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

담임선생님은 아침조회를 마치기 전, 손에 든 조그마한 종이쪽지를 보며 번호를 부른다. 그 번호는 온종일 칠판 한편 구석에 적혀 있다가는 오후가 돼야 지워지곤 했다. 칠판에 적힌 번호가 많을 때는 10개가 훨씬 넘기도 했다. 납부 기한 내에 수업료를 내지 못한 학생들의 번호였다. 1960~1970년대 중·고등학교에서 어렵지 않게 보던 모습이다. 보통 한 반의 학생이 65명 안팎이었으니 20% 가량은 수업료를 제때 내지 못한 것이다.

그 시절 서울이나 인천의 방직공장은 10대 어린 소녀들로 넘쳐났다. 남동생이나 오빠의 학비를 벌기 위해 학업이나 상급학교로의 진학을 포기하고 산업현장에 뛰어든 여성노동자들이다. 도시의 건설 현장이나 가내 수공업 공장은 시골에서 올라온 10대 청소년들의 삶의 현장이 됐다. 당시 가난한 시골 아이에게 고등학교 진학은 언감생심(焉敢生心)이었다. 운 좋게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하더라도 졸업은 쉽지 않았다. 진학을 포기하면 부모들은 '일손이 늘었다'며 기뻐했을 정도였다. 진학을 포기한 시골 대부분의 아이들은 무작정 서울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그 길만이 지긋지긋한 가난으로부터의 유일한 탈출구였기 때문이다.

도시는 '가출 촌 놈'들로 넘쳐났다. 비록 가난 때문에 진학은 포기했지만 이들에게도 배움에 대한 욕구는 컸다. 하지만 하루 끼니 때우기도 벅찬 이들에게 공부는 다른 나라 이야기나 마찬가지였다.
당시 곳곳에 야학과 산업체 부설 중· 고등학교가 생겨났다. 국가가 책임져주지 못한 중등교육을 기업과 사회가 시켜준 것이다. 매년 어려움을 이겨낸 검정고시 수석합격자들의 이야기가 신문과 방송의 한편을 장식했다. 주경야독(晝耕夜讀), 형설지공( 螢雪之功)이란 단어가 친숙하던 시절이다. 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가난 때문에 정상적인 학교 교육을 받지 못했다는 얘기도 낯설지 않았다.
우리나라 의무교육은 헌법(1948년)과 교육법(1949년)에 따라 1950년 6월 초등학교(옛 국민학교) 교육부터 시작됐다. 실질적인 의무교육이라 할 수 있는 무상교육은 1959년부터 이뤄졌다. 중학교 의무교육은 1985년 도서, 벽지부터 시작돼 연차적으로 대상지를 넓혀 1995년 도시까지 확대됐다. 2005년 들어서야 전면적인 무상 의무교육이 실시됐다. 학부모나 학생이 입학금, 수업료, 교과서 값을 걱정 안하고 중학교에 다니기 시작한 것이 불과 14년 전이다.
정부는 올해 2학기부터 단계적으로 고교 무상교육을 실시하기로 했다. 올해 2학기 고교 3학년을 시작으로 내년에 2, 3학년, 내후년에는 고교생 전원으로 확대된다.
법으로 정해진 의무교육은 아니지만 정부가 무상으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기로 한 것이다. 교육은 대한민국 국민의 권리이자 의무이다. 신분이 높거나 낮거나, 재산이 많든 적든 누구나 일정 연령이 되면 교육기관에서 교육을 받아야 하고 받을 수 있도록 돼 있는 것이다.

교육은 개인과 한 나라의 미래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이다. 그래서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고 한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교육'이란 단어 앞에 '무상'이 붙어 정치판에 나돌기 시작했다. 4~5년짜리 정권을 잡고 유지하기 위해 백년지대계가 이용되는 것이다. 요즘은 무상교육이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만능 정책인 듯싶다.
제로 시대로 접어든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대학 무상교육도 검토해 봐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아이를 낳지 않는 커다란 이유 중 하나가 교육비 부담이니 태어나서 대학까지 무상교육이 이뤄지면 출생률도 오를 것이란 주장이다. 맞는 것도 같은데 아닌 듯하다.

정부와 여당은 이번 고교 무상교육 도입으로 부모의 소득격차가 교육기회의 격차로 이어지지 않고, 교육이 부의 대물림 수단이 되지 않으며 가정환경·지역·계층과 관계없이 모든 학생들에게 고등학교까지 공평한 교육기회가 보장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고교 진학률이 99.7%에 이르는 등 고등학교 교육이 보편화됐다고 했다. 과거 60~70년대처럼 먹고 살기 힘들어 고교 진학을 포기하고 산업현장으로 직행하는 청소년은 거의 없으나 정부가 나서서 잘살든 못살든 공평하게 고교 교육을 시켜주겠다는 얘기다.
공평한 사회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고른 사회를 말한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획일적·일률적인 지원과 혜택이 주어진다고 공평한 사회가 되는 것은 아니다. 무상이 만능처럼 보이는 세상이다. 하지만 무상이 최선만은 아니다. 국민들은 다 안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는 것을.