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용 신한물산 대표이사·인하대 초빙교수


우리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은 지난달 30일 문재인 대통령께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판문점 주변 비무장지대(DMZ) 오울렛 초소에서 군사분계선 너머 개성공단을 바라보면서 대화를 나눈 보도를 접했다. 개성공단 재가동은 물론이고 30여년간 이어져왔던 남북경협이 다시 재개되기를 희망한다. 1988년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으로 시작된 남북경협의 역사를 돌이켜보면서 남북경협의 새로운 계기가 열리길 갈망한다.

1960년대는 경제우위를 북측이 점하고 있었기에 오히려 북측이 경협을 적극적으로 제안했다. 1970년대에 들어와서는 남측이 주도적인 입장이었다. 1972년 7·4공동성명 후 남북경협 교류안 협의 이후 5차례 경협 회담을 개최했으나 의견 차이로 합의를 도출하지는 못했다. 노태우 정부의 7·7 선언으로 한국전쟁 이후 중단되었던 남북경협이 보수정권에 의해서 시작된 것이다. 일반 교역과 임가공 교역이 시작되면서 북측의 기능공 육성과 고용 창출로 민생안전에 기여했으며 남측에 대한 인식 변화가 일어났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어느 동맹국도 민족보다 나을 수 없다"고 선언하였는데 이후 "핵을 가진 자와는 악수도 할 수 없다"며 대북 강경 정책으로 선회했다. 30여년 만에 들어선 문민정부의 자신감으로 여론은 호의적이었다. 1995년 쌀 15만톤이 인도적 차원에서 지원됐다. 최초의 남북정상회담 분위기가 김일성 주석 사망으로 인한 조문 사절로 진통을 겪었다. 대우그룹의 남포 임가공 공단 조성이 명맥을 이어가는 수준이었다.

10년간의 보수정권이 막을 내리고 진보정권이 들어서면서 남북경협은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햇볕 정책, 평화자동차, 안동대마방직의 대북 진출과 정주영 명예회장의 소떼 방북으로 금강산관광 합의와 김정일 위원장 첫 만남을 이끌어냈다. 2000년 1차 남북정상회담의 6·15 남북공동선언에서 남북기본합의서 정신을 수용해 남북경제 공동체 구현을 천명했다. 남북경협의 3대 핵심 사업인 개성공단 조성, 금강산 관광사업, 남북철도·도로 연결 사업 등의 토대가 만들어졌다. 전 정부와 유사한 방식으로 사업을 추진한 노무현 정부는 개성공단 입주와 공단 가동을 실현했다. NGO단체의 대북지원 활성화가 이루어졌으나 북측의 1차 핵실험(2006) 등으로 화해 분위기가 반전되면서 남남 갈등이 대두됐다.

비즈니스 프랜드리를 표방한 이명박 정부에서는 남북경협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과거의 6·15, 10·4 선언에 대한 대안으로 비핵·개방 3000 대북정책을 발표함으로써 호응을 얻지 못하고 말았다. 금강산 관광객 피격사건, 천안함 폭침사건으로 야기된 5·24 조치로 개성공단을 제외한 북한 전 지역의 경협이 중단되기에 이르렀다. 그후 연평도 포격 사건까지 터지면서 개성공단은 바람 앞 등불과도 같았다. 개성공단을 지켜내야 한다는 모두의 염원이 간절할 뿐이었다.

한·미·중 공조를 기반으로 북한에 대한 설득과 압박 카드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와 동북아 평화 협력 구상,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정책으로 시작한 박근혜 정부는 2016년 1월6일 4차 핵실험 후 국민의 생명·재산 보호와 개성공단 임금이 핵, 미사일 개발에 전용된다는 구실로 남북경협의 마지막 보루인 개성공단마저 2월10일 우리 정부에 의해 전격 중단됐다.

남북관계 개선의 첫 걸음은 개성공단의 발전적 정상화 조치이기에 새로운 경협이 필요하다. 한반도를 둘러싼 21세기의 시대적 핵심 키워드는 남북경협이다. 우리 국민여론의 새로운 인식이 필요한 시점이다. 남북경협은 단순한 물질적 교류와 투자가 아닌 상호 간의 신뢰 구축과 통일준비사업으로 평화만들기(peace making) 사업인 것이다. 남북관계가 남북 간 상호작용의 결과임에도 역대 정부의 대북정책은 대체로 유사한 맥락임에도 전 정부와의 과도한 차별성을 부각시킴으로써 소모적 결과를 야기하여 호응을 얻지 못했다.

개성공단은 저 경쟁력 국내 중소기업의 활로이다. 해외 U턴 기업의 새로운 희망이며 국제적 경쟁력을 갖춘 공단이다. 또한 남북관계의 CPU(마중물)이기에 북측의 긍정적 변화의 초석이 될 수 있으며 긴장 측면에서의 완충 역할을 할 수 있는 요충지이다. 우리 입주기업의 입장에서 이제는 희망고문으로 점철된 3년 5개월여의 시간을 겸허히 현실로 받아 들이고, 오울렛 초소에서 한·미 정상이 바라본 개성공단이 하루속히 재개되기를 희망한다. 우리는 개성공단에 가고 싶다. 아니, 가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