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금내고 '배째라'는 업체들
'획일적 규제'가 가장 큰 문제
"정말 갈 데까지 가서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여기서 지내는 거야. 불법인 줄 알지만 그래도 한번 살아보려는 건데 불쌍하지도 않은지."
익명을 요구한 70대 노부부는 인천 남동구 만수동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에 산다. 농막으로 지었던 검은 비닐하우스가 노부부 안식처다. 도시가스도, 상수도도 당연히 들어오지 않는다.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600평(1980㎡) 정도 되는 땅"에서 10년 가까이 '자급자족'한다.
가시방석 같은 삶. 벌이도, 집도 없는 노부부는 말했다.
"공무원들이 살림 빼고 비닐하우스만 남겨두라고 해. 그린벨트라서 팔아봤자 제값도 못 받는데 이제 어디서 살아야 하는지 걱정이야."
그린벨트에선 개발만 제한되지 않는다. '개발제한구역의 지정 및 관리에 관한 특별조치법'은 건축과 용도 변경뿐 아니라 공작물 설치, 물건을 쌓아놓는 행위 등도 제한하고 있다. 적법과 불법의 경계에서 범법자가 되지 않으려면 지방자치단체 허가를 받아야 한다.
6일 인천시가 공개한 '개발제한구역 위반 현황' 자료를 보면 지난해 그린벨트 위법행위 적발 건수는 291건에 이른다. 남동구가 118건으로 가장 많고 부평구(64건), 계양구(58건), 서구(51건) 순이다. ▶관련기사 19면
위법행위 중에는 반복적이고 상업적 행태를 띠는 경우도 있다. 적발되고도 10년 가까이 영업한 서구 가정동 통닭집이 단적인 예다.
이 가게는 2010년 그린벨트에서 130㎡ 규모로 문을 열었다. 불법 건축물로 적발돼 수차례 시정명령을 받았지만 지난해 11월 행정대집행 직전에야 자진 철거했다.
환경오염과 직결되는 폐기물 처리 업체를 운영하거나 콩나물·버섯 재배시설로 허가받은 뒤 물류창고 등으로 임대하는 사례도 빈발한다.
국토연구원은 '개발제한구역 내 불법행위와 관리체계 실태 및 정책적 개선 대안'(2015) 보고서에서 "이행강제금을 지불해도 개발이익이 높기 때문에 불법행위가 증가하는 추세"라며 "개발제한구역은 도시로의 접근성이 좋고 상대적으로 지가가 낮아 수익성 높은 불법시설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70대 노부부 사례처럼 획일적 규제는 그린벨트 주민 생계를 더욱 옥죄기도 한다.
계양구 다남동 주민 김모(59)씨는 "송아지를 낳아서 외양간만 지어도 불법이라고 하면 바로 허물어야 한다"며 "현실적으로 지키기 힘든 법을 만들어놓고 주민을 범법자로 몰아간다"고 말했다.
/이순민·이창욱 기자 smlee@incheonilbo.com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SNS 기사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