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희 인천대 중국학술원 교수

오늘 오후 인천차이나타운 인천화교역사문물전시관에서 '화인화교(華仁和橋)포럼'이 개최된다. 인천화교협회와 인천대 중국·화교문화연구소가 공동으로 개최하는 이번 행사는 지역 화교사회가 중국과 인천을 잇는 평화와 화합의 다리 역할을 어떻게 수행해 왔는지 되짚어보는 자리이다. 이번 행사에선 양 기관 협력으로 최근 발간된 〈한반도화교사전〉을 일반인에게 소개한다. 이 사전은 중국·화교문화연구소 소속 교수 3명과 북한 화교 출신 중국 광동외어외무대학 교수가 다년간에 걸쳐 심혈을 기울여 완성한 작품이다. 우리 안의 타자로 살아온 한반도 거주 중국인의 지난 140여년의 역사를 1600여개의 표제어로 담아냈다. '한반도 화교'는 1880년대부터 현재까지 한반도 거주 중국 국적을 보유한 중국인을 말한다. 근대의 조선화교, 현대의 한국화교와 북한화교를 모두 아우르는 개념이다.

이 사전이 수록한 표제어 1648개 가운데 조선화교 관련은 전체의 64.6%, 한국화교는 16.4%, 북한화교는 14.6%, 화교 일반은 4.4%이다. 표제어를 내용별로 분류하면 화교의 상점·회사·중화요리점이 전체의 31%, 화교 인물 및 한반도 주재 중국 외교관이 30%, 화교 사회단체 11.1%, 화교학교 6.9%의 순이다. 나머지 19%는 한반도화교 관련 중요 사건, 조약, 법률, 법령, 명령 등이다.
해방 후 조선화교는 그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한국화교와 북한화교로 분단돼 한반도의 파란만장한 현대사를 살아왔다.

남북분단 체제하에서 한국화교와 북한화교는 남북 체제의 차이와 한국과 대만, 북한과 중국 간의 관계에 규정되면서 서로 다른 길을 걸어왔다. 이 사전은 이러한 남북한 화교의 차이를 넘어서 양 지역의 화교를 하나의 토대 위에서 '통일적'으로 정리해 냈다.
한반도화교는 한반도의 역사, 더 나아가 동아시아의 역사와 함께 해왔다. 따라서 한반도화교의 역사는 화교사뿐 아니라 근현대 동아시아사, 이민사, 중국사, 한국사, 북한사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돼 있다. 한반도화교의 시각에서 바라본 근현대 동아시아사, 한국사, 북한사는 어떠할까? 이 사전은 일국사와 자국민 '중심주의'에 근거한 역사상과 다른 모습을 제공해준다. 그런 의미에서 이 사전은 단순히 한반도화교만을 담은 사전이 아니다. 특히 북한 핵문제로 미궁에 빠진 한반도 평화통일의 현 국면에서 북한과 중국을 올바르게 그리고 심도 있게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줄 것이다.

이 사전은 남북한의 여러 지역 화교를 다루고 있는데 그 가운데서도 인천화교의 비중이 가장 높다. 인천 청국조계 설정의 법적 근거가 된 '인천구화상지계장정', 인천 각 화교의 동향회관인 산동동향회관, 광방회관, 남방회관의 각 역사적 사실을 표제어로 담아냈다. 현 인천 신포시장의 전신인 화교 경영의 인천신정채소시장, 인천시민과 화교가 교류한 '인천시민의 날' 행사, 인천화교의 민간신앙의 총본산인 의선당 사원의 그동안 밝혀지지 않았던 새로운 역사적 사실이다. 2017년 100주년 행사를 개최한 인천중화기독교회, 지금은 인천해안성당이 된 인천화교성당의 역사, 한반도 최초의 화교학교인 인천화교소학과 해방 후 설립된 인천화교소학의 부평·용현·주안분교, 현 인천화교협회의 전신인 인천중화회관, 중화상회, 화교자치구의 역사를 상세하게 기록했다.
인천차이나타운이 처음에는 청국조계에서 시작되어 일제강점기 때는 화교가 싫어하는 지명인 지나정, 미생정으로 지명이 바뀐 사연, 원래의 인천차이나타운은 이전 선린동 지역에 한정된 것으로 이전의 북성동 지역은 포함되지 않았다는 사실도 실려 있다.
한국인은 알 수 없는 인천화교협회장 선거 과정, 인천화교 공동묘지가 몇 번에 걸쳐 이전된 사연, 1927년과 1931년 두 차례에 걸쳐 인천에서 발생한 화교배척사건, 인천을 대표하는 중화요리점이었던 중화루·공화춘·송죽루의 내부 경영 사정 등을 소상히 다뤘다. 이외에 140여년의 인천화교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헌신했던 화교 지도자, 유명한 상점과 무역회사 등도 소개했다.
지역사회와 '이방인' 화교가 성심(誠心) 교류를 통해 일궈낸 이러한 성과는 세계에서도 잘 찾아보기 힘든 사례이다. 양 기관의 지난 10년의 협력관계에서 얻은 신뢰와 각종 성과는 향후 10년 인천의 대 중국 교류에 유·무형의 유산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