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종 인하대 일본언어문화학과 교수

방송은 일반대중의 시청을 전제로 하는 공기와도 같아 언어사용에 정도를 지켜야 한다. 그런데 작금의 방송은 서로 편하게 대화를 주고받는 프로그램이 주류를 이루면서 정중함이 결여된 언어를 일상으로 사용하고 있어 시청자들에게 불쾌감을 주고 국민의 의사소통 수준마저 끌어내리는 도구처럼 되고 있다.
바른 언어사용을 무기로 할 줄 알았던 방송인들조차 제대로 된 언어를 사용하지 못함으로써 시청자들에게 비정상적인 표현이 정상적인 표현처럼 자리 잡게 하고 평범하게 사용하던 경어마저 딱딱하다거나 격식체의 무거운 표현인양 인식하게 하고 있다.

언어예절을 지키며 정중한 표현을 사용해야 하는 방송이 시청자를 어려워하지 않고, '습니다'체 대신에 '요'체를 남발한다든지, '하세요' '보시죠' '할게요'처럼 사적인 대화에서나 사용할 분별없는 표현들을 정상인양 사용해 진행자들의 자질을 의심케 하고 있다. 자신들이 사용하는 표현이 부적절한지도 깨닫지 못하고 모니터링도 작동하고 있지 않은 듯해 방송언어가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방송이 보고 배우는 시청자들에게 부적절한 언어 환경을 제공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언어를 문제없는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부정적인 결과를 낳고 있다. 방송이 시청자들에게 한글을 아끼고 바르게 사용하라는 프로그램을 내보낼 처지가 아닌 것이다.

일상에 너무 가벼운 말들이 넘쳐나다 보니 정중한 표현을 익히지 못해 정작 정중한 표현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아주 가벼운 표현밖에 하지 못하는 젊은이들이 급증하고 있다. 지성인이라 해야 할 대학생들조차 '습니다'체 하나를 제대로 사용하는 이가 거의 없고 가르쳐도 익숙해지는 데에 시간이 걸린다. 언어에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고 있는 상황이다.

방송 드라마 역시 문제가 심각하다. 드라마의 정상에서 벗어난 터무니없는 장면 설정과 상식을 벗어나는 언어 사용은 작가의 수준을 심히 의심케 한다. 드라마에서 보면 우리네 가정은 일상이 다툼과 같아 자식이 부모에게 함부로 말하고 학교는 일탈된 학생들의 집합소인양 거칠고 상스럽기까지 한 언어를 사용한다.
우리의 옛 모습은 거친 생활상의 저속어가 난무하는 상황으로 담아내는 경우가 많아 시청자들에게 품격 없는 언행들이 우리의 평범한 모습인양 일반화하고 있다.

분노조절장애를 일으키듯 심한 언행을 쏟아내는 장면은 공공성을 추구하는 방송매체에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 자주 접하다보면 있을 수 없는 일도 있을 수 있는 자연스러운 일상사가 되고 만다. 모방범죄라는 말이 있듯이 유행처럼 사용되는 잘못된 표현을 방송이 여과 없이 내보내서는 많은 사람들이 쉽게 따라 사용하게 된다. 파급력이 큰 방송에서는 모든 영역에서 바람직하지 않은 언어표현이 사용되지 않도록 사람과 컨텐츠를 재점검해야 할 것이다. 바르고 정중한 언어가 가져다주는 인간적 신뢰는 매우 큰 것으로 방송은 바른 말, 바른 경어를 사용하는 것이 중요한 책무임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다양한 연령층의 언어를 충분히 경험하지 못한 젊은 방송인들이나 오락을 무기로 하는 연예인들보다는 숙련된 자들이 방송의 전면에 나와 방송언어의 진면목을 보여줘야 한다.
경험 및 훈련 부족으로 기계같이 읽어내려가거나 부적절한 표현을 사용하는 젊은 방송인보다는 풍부한 경험이 바탕이 되어 상황에 맞는 적절한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경륜 있는 방송인이 절실해 보인다. 공공성을 추구해야 하는 방송은 준비 안 된 젊음이나 외형보다는 신뢰할 수 있는 안정감이 먼저이다.
언어는 변하는 것이지만 작금의 언어는 교양과 품위를 떨어뜨리고 단순한 의미 전달의 도구로 변하고 있어 인간의 의식수준을 대변하는 언어의 진정한 가치가 쇠락하고 있다.

가정과 학교, 방송에서 제대로 된 언어만 사용해도 자라나는 청소년들의 언어가 매우 좋아질 수 있음을 생각할 때 부모와 교사, 방송인들의 언어사용에는 세심한 주의가 요구된다. 가정에서 잘못 배운 언어라 하더라도 학교가 바로잡아주고 방송매체가 올바른 언어를 일상으로 제공하게 되면 국민들은 보다 나은 언어를 사용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