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펙트럼 인] '중고 신입'에 대한 단상
[스펙트럼 인] '중고 신입'에 대한 단상
  • 인천일보
  • 승인 2019.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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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웅희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취업 후 근무경력 3년 이내에 다시 신입 공채에 도전하는 젊은 직장인이 제법 많다. 주목할 점은 이들이 경력직이 아닌 신입사원으로 새로운 시작을 준비한다는 것이다. 고용시장에서는 이들을 '중고 신입'이라고도 칭한다. 듣기에 썩 자연스러운 표현은 아니다. 중고는 사전적으로 '이미 사용하였거나 오래된' 것을 의미한다.

중고 신입이라는 단어의 뉘앙스가 왠지 역설적으로 전달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프리미엄이 붙은 중고품이 존재하듯이 중고 신입이 진가를 드러내는 국면이 있다. 스펙보다 직무역량을 중시하는 취업시장의 채용 트렌드는 중고 신입이라는 존재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다.

잡코리아가 작년 상반기 신입 공채 지원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지원자 가운데 39.9%가 직장생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눈길을 끄는 것은 이들이 직장에 적을 두고 신입 공채에 지원한 가장 큰 이유가 '더 높은 연봉을 받기 위해'(37.8%)라는 사실이다. 이 밖에 '회사의 근무환경'(33.3%)과 '기업의 인지도'(22.6%)가 뒤를 이었다.

대기업들은 산업 패러다임과 비즈니스 환경이 큰 전환점을 맞이한 가운데 인력수요의 변화에 맞춰 정기공채 비중을 줄이고 계열사별 수시채용 비중을 늘리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그동안 진행해온 정기공채를 2019년부터 폐지하고 필요에 따라 수시로 인력을 채용하는 방식으로 전환했다. 대기업에서 정기공채 전면 폐지를 선언한 것은 현대차그룹이 처음이라고 한다. 이러한 추세는 다른 기업집단으로도 확산되고 있다.
수시채용의 핵심 콘셉트로 자리매김 되고 있는 것이 바로 중고 신입이다. 정기공채 방식에서 발생할 수 있는 비효율성을 제거할 수 있는 유력한 대안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직무 경험과 역량을 갖춘 중고 신입이야말로 생산성이 높은 직원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서구 선진국에서는 이미 채용인원의 80~90% 정도까지 경력직으로 채우기도 한다. 작은 회사를 징검다리 삼아 큰 회사로 옮겨가는 이직문화가 미국과 유럽 등에서는 예전부터 정착돼 있었던 셈이다.
요즘 한국의 대학은 현장실습 플랫폼 구축, 해외 인턴십 프로그램, 스타트업 지원 등 각종 직무역량 강화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고용시장의 트렌드에 맞추기 위해 발걸음이 분주하다. 중견·중소기업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해 마련된 특강은 낯선 프로그램이 아니다.

취업 재수를 선택하기보다는 중견·중소기업에 취업하여 직무역량을 쌓은 후 원하는 대기업으로 이직하는 루트를 고려해볼 것을 조심스럽게 제안하기도 한다.
취업재수든 전직이든 대기업에서 더 높은 연봉을 받기 위해 애쓰는 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현재에 안주하지 않는 도전정신은 높이 살만하다. 중견·중소기업을 징검다리 삼아 대기업으로 이직하는 것은 '공통의 행복모델'을 실현해가는 자연스러운 삶의 궤적의 단면이라 할 수 있다. 대기업 정기공채와 안정된 평생직장, 은행융자 낀 내 집 마련과 아파트 평수의 확대, 기업 전사인 가장이 이끄는 단란한 가정이라는 인생의 성공도식은 이미 그 기세가 꺾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위력적이다.
고용시장의 트렌드 변화에 대한 시의적절한 대응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다만 트렌드 변화에 대한 즉각적 대응을 공통의 행복모델의 추구로 치부하기에는 다가오는 거대한 사회적 변환의 파고가 거세다. 한국사회는 많은 선진국이 그랬던 것처럼 저성장·성숙사회로 빠르게 진입하고 있다.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인구구조의 급격한 변화로 학령인구가 급격하게 감소하고 있다. 사회의 활력이 저하하고, 머지않아 큰 노력 없이도 청년실업은 '해소'될 것이다. 이윽고 한국사회는 '먹고 살기 위해' 꼭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되는 시대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서 좋은 회사에 취직하는 길을 택하지 않아도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시대에 진입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4차산업혁명을 축으로 하는 혁신성장을 잘 이뤄낸다는 전제하에서 말이다.

우리는 이 과정에서 한국사회를 지배해왔던 공통의 행복모델의 붕괴를 목도하게 될 것이다. 일본사회에서 공유됐고 한국이 일부 추종했던 인생모델은 종언을 맞이하고 있다.
다양한 삶의 루트가 존재하고 그 가치가 충분히 인정되는 복선화 사회를 구축하고 맞이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자신의 길을 선택함에 있어 세상과 남에게 어떻게 비추어질 것인지가 아니라 나는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되묻는 시류가 자리잡는 것은 시간의 문제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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