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 

'특혜와 책임'(노블레스 오블리주)을 책자를 통해 논리정연하게 서술한 사람은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일 것이다. 대학과 언론계 선배이기도 한 송 교수의 저술을 여러권 접하고 그의 학문적 위상을 흠모하고 있었지만 처음 대면했던 것은 1999년 5월 새얼문화재단의 아침대화에서였다. 한국 지도층의 특권과 리더십이라는 연제로 강연을 끝낸 송복 교수와 인사를 나누고 내 차로 서울 연구실까지 모셔다 드렸던 기억이 난다. 그 후 송복 교수와 종종 만나 포도주를 나누며 한국사회의 문제점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송 교수가 말하는 특혜와 책임은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목숨을 바치는 희생이며 사회가 필요로 할 때 기득권을 내려놓고 일상생활에서 배려와 양보를 실천하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특혜를 누리고 있는 사람들이 반드시 지켜야 할 책무가 노블레스 오블리주이며 이를 처음 실천했던 사람들은 1347년 프랑스 노르망디 북쪽 해안에 있는 깔레(Calais)라는 항구의 특권층이었다. ▶당시 프랑스의 왕위 계승권을 둘러싸고 영국과 프랑스는 100년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프랑스의 최전방 전선이던 깔레에 구원군이 오지 않아 영국에 항복하는 최후를 맞게 되었다. 영국왕 에드워드 3세는 깔레시가 최후까지 저항하는 과정에서 영국의 피해가 많았다면서 시민 전체를 몰살시킬 것이지만 6명의 지원자가 나오면 그들을 처형하는 것으로 매듭을 짓겠다고 했다. ▶이때 처음 나선 것이 놀랍게도 최고 갑부였던 쌩피에르였고 이어서 깔레의 시장인 장데르와 고위 성직자와 부호들이 자진해서 시민들을 대신해서 목숨을 내놓기 위해 영국왕 앞으로 나갔다. 마침 임신 중이던 왕비가 피를 보지 말자고 만류하는 바람에 영국왕은 사면을 내렸지만 이들의 희생정신이 670여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노블레스 오블리주(특혜와 책임) 정신으로 계승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주 프랑스에서 깔레를 찾았다. 1895년 당시 깔레의 에밀 사렘비에 시장이 조각가 로댕에게 의뢰해 세기의 명작 '깔레의 시민들'이 제작되었고 깔레 시청앞에 있는 것이 첫 번째 주조한 것이며 그 후 복사된 것들은 미국, 영국, 일본의 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그동안 미국과 일본에서 그리고 마지막 12번째 주조품을 소장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같은 작품을 여러 차례 볼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670년전 특혜를 지녔다고 스스로 판단한 특권층들이 처형받기 위해 나섰던 바로 그 장소에 세워진 로댕의 작품을 보는 것은 또 다른 감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