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운동 이끈 유동우씨
사회적기업 차린 이진숙씨
"미래세대에도 지켜져야"

 

▲ 유동우씨

 

▲ 이진숙씨


'약한 자를 강하게, 강한 자를 바르게.' 미문의일꾼교회의 옛 이름인 도시산업선교회가 1970년부터 지켜온 이념이다. 일꾼교회는 1970년부터 1980년까지 근로자 처우개선을 위해 노동자와 함께 투쟁한 곳으로 재개발 지역에 묶여 50여년 만에 사라질 상황에 처했다. 일꾼교회는 '화수·화평 주택 재개발 정비사업' 부지 내에 위치해 있다.

일꾼교회를 기억하는 이들은 많았다. 노동자들에겐 인권 교육을 접하게 해준 곳, 지역 주민들에게는 사랑방으로서 일꾼교회에 대한 추억은 달랐지만 지금처럼 모든 이들에게 희망의 불빛으로 남길 바라는 마음은 같았다.

부평수출산업단지에서 노동 운동을 이끌었던 유동우(70)씨는 자신이 노동 운동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일꾼교회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경상북도 영주에서 일거리를 찾아 상경하면서 노동자 인권 교육을 배운 적이 없었죠. 먹고 살기 바빴던 제게 노동자 인권을 가르쳐 준 게 도시산업선교회였어요. 그 일을 계기로 근로자들의 처우개선을 외칠 수 있었답니다."

1970년 일꾼교회는 지역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인권과 법률, 산업재해 등을 가르쳤다.
유씨는 일꾼교회가 가진 이념은 현 세대뿐만 아니라 미래 세대에게도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개발로 일꾼교회가 사라진다고 해도 그 이념은 지켜져야 합니다. 과거보다 살기 편해졌다고 하지만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노동 문제들이 있어요. 문제 해결을 위해 일꾼교회는 근로자의 옆에 서서 객관적 방향을 제시해 주길 바랍니다."

이진숙(59)씨는 일꾼교회는 노동자뿐 아니라 지역 주민과도 함께 했다고 회상했다. 일꾼교회는 돌봄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놀이공간이자 쉼터가 됐고, 1981년 민들레 어린이 선교원을 열면서 본격적으로 지역 아이들을 보살피기 시작했다. 이씨는 민들레 어린이 선교원에서 일을 하면서 아이들을 돌봤다.

"과거 일꾼교회 주변 아이들은 돌봄을 제대로 받지 못해 옷도 입지 않고 나와서 길거리에 앉아있었어요. 골목에 빽빽하게 앉아 있는 아이들로 생겨난 게 민들레 어린이 선교원이었어요. 부모가 퇴근하기 전까지 선교원에서 아이들과 함께 노래도 부르고 밥도 먹으며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는 선교원에서 배운 나눔의 행복을 잊지 못하고,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자 사회적기업을 운영하고 있다. 기업 이름도 '행복한 나눔'이다.

"일꾼교회는 해고된 동일방직 직원들을 위해서는 숙식 제공을 해주는 등 노동운동으로 경찰에게 쫓기는 이들에게 따뜻한 보금자리를 내어줬어요. 지금은 시대가 바뀌어서 그 역할이 축소됐지만, 푸드뱅크 등을 통해 지역 주민을 돕고 있는 걸로 알고 있어요. 지금까지도 지역주민을 돕는 그곳의 역사와 그간 해왔던 일들은 반드시 지켜져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글·사진 이아진 기자 atoz@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