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혜욱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최근 경남 진주에서 발생한 방화 살인사건으로 조현병 환자에 의해 행해지는 범죄의 특성과 조현병 환자에 대한 강제적인 치료방법의 허용여부가 다시금 사회적 이슈가 됐다. 이는 우리 사회에서 조현병 환자가 범죄에는 이르지 않았지만 반사회적인 행위를 했을 때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 대응할 수 있는가 그리고 조현병 환자가 범죄를 행하였을 때 어느 범위까지 그의 인권이 보장받아야 하는가의 문제로 연결됐다.
특히 이번 사건에서는 가해자의 신상이 공개되었는데, 가해자의 신상은 비공개가 원칙이다. 다만, 예외적으로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 제8조의2에 따라 ① 범행수단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가 발생한 특정강력범죄사건이며 ② 피의자가 그 죄를 범하였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고 ③ 국민의 알 권리 보장, 피의자의 재범방지 및 범죄예방 등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필요해야 하며 ④ 피의자가 '청소년 보호법' 제2조제1호의 청소년에 해당하지 아니하는 경우에 신상을 공개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범죄자의 신상공개에 대해서는 인권침해적 요소를 고려하여 신중하게 판단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는 그동안 가해자인 피의자의 인권보호가 주요 논의의 대상이 되어 왔으며, 다양한 통제장치를 통해 피의자의 인권이 보호되어 왔다.

이에 반해 범죄피해자에 대한 인권보호는 논의의 중심에서 벗어나 있었다. 형사사법제도에서도 피의자의 인권보장은 강조되어왔으나 피해자의 인권에 대한 배려는 미흡했다. 진주사건에서도 피해자와 유족의 신상뿐만 아니라 피해사실, 피해장소에 대한 정보까지 상세하게 언론을 통해 공개됐다.
언론이 국민의 알 권리의 보장이라는 명목하에 피해자, 유족, 피해사실 및 피해장소에 대한 정보들을 상세하게 보도함으로써 피해자와 유족의 사생활 및 인격권이 침해당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피해자와 유족은 언론의 취재와 보도로 인해 불쾌감뿐만 아니라 심각한 스트레스를 받는 등 2차 피해를 입게 됐다.

이러한 현상은 언론 환경이 과열되면서 특종경쟁으로 인해 피해자의 인권은 물론, 언론보도로 인한 피해자의 2차 피해의 문제를 경시하는 태도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더욱이 최근에는 인터넷 매체를 비롯한 다양한 방송 매체의 역할과 비중이 급속하게 커지면서 사건보도로 인한 인권침해의 형태가 더욱 복잡하고 다양해졌을 뿐만 아니라 그에 따른 피해도 매우 빠르게 확산되는 경향을 띠고 있다.

그러나 가해자와는 달리 피해자에 대한 보도에 대해서는 고소를 통하여 명예훼손죄 등으로 형사처벌을 구하기가 어려우며, 민사소송을 제기하여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도 어렵다. 또한 언론중재법을 통해 사후 구제를 받는 것도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그럼에도 취재 현장에서 활동하는 언론종사자들은 피해자들이 언론보도로 인해 겪게 되는 2차 피해의 심각성에 대해 잘 알지 못하거나 이에 대해 알고 있는 경우에도 보도 경쟁에 몰두한 나머지 피해자 보호를 위한 원칙들을 간과하고 있다.

이에 국가인권위원회와 한국기자협회는 공동으로 '인권보도준칙'을 제정·시행하여 피해자의 인권이 침해되지 않도록 피해자의 정보공개를 제한하는 등 피해자의 2차 피해 방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또한 여성·아동 대상 폭력사건의 경우에는 관련법에서 특별규정을 두어 피해자의 신원공개 등을 금지함으로써 언론보도에 의한 여성·아동피해자의 2차 피해를 방지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언론중재위원회에서도 피해자보호를 위해 '시정권고심의기준'을 제정·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규제들은 피해자의 인적 사항의 보도만 금지하고 있을 뿐 피해사실 등에 대해서는 보도를 금지하거나 제한하고 있지 않다.

피해사실 등의 보도로 인해서 2차 피해의 우려가 큰 사건에 대해서는 피해자에 대한 인적 사항은 물론 피해사실 등에 대한 상세한 보도를 규제하는 내용을 관련법에 규정할 필요가 있다.
또한 언론기관이 피해자의 동의를 받아 보도하는 경우에도 피해자가 동의한 내용과 다른 내용 혹은 피해자의 동의를 구하기 위해 언론이 고지한 보도의 목적이나 방법을 벗어난 보도에 대해서는 법적 규제가 가능하도록 관련 법률을 개정하는 방안도 고려돼야 한다.
이러한 법적 규제와 병행하여 언론종사자들의 인식도 변화되어야 한다. 즉, 피해자 및 피해사실 등에 대한 정보의 공개가 피해자와 유족에게 큰 고통이 된다는 점을 인식해 보도의 내용과 범위를 조절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