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 인하대 후문 어느 팥죽집에 들렀다가 벽에 걸린 달력을 보았다. 아주 오래된 서양식 건물의 사진 한 장이 담겼다. 사진 밑에는 '1899년, 우리은행 최초의 영업점, 인천지점'이라고 적혀 있었다.
우리은행은 1899년 1월 30일 '대한천일은행'이라는 이름으로 설립했다. '하늘 아래 첫째가는 은행'이라는 뜻을 담았다. 일본의 제일은행(다이이치은행)을 비롯한 외국계 은행의 진출에 위협을 느낀 조선 상인들은 고종황제의 윤허를 받아 내탕금 3만원과 정부 관료와 조선 상인이 납입한 자금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민족자본 은행을 세웠다. 정관에 '조선사람 이외에는 대한천일은행의 주식을 사고 팔 수 없다'고 명시했고 1902년 2대 은행장으로 영친왕이 취임했다. 1919년 '3·1운동' 때는 대한천일은행 본점 앞에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등 우리 민족의 정신이 배어있다.

대한천일은행은 조선 상인의 무역 금융을 지원하기 위해 탁지부에 인천·부산·목포지점 개설을 위한 청원서를 제출했다. 당시 일본의 방해로 부산과 목포지점 개점은 무산됐고, 1899년 5월 인천(탁포)지점이 대한천일은행의 최초 영업점으로 개점됐다. 이것은 국내 금융기관 최초의 지점으로도 기록된다. 1903년 대한천일은행은 우리나라 최초로 전화를 개통해 본점과 인천지점 간 전화선을 개설했다. 이 전화선 가설은 '한국전기통신100년사' 첫줄에 적혀 있다.
대한천일은행은 상업은행이 되었고 후에 한일은행과 합병해 현재의 우리은행이 되었다. 용동마루턱 부근에 있는 우리은행 인천지점 출입구 벽에는 '1899년 5월 10일 개점한 우리나라 최초의 은행지점'이라고 새긴 동판이 박혀있다. 그날 그 집에서 먹은 민족의 음식, 옹심이 팥죽은 일본식 단팥죽과 달리 달지 않고 아주 담백했다.

/전 굿모닝인천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