.

15분 연극제는 일반적인 연극 공연과 다른 형식으로 진행된다. 배우들이 어두운 장막 아래에서 이야기를 펼쳐나가는 것이 아니라 무대 밖으로 나와 우리가 일상적으로 생활하는 놀이터, 공원, 동네 집 앞 등에서 연기를 펼친다.

오는 23일부터 25일 배다리 스페이스 빔 일대 놀이터, 나무벤치, 거리, 생태문화공원, 개코 막걸리 앞, 옛 양조장 건물 내 곳곳에서 진행되며 올해 총 8편이 준비되어 있다.

특히 이번 공연엔 극단 '엘리펀트룸', '907', 경험과 상상, 작은방, 청년단, 낭만유랑단, 아오이옹심이, 창세GPT가 참여해 국제교류 작가 월트 맥고(Walt McGough)의 작품을 선보인다.

8편의 15분 연극을 통해 삶을 이해하는 저마다의 시선을 감상하는 동시에 따뜻한 위로를 받을 수 있다.

 

▲ 제6회 '15분 연극제' 팸플릿의 '상실을 그리다' 소개글 삽화. /제공=15분연극제X인천



▲상실을 그리다(A Portrait of Loss)
남자와 여자가 정신없이 살고 있는 일상 속에서 꽤나 가까웠던 친구의 사망소식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접한다. SNS상에 친구를 잃은 상실감을 끄적이던 중, 우연히 자신들이 신고 있는 양말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극단 청년단이 제작하고 양정현 연출, 곽경진 조연출인 '상실을 그리다'는 월트 맥고의 를 작가 동의 하에 각색·윤색해 만들었다. 전륜경·임지훈 배우가 출연한다.

청년단은 연출, 드라마 투르그, 음악감독, 사운드디자이너, 무대디자이너, 조명디자이너, 영상디자이너로 구성돼 있는 스태프 프로덕션이다. 소수의 객원배우와 3명의 연출부, 5명의 디자이너들이 협업하는 형태로 동시대 소설과 근·현대 텍스트의 무대화 방법론을 꾸준히 실험했다. 주로 도시에서 생활하는 소시민인 인물들의 상실감을 섬세하고 내밀하게 포착하고 무대화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 제6회 '15분 연극제' 팸플릿의 연극 '저 높이 먼 곳으로' 소개글 삽화. /제공=15분연극제X인천



▲저 높이 먼 곳으로(Up and Away)
'우주선'에 묶인 오티스와 그의 친구 체스터, 이 둘의 흥미진진한 SF소극을 창세GPT 김선권 연출이 준비했다. 부랑자 체스터는 그의 친구 오티스를 우주로 보내려 한다. 지구를 떠나기 싫은 오티스는 우주선에 묶인 채 극렬히 저항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창세GPT는 2014년에 설립된 신체연극 집단이다. 배우의 신체적 에너지와 기호적 신체연기를 주된 공연의 소통형식으로 삼는다.

▲ 제6회 '15분 연극제' 팸플릿의 연극 '보고 싶어' 소개글 삽화. /제공=15분연극제X인천



▲보고 싶어(The Cycle)
월트 맥고의 원제 을 <보고 싶어>라는 제목으로 바꿔 연출한 '907'은 주변의 상징과 은유를 찾아 방식에 구애 받지 않고 자유롭게 이야기 하는 극단이다.

황선화, 강서희, 백혜경 배우가 출연하는 보고 싶어는 세 사람이 새를 보러 한 장소에 모인 것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극 중 한 사람이 말한다. "근데 여기 새 보러 온 거 아니야…." 그럼 왜 온건데?

 

▲ 제6회 '15분 연극제' 팸플릿의 '싹쓸이' 소개글 삽화. /제공=15분연극제X인천



▲싹쓸이(Clean Sweep)
낭만유랑단 송김경화 연출은 지금까지 15분 연극제에서 재미있고 유쾌한 작품을 선보이며 관객들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지난해에는 알렉스 드레만(Alex Dremann) 작가의 슬랩 해피(Slap Happy)라는 작품에서 <직장동료 싸대기 때리는 날>을 맞아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황재희 배우와 2인극으로 보여줬다.

'잃어버린 자기발견'을 목표로 창단한 낭만유랑단은 2019년부터 생경한 소재를 통해 동시대를 은유하고, 미미한 인간의 존재 이유와 가치를 발견하는데 주력한다.

'싹쓸이'는 10㎝ 크기의 인공지능 로봇청소기가 자기주도 학습을 통해 자체진화를 반복하며 집 안을 깨끗이 청소한다는 줄거리다. 바닥에 놓여 있는 것은 모조리 소멸시켜버린 초강력 로봇청소기는 집안의 쓰레기를 만들어내는 원인인 카일과 제니퍼 마저도 제거하려한다. 로봇 청소기를 피해 소파위에 고립된 두 사람은 어떠한 문명도 그들 사이에 남아있지 않는 지금, 비로소 대화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 제6회 '15분 연극제' 팸플릿의 연극 '배다리 공룡들의 요구사항' 소개글 삽화. /제공=15분연극제X인천


▲배다리 공룡들의 요구사항(The Dinosaurs Have a Request)
극단 작은방의 신재훈 연출은 '공룡의 요구사항'이라는 극 제목에 '배다리'를 붙였다.

공룡들이 모여 정식으로 인간들에게 항의를 한다는 내용이다. 배다리 공룡들의 요구사항은 과연 무엇일까?

 

▲ 제6회 '15분 연극제' 팸플릿의 연극 '얼음장' 소개글 삽화. /제공=15분연극제X인천



▲얼음장(Exposure)
월트 맥고의 희곡에는 자연과 동물이 많이 등장한다. 이번 작품에선 북극곰을 만날 수 있다.

북극곰과 조난당한 소년의 이야기 <얼음장>은 극단 경험과상상과 한덕균 연출이 준비했다. 경험과상상은 예술을 하기 위해 열심히 살 길을 모색하는 극단이다.

▲혼자인 양 말이다.(Sole o' Socks 원제 Two Socks Discuss Loss)
<상실을 그리다>에 이어 이번 작품에도 양말이 나온다. 혼자가 된 양말 낱짝들이 자기 이야기를 시작한다. 우리는 원래 짝이었어야 했나, 낱이었어야 했나.

우리는 양말의 이야기를 가만히 신어 본다. 연극은 원래 낱으로 해야 하나, 짝으로 해야 하나 고민하는 양 말이다.

연출 김기일, 출연 신주훈·김보은·김민조·김기일, 번역 신주훈, 드라마터그 김민조, 액팅코치 김보은, 제작 엘리펀트룸.

▲쵸크(Chalk)
누군가 말한다. "내 딸 너 가져. 살아남는데 딸이 필요한 건 아니니까." "아, 물은 좀 있었으면 좋겠는데."
세상이 대충 망한 후 벌어지는 15분간의 이야기, <쵸크>는 아오이옹심이가 제작하고 신태환이 연출·각색을 맡았다.

/장지혜 기자 jjh@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