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비 찬성하면 해 입을까봐…창녕 조씨 문중 반대 속내에 눈물"
▲ 지용택 새얼문화재단 이사장. /인천일보 DB

"동족상잔으로 치달을 때 평화통일을 얘기하는 사람이 없다면 역사적으로 불행한 거예요. 민족사적으로도 부끄러운 일이고. 죽산은 아무도 말하지 못했던 평화통일을 들고 나왔어요."

지용택(83) 새얼문화재단 이사장이 바라보는 역사는 '오늘의 역사'다. "역사가 있기에 오늘이 있지만, 역사의 평가는 오늘날 이뤄진다"는 말이다. 지 이사장은 바로 오늘의 역사에서 죽산 조봉암(1899~1959) 선생을 되새긴다.

죽산 60주기를 앞두고 29일 인천 중구 새얼문화재단 사무실에서 만난 지 이사장은 "색다른 얘기부터 하자"며 미국 워싱턴에 세워진 마틴 루터킹 석상 사진을 꺼냈다. 새얼문화재단은 지난 2011년부터 죽산 동상 건립 모금운동을 벌였다. 마틴 루터킹 석상에서 그는 오늘날 다시 쓰일 죽산의 역사를 봤다. "돌은 돌 자체로 예술이에요. 죽산의 삶에 돌을 뚫고 나온 의미가 담겨 있기도 하고요." 5554명이 참여한 건립 운동은 올해 빛을 본다.

지 이사장은 "인천은 인물이 많은 곳"이라고 했다. 죽산과 같은 해에 태어난 장면(1899~1966), 그리고 이승엽(1905~1953) 등 현대사에 이름을 새긴 정치인들을 가리켜 한 말이었다. "인천 정치인 삶은 불행했어요. 조봉암은 남한에서 이승만에게 당했지만 이승엽은 북에서 김일성에게, 장면은 박정희에게 당하고 말았죠."

안타까운 인천 인물의 역사는 그의 가슴에 남았다. 그리고 죽산을 좇아 한 평생을 바쳤다. 지 이사장은 2001년 강화도에 죽산 추모비를 세웠던 때를 떠올렸다. 당시 추모비 건립을 준비하던 강화원로회는 그에게 도움을 구했다. "창녕 조씨 문중에서 반대하는 상황이었죠. 강화도로 가서 한참을 설득하고 내려오는데 한 분이 손을 잡고 얘기하자며 이끌더라고요. 그분이 '우리가 반대할 이유가 있겠느냐. 다만 간첩죄로 몰려 사형당한 죽산 추모비 건립을 찬성하면 나중에 정권이 바뀌고 무슨 일이 생길까봐 불안해서 그러는 것'이라고 했어요. 눈물이 났죠." 죽산은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뒤에야 대법원 재심 판결에서 누명을 벗었다.

지 이사장은 '평화통일'로만 죽산을 평가해선 안 된다고 했다. 오늘의 역사를 만든 죽산을 얘기할 때 '토지개혁'을 빼놓을 수 없다는 것이다. 죽산은 정부 수립 이후 초대 농림부장관을 맡아 토지개혁을 이끌었다. 중국이나 일본 등 다른 동아시아 국가와 달리 한국의 토지개혁이 '민주적'이고, '합법적'으로 이뤄진 건 죽산 덕분이라는 평가다. "당시 죽산은 중국의 국공내전이 공산당 승리로 돌아간 요인이 토지개혁에 있다고 봤어요. 북한 토지개혁도 중국 흉내를 냈죠. 이승만 정권이 꺼렸던 토지개혁을 유상몰수 유상분배 방식으로 이뤄내면서 공산화를 막은 건 죽산의 빛나는 업적 가운데 하나입니다."

죽산 탄생 120년, 서거 60년을 맞은 올해 지 이사장은 이탈리아의 소도시 벨레트리를 새삼 떠올린다. 인구 5만명의 벨레트리는 로마 초대 황제 옥타비아누스 아우구스투스의 고향이다. 지난 2014년 옥타비아누스 서거 2000년 기념행사는 이탈리아 정부도, 로마시도 아닌 벨레트리 주도로 열렸다. "벨레트리 지방정부가 문화와 역사를 지닌 도시의 모습을 보여줬다고 생각해요. 도시국가로 나뉘어 있던 이탈리아가 통일됐던 것도 이런 민족 정기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거죠." 그는 벨레트리에서 인천의 미래를 본다.

/이순민 기자 smlee@incheonilbo.com



관련기사
5554명 시민의 이름으로 '무죄' 새긴다 8년의 기다림이 열매를 맺는다. 1000원부터 3000만원까지 죽산 조봉암(1899~1959) 선생을 기리는 5500여명의 손길이 모여 마침내 석상의 주춧돌이 쌓였다. 시민 모금 운동을 벌였던 새얼문화재단은 죽산 탄생 120년, 서거 60년을 맞은 올해 석상 건립에 나서기로 했다.새얼문화재단은 올 하반기 죽산 선생의 석상 건립을 본격화한다고 29일 밝혔다.지난 2011년 4월부터 시민 모금으로 쌓인 건립 기금은 이자를 포함해 8억5700여만원이다. 8년 만에 당초 목표로 했던 8억원을 넘어섰다. 모금 운동에 참여한 인원은 5554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